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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찬종 기자 Feb 08. 2020

추미애 '가짜뉴스' 해명?: 법무부 설명 자료의 오류

법무부가 "미국에서도 1회 공판 기일 열리면 공소장을 공개"했다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어제(6일) 발언이 허위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설명자료를  2020년 2월 7일에 발표했습니다.

SBS가 보도한 사례, 2019년 12월 19일에 기소된 지 하루 만인 2019년 12월 20일에 공개된 사례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역시 "1회 공판 기일이 열리면" 공소장이 공개된 사례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법무부가 이 사건에 대해 "2019. 12. 19. 대배심재판에 의해 기소되었으나, 법원의 봉인 명령에 따라 공소장이 비공개 상태에 있다가 피고인이 2019. 12. 20. 오전 체포된 후 법원의 최초기일에 출석하여 봉인이 해제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를 "1회 공판기일"이 열린 뒤 공소장이 공개된 사례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법무부의 추가 설명 자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도 "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공소장을 공개한다는 추미애 장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란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선 법무부가 설명자료에서 제시한 사례와 관련된 미국의 형사사법절차 중 어느 것을 추미애 장관이 말하는 우리의 "1회 공판 기일"에 해당라는 절차로 규정하고 있는지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이론적으로 두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두 가지 경우 중 어떤 쪽으로 해석해도 추 장관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첫 번째로, "2019년 12월 19일에 열린 대배심재판"을 추 장관이 언급한 "1회 공판 기일"로 해석할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이는 법무부 설명자료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대배심(grand jury)의 심리 이후 기소가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에서 기소 이후의 재판을 의미하는 "1회 공판기일"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로, 아마도 법무부는 이쪽을 의미한 것 같은데, 2019년 12월 20일 체포 이후 열린 "법원의 최초기일에 출석(initial appearance)"를 추 장관이 언급한 "1회 공판기일"이라고 지징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은 일반적으로 공소장 공개 여부의 기준점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1회 공판기일"이라고 해석하는 것 역시 잘못입니다.


저와 인터뷰한 미국 검사 출신 법조인은 "공소장(indictment)은 봉인(seal)해야지 비공개되는 것인데,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과 관계 없이 공개되는 경우가 오히려 대부분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법조인은 "대배심(grand jury)을 거쳐 접수되는 공소장(indictment)는 아직 피의자가 체포되지 않아서 수사보안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곧바로 공개되고, 피의자가 체포(arrest)될 경우 곧바로 공개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핵심은 미국에서는 공소장이 '공적인 서류(public document)'로 규정되며, '공적인 서류'는 공개가 원칙이라는 점이다. 공소장(indictment)는 대부분 기소 직후 곧바로 공개되며, 봉인되는 경우도 국가안보 상의 이유로 비밀재판을 하는 이례적 경우를 제외하면 피의자 체포 후 곧바로 공개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치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 절차 이후에야만 미국도 공소장을 공개하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는 우리나라 법무부 설명자료의 내용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이 분은 "한국 법무부에도 미국 제도를 연구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 정도로 미국 형사사법체계에 대해서 이해가 없다는 것은....음 좀 부끄럽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법무부가 공소장 공개의 기준점이 되는 것인양 묘사하고 있는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 그 자체도 추 장관이 말하는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의 "제1회 공판기일"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란 점 역시 명확해 보입니다.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는 미국의 형사사법 절차를 진행순으로 설명한 코너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미국의 형사사법 절차를 공식적으로 11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https://www.justice.gov/usao/justice-101/steps-federal-criminal-process


1. Investigation (수사)

2. Charging (기소)

3. Initial Hearing/Arraignment (최초심리/기소사실인부절차)

4. Discovery (디스커버리)

5. Plea Bargaining (조건부 형량 협상)

6. Preliminary Hearing (예비심리)

7. Pre-Trial Motions (공판 전 신청)

8. Trial (공판)

9. Post-Trial Motions (공판 후 신청)

10. Sentencing (선고)

11. Appeal (항소)

일단 미국 법무부가 공식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미국 연방 형사사법절차 중 8단계에 해당하는 Trial에 대해서는 옥스퍼드, 동아출판, YBM, 교학사, 슈프림 등 5개 영한사전에서 (추 장관이 언급한) "공판"이라고 번역하고 있음을 지적해 둡니다. 


반면 "최초심리 (initial hearing)"의 "심리 hearing"에 대해서는 공판과 구분해 다음과 같이 사전에 규정돼 있습니다.


[두산백과사전]

심리 hearing , 審理

법률상 재판 이전에 법원이 민사·형사상의 청구 원인에 따른 증거나 방법 등에 대해 행하는 공식적 심사 행위.


