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나에게 최고인 (2)
동사서독(Ash of Time)
감독/왕가위
출연/장국영, 양조위, 임청하, 장만옥, 양가휘, 장학우, 유가령, 양채니, ……
고3이던 1994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던 어둑한 길목
좁은 2차선 도로 덕에 지나는 차량의 흐름에 밀려
그 허름한 집들 담벼락에 붙어 걷다 발견한
노란 바탕의 영화 포스터.
동사(양조위 분)가 칼을 뿌리듯, 혹은 심듯 비스듬히 아래로 향한 채 서 있는 그림이었는데
그 처량하다 못해 황량한 표정이
그 무렵 메마를 대로 메마른 내 가슴에도 후비듯 다가왔습니다.
그 얼굴이 그렇게 스쳐갔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1996년.
내게 이 영화를 권한 사람은 그때 소개하기를 “신이 없는 세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 정말 그렇더이다.
Nihil을 보여 주는 데 일찍이 이런 진수를 선보인 예가 또 있던가!
그 한 진수를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술 이름으로 등장하는 ‘취생몽사’(醉生夢死)*는 이 영화의 열쇠와도 같습니다.
두꺼운 사자성어 사전을 뒤지면 쓸모없고 헛되이 살다 덧없이 뜻없이 죽는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에 걸맞는 건가. 대체 이 영화의 현실들은 하나같이 신기루 같습니다. 이 점이 영화의 매력이긴 하지만 저는 매년 입춘(立春)을 지나며 이 영화를 보아도 그 독(毒)에 익숙해지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보던 날 저는 앉은 자리에서 거푸 세 번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수원의 조그만 비디오방에선데
주인은 그런 내가 신기한지 마지막 한 번은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제게 이 영화는 취생몽사주와 꼭같습니다.
— 한쪽을 잊게 하고 다른 한쪽을 기억나게 한다. —
내겐 양쪽 모두 괴롭지만, 둘 다 아름다워서 버릴 수 없고
동사서독은 취해서만 떠오르는 그 한 쪽을 찾아주는 셈이지요.
그런데 그것도 영원할 수는 없나 봅니다.
어느덧 제가 차츰 잊어버리는 게 있음을 깨달아 갔으니 말입니다.
새 물이 들면 묵은 물은 가 버리는 겁니다.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워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해마다 다시 볼 때면 그네들의 칼부림이 더욱 더 아프게 다가오고,
그러면서도 더욱 더 차마
말릴 수가 없게 됩니다.
신이 없는 세상이라고?
이걸 말했던 걸까요?
붙잡아 주는 이가 없는……어쩌면.
내게 박힌 별은 ★★★★★
*영화의 해석은 여기에 맞출 필요가 없으나 연원을 따지자면, ’취생몽사’(醉生夢死)는 (송대)의 유학자 (주희)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정호(程顥, 顥는 클 호, 1032~1085)의 말이라며 ‘소학(小學)’에서 처음 인용했다고 합니다. 정호는 동생 정이(程頤)와 함께 이정자(二程子)로 불리며 정주학(程朱學)을 창시했다. 어록에는 당시 간사하고 요망한 말들이 넘쳐 백성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천하를 어지럽게 하니 아무리 고명한 재주를 가졌어도 그 말에 얽매여 취생몽사의 지경으로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雖高才明智 膠於見聞 醉生夢死 不自覺也 / 수고재명지 교어견문 취생몽사 부자각야)고 한탄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