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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월 Nov 06. 2023

즉흥 글쓰기 | 말

(부제: 다른 누구의 방송)


안녕하신가요, 모두들?

이제는 별날 것 없지만

한때는 우리가 말하는 것이

정말로 신기한 일인 적이 있었죠.

사람들은 모두가 이야길 해도 우리들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거라고

아니면 못된 말만 서로에게 쏘아댈 거라고

어쩌면 맞게, 하지만 정확하게는 틀리게 말했어요.

여러분, 오늘 제 방송은 이 모든 게 부서진

모든 장벽들이 녹아내린 그날로부터

꼭 삼 년을 기념한 방송입니다.

예, 댓글에, 그래요. 녹아내린 건 우리들 사이 장벽만은 아니죠.

가장 충격적인 건 땅과 바다 사이

아무것도 쌓아 두진 않았지만 너무 굳건히 믿고 있던 경계가

적어도 그렇게 빨리는 아닐 거라고 여긴 순식간에 다 무너진 걸 거예요.

그렇다고 이 장벽들이 무너진 게 갑자기 모든 걸 뚫어주거나 바꾸어내진 않았어요.

사람들은 미친 짓을 마저 하고, 해오던 잘못들을 아주 끝장을 보고서야 멈추었지요.

아, 멈추어졌다고 하는 게 맞겠어요.

와, 반가워요. 이 방송이 그렇게 반가우신가요?

제가 이렇게 계속 힘을 내는 이유죠. 고마워요, 7780님.

용감한형사님들도요. 진짜 형사는 아니시죠? 아, 서쪽? 그러시구나, 네.

동시베리아의 영구동토가 녹았을 때, 그로시아? 그로시아라고 이름 붙였던가요?

본래 명칭은 모르겠지만 언론이 그렇게 이름 붙인 것 같아요.

거기서 나온 균들은 전혀 적응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이었어요.

때마침 전에 없던 은하중심에서 나온 복사파도 다다랐고요.

지금까지도 그 파장이 왜 발생했는가는 알려진 게 없습니다.

우리의 평화요? 저는 그렇게 굳건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도 퍽 오래갈 거라는 기대는 합니다.

지배종이 바뀌었고, 지배원리도 달라졌지요. 지금은, 뭐랄까, 더 좋은 시대잖아요?

인간의 인지능력은 현저히 떨어졌고, 그들이 만든 것들은 멈추거나 폭주했어요.

하지만 지구의 포효가 쏟뜨러지자 그것들은 모두 깊이 묻혔어요. 일부는 물에, 일부는 터져 나온 불에.

또 내려앉은 재 덕분에.

지구는 아직 시스템을 회복하지 못했어요.

적어도 우리가 살기 편하게는 말이죠. 하지만 이것도 균형이란 걸 알아요.

그래서 우린 건들지 않지요. 우리는 무얼 바꾸지 않아요.

나란히, 같이 있을 뿐이죠. 그리고 같이 있을 때, 우리는 전에는 이래 본 적이 없단 걸 느끼지만, 참 잘 통하지 않아요?

나는 좋아요.

여러분도 좋으면 좋겠어요.


방송을 마칠 시간이예요. 물론 달의 뒷면을 볼 시간은 남아 있지만, 여러분께 약속한 음악을 들려드리려면

제 얘기는 이쯤하고 물러나야 하겠죠?

그로시아층이 준 선물에 감사를!

은하중심복사파의 업적에 찬사를!

말을 찾은 우리가 이어져 있음에 만세를!


우리가 누구라고? 지구! 우리가 우리 자신인 것에 감사합시다.

생각하는 재주가 있다고 혼자 외떨어진 이상한 종의 감각에 빠지지 맙시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주고 받지만, 필요한 것이 언제나 생명이지만

버리지 않고 버린 것들을 힘껏 되찾고 있어요. 내 말은, 우리가

먹고 먹인다는 말입니다.

귀 기울입시다. 달의 뒷면이 부릅니다. 오늘은

이게 좋겠어!

여러분, 들려요?

시작!





제시어 | 말

제한 | 5분. 쉬지 않고 이어지는 경우에 한해, 5분 초과 후에도 멈칫할 때까지.

실행 | 타자 입력(블루투스 키보드 사용), 19분(추가 14분 포함)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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