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달빛독서

케데헌 이야기. 스타워즈와 함께

by 이제월



두 달여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화제입니다. 영화 속 노래들이 인기를 얻고, 노래로 출발해서 영화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고 떨떠름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도 수많은 사람들,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입을 대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학자나 예인들, 산업 종사자 등 문화계 인사들뿐 아니라 진보정당이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 전직 국회의원도 있습니다(김종대 전 의원). (비슷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지만 그러던 사이에 김종대TV의 해당 영상을 시청하여서, 단순한 구도로 설명해 준 그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소개하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제 시선으로 한 번 손 대고 보탠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이야기의 책임은 저에게 있어요.)


말콤 엑스와 얼마 전 개봉해서 논란이 있었던 <인어공주> 실사판은 PC하지만 시대의 산물입니다. 현상에 반응했습니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무얼까요? — 갈린다.

이에 비해, 마틴 루터 킹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융합하고 스스로 주류로 기능합니다. 반대자들을 도리어 비주류로 만듭니다. 이는 이들의 방식과 태도가 강약으로 구분하는 대신 정사(正邪)로 구분한다는 겁니다. 이때 정(正)은 정의상 바깥이 없습니다. ‘모두 이래라’ 하고 요구하는 건 이미 거기에 전부 포함된다는 뜻이니까요. 마틴 루터 킹이나 <케데헌>은 현상 대신 본질에 감응한다. 모읍니다. 그리고 선악을 분명하게 잘라 가르는 셀린의 가르침과 달리 루미가, 미라와 조이가 배운 건 배척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틀린 건 단호하게 맞서고 싸우지만 일대일로 대응시켜 이건 맞고, 이건 틀리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존재를 가르지 않고 행위만 가릅니다. 흩고 뺏는 건 나쁘고, 모이고 어울리는 것(나누는 것)은 좋습니다. 진우의 혼이 붉지 않고 파란 것은, 그런 그가 선한 존재도 악한 존재도 아닌 도깨비의 형상으로 루미의 신검에 깃든 것도 이를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모인다.

<스타워즈>가 그랬습니다. 결국 어둠의 존재인 다스 베이더가 강력한 암흑 군주인 펠퍼틴 황제를 무찌릅니다. 많은 이들이 막연하게 루크 스카이워커가 그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왜곡된 기억입니다. 사실 루크 스카이워커는 펠퍼틴을 무찌르기에 부족했고, 그걸 할 수 있는, 포스의 양면의 균형을 가져다 줄 강력한 존재로서 아나킨 스카이워커 즉, 자신의 아버지인 다스 베이더의 마음을 돌린 게 펠퍼틴이 한 일입니다. 다스 베이더라는 가면 아래 감추어진, 깊이 잠든 아나킨의 선한 면을 일깨워서 그가 어둠과 힘이라는 극단으로 치닫는 다스 시디어스의 힘을 멈추게 한 것입니다.

짤막하고 빠르게 지나갔지만, 마지막 귀마와의 대결에서 사실 루미를 비롯한 헌트릭스 멤버들의 힘은 귀마의 장담처럼 귀마를 물리치기에 부족했을 것입니다. 귀마가 한 번 힘쓰자 확 밀리는데, 기울어진 승부의 추를 역전시킨 건 진우의 회심과 협력, 나아가 희생이었습니다. 이 희생이 루미를 한 단계 높여 주었고 그러고서야 귀마를 내쫓을 수 있던 겁니다(물리쳐 격파한 건지는 불분명합니다. 혼문 저편으로 몰아낸 건 맞지만).

그래서 혼문은 황금이 아니라 무지개빛입니다.

이단을 지정하는 성리학이 아니라 최치원이 날카롭게 보고 지명한 풍류(風流)의 도(道)가 케데헌이 펼치는 한류(韓流)인 거죠.

물론 우리는 압니다. 어느 한 개인도 단일하지 않고, 어느 한 집단도 단일 속성에 귀속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풍부한데, 그래도 어떤 특징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것을 인류의 다종다양한 집단이 공유하고 있고, 그래서 빤하지만, 뻔하지 않은 일부, 그 작은 차이들이 우리 모두를 풍부하게 하고,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부딪치고 부서지고, 다시 서게 합니다.

단일성과 다양성을 엎치락 뒤치락 가지고 놀다가 하나로 모으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장차 자신의 아이를 낳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여럿을 낳습니다. 닮은 녀석도 닮지 않은 녀석도, 잘난 자식도 있고 못난이도 있을 겁니다. 하나의 원형(原型, archetype)을 이루었으니 감내할 일입니다. 저는 이 작품의 빼어남을 단순히 만듦새에서 보는 걸로는 어긋나거나 모자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잘난 점은 원형을 이루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스타워즈> 이후 무수한 아류작이 나오고, 모방작 중 어떤 것은 원본을 뛰어넘기도 하였지요.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겁니다.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무얼 본 것이고, 무얼 만들었고, 이제 어떻게 즐기고, 어떻게 일할까요?

더 나누는 쪽이면 좋겠고, 대(代)를 잇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케데헌>의 ‘이름의 계승자’(herēs nominis)*는 누가 될까요?







― Ovidius, 『Metamorphoses』 15.819–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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