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오래된 팬입니다.
<별의 목소리>,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같은 단편부터
<구름 저편, 약속의 장소> 같은 아는 사람만 알던 장편의 시작, ……
그의 전작을 실시간으로 따라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이 ‘마이너’(minor)한 작가의 매력을
너무 많은 다수 주류 대중(major)이 알아차린 때의
만족과 허탈감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여기서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을 깊이 파헤칠 의향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그가 일관되게 그려내는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물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것은 헤세의 소설 『데미안』이 그 첫 페이지부터 던지는 질문과 상통합니다.
—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
상호 공유. 그러니까
‘나-와-너’
‘지금-과-나중’이라는
벽을
넘어설 수 있는가.
신카이 마코토는 환상(너의 이름은/별의 목소리/날씨의 아이 등)과
현실(초속5센티미터/언어의 정원)을 오가고
환상이지만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등) 들을 통해서
벽은 벽이 아니다.
벽은 차라리 별이다, 라고 말합니다.
벽이 소통을 막고 망치는 게 아니야,
벽을 핑계로 그만두는 게 망치는 거야.
벽을 넘는 건 어렵지만
그래서 더 빛난다고.
우리, 어려운 걸 해요.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하면 알죠.
지금은 도움닫기부터.
달리기부터 해 보아요.
당위나 논증 대신
이 행위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신카이 마코토가 펼치는 예술입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