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ume 공연과 푸글렌, 멋진 식사까지 짧고도 길었던 무박 일본 여행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 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긴 여행도 좋지만, 무박 여행도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다.
무거운 캐리어 가방에 작별을 고한 체 가벼운 짐과 마음, 하고 싶은 것만을 밀도 있게 체험하고 다음날 깔끔하게 돌아와 집에서 쉴 수 있다는 장점은 기존의 여행과는 또 다른 매력일 것이다.
12월 초의 짧았던 일본여행을 추억하며 이 글을 적는다.
WE ARE THE FARM
여행을 갈 때마다 다른 건 계획해도 먹는 것만큼은 그날의 기분, 날씨, 그리고 자신의 직감에 따라 결정하는 편이다.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못 믿는다기 보다는, 실패할지라도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하겠다는 나만의 고집이 있다. 재미있는 점은 꽝이 걸린 적이 별로 없다는 것. 사실 먹는 것만큼 여행에 중요한 게 없다 보니 대충 고를 수가 없다. 굳이 팁이 있다면 맛있는 가게는 좀 걸어야 나온다는 것!
그렇게 공항에서 부리나케 나와 요요기 우에하라를 돌아다니며 발견한 멋진 식당 겸 마켓 WE ART THE FARM. 야채들이 가지런하게 진열되어있다 보니 처음에는 야채가게 치고는 이쁘다고 생각만 하다 그냥 지나칠 뻔했다가, 옆에 있는 메뉴판을 보고 음식도 판다는 걸 알게 되어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매일 아침 농장에서 수확한 유기농 야채들을 트럭에 가득 싣고 오는데, 어떤 재료가 들어오냐에 따라 메뉴도 바뀐다고 직원이 설명해주었다. 내가 방문한 날에는 케일이 많이 들어와서 메뉴 대부분이 케일을 활용한 음식들이었다.
주문하기 전 까지는 채식주의자가 즐길만한 음식들로만 메뉴가 구성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곁들인 세트가 있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고기를 즐겨먹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그 점을 고려하였다고 한다. 맛은 당연스럽게도 전체적으로 담백했지만 마냥 수수하지는 않았다. 고기는 잘 삶아졌고, 우엉 튀김은 리필을 부탁하고 싶을 정도로 괜찮았다. 가끔은 이렇게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FUGLEN
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요요기 우에하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카페 푸글렌에 들렀다.
워낙 자주 일본에 가다 보니 이제 내게는 거의 단골집처럼 느껴지는 곳인데, 올 때마다 손님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 푸글렌의 커피는 풍부한 산미가 매력적이라 평소 커피를 마실 때 산미를 즐기시는 분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개인적인 추천은 카페라테와 샤케 라또. 원두도 맛있기 때문에 사서 직접 내려먹는 것도 좋다.
FLUME [JAPAN TOUR 2017]
나에게 있어 이 여행의 주목적은 다름 아닌 Flume의 일본 공연이었다. 현재 음악계에서 가장 핫한 일렉트로닉 아티스트를 따지자면 Disclosure와 Flume, Zedd, Porter Robinson을 꼽을 수 있는데, Flume은 자신의 세컨드 앨범으로 올해 그래미 상도 거머쥐었기 때문에 위상이 급격하게 올라갔다. 그야말로 국제적 슈퍼스타가 돼버린 것인데 이번 아시아 투어에서 한국을 스킵한 것과 더불어 일본에서만 유일하게 라이브 셋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Flume의 라이브 셋은 뒤따르는 찬사 그대로 공연의 질이 상당히 높았다. 화려한 인트로, 서로 다른 곡들을 이질감 없이 연결하는 유려한 믹싱, 그리고 예상치 못한 흥! 믹싱 스킬로만 따지자면 Justice의 공연도 만만치 않았지만, 업 앤 다운이 없이 전반적으로 일관된 분위기 속에서 음악을 재생만 하는 느낌이어서 개인적으로 크게 재미는 없었다. 그러나 Flume의 경우 음악 자체가 힙합의 요소도 많이 차용하는 편이기 때문에 공연장을 달아오르게 하기 충분했다. 전자악기를 직접 다루는 걸 보는 것도 흥미로웠고. 다만 조명만큼은 Justice의 공연이 나았다. (사실 조명에 관한 한 Justice를 이길 수 있는 공연이 별로 없..)
공연을 다 보고 나오는 길에 놀라운 일이 있었는데 일본의 일렉트로닉 코어 밴드 Crossfaith의 멤버 테루 후미를 우연히 만난 것이다. 아무래도 그 자신이 전자음악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보니 이번 공연도 관람하러 온 것이리라. 내년에 내한할 수도 있다는 말을 울트라 재팬에서 다른 멤버인 히로키에게 직접 듣기도 했기 때문에 머지않아 다시 볼 수 있겠지. 테루 후미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바로 하네다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