미국 형사사법 절차에서 "공판(trial)"과 공판보다 한참 앞서 행해지는 "최초심리(initial hearing)"는 분명히 다른 개념인데도, 마치 "최초심리" 또는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이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의 "1회 공판기일"에 해당하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사전의 번역만 가지고 논의하는 것이 충분치 않을 수 있으니 , 실제로 미국 법무부가 공식적으로 각 절차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 또는 "최초심리/기소사실인부절차(Initial Hearing/Arraignment)"에 대한  미국 연방정부 법무부의 공식적 설명부터 옮겨보겠습니다.


https://www.justice.gov/usao/justice-101/initial-hearing


"피고인이 체포되고 기소된 같은 날 또는 다음날, 피고인은 해당 사건에 대한 최초심리(initial hearing)를 위해 치안판사(magistrate judge) 앞에 나오게 된다. 이때, 피고인은 피고인으로서의 권리와 자신의 혐의와 변호사 선임을 위한 절차에 대해 더 알게 되고, 판사는 피고인을 계속 감옥에 구금할지, 공판(trial) 때까지 석방할지 결정한다. "

"Either the same day or the day after a defendant is arrested and charged, he is brought before a magistrate judge for an initial hearing on the case. At that time, the defendant learns more about his rights and the charges against him, arrangements are made for him to have an attorney, and the judge decides if the defendant will be held in prison or released until the trial." 

반면 8단계인 "공판(Trial)"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시 미국 연방정부 법무부의 공식적 설명입니다.


https://www.justice.gov/usao/justice-101/trial


"여러 주 또는 여러 달의 준비 이후에, 검사는 자신의 직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한 준비를 마치게 된다: 공판(trial)이다. 공판(trial)은 사건과 관련된 사실들이 배심원들에게 제시되고, 배심원들이 기소된 혐의에 대해 피고인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결정하는 구조화된 절차이다."

"After many weeks or months of preparation, the prosecutor is ready for the most important part of his job: the trial. The trial is a structured process where the facts of a case are presented to a jury, and they decide if the defendant is guilty or not guilty of the charge offered."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과 "공판(trail)"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묘사한 미국 연방정부 법무부의 공식적 설명만 놓고 봐도, 최초출석을 우리 형사사법체계에서 말하는 "1회 공판기일"로 볼 수 없으며, "공판(trial)" 단계가 시작되어야 비로소 "1회 공판기일"이라고 부를 수 있음은 매우 명확해 보입니다.


정리하면, 미국에서는 대배심(grand jury)을 거쳐 공소장이 법원에 접수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봉인 없이 곧바로 대중에 공개되고, 기소 이후 피의자 체포가 필요해 봉인(seal)하는 경우는 체포 직후 곧바로 공개돼 결과적으로는 대부분의 경우 기소 이후 매우 짧은 기간이 지나면 공소장이 공개된다는 것입니다. 또, 법무부가 설명자료에서 '제1회 공판기일'에 해당하는 것럼 해석될 수 있도록 제시한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 역시 공판과는 구분되는 공판 이전 심리 절차,우리나라로 말하면 구속적부심이나 보석심문에 가까운 절차라는 점입니다.


결국, 미국에서도 공소장이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린" 이후에 공개된다거나, 곧바로 공개되지 않는다는 추미애 장관의 설명은 분명히 사실이 아닌 것입니다. 


나아가, 지금 추미애 장관이 취한 조치는 공소장을 제출하라는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한 것입니다. 미국법에 정통한 여러 법조인들은 공소장을 대중에 공개할지를 떠나서, 미국 의회가 법에 근거해 제출을 요구한 공소장 제출을 미국 법무부가 거부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참고]


미국 검사가 대배심(grand jury)에 제출하는 complaint도 "공소장"이고, 대배심 이후 제출되는 indictment도 "공소장"인데, 우리나라의 공소장은 complaint에 해당하므로, 미국에서도 공소장 즉, complaint는 비공개되는 것이 맞다며 한 페이스북 이용자가 어제(6일) 제 기사 등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compliant는 우리나라 법률용어로는 '고소장' 또는 '고소'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7일) 기자들에게 배포된 우리나라 법무부의 설명자료를 봐도 "2020. 12. 19. 대배심재판에 의해 기소됐다."라는 설명이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대배심재판 이후에야 기소(charging)가 이뤄지고, 그런 의미에서 대배심 이전에 작성되는 complaint는 우리나라의 공소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며, 대배심 이후에 접수되어 기소의 효력을 발휘하는 indictment가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에서의 공소장에 해당한다고 보는 편이 타당합니다. 오늘 배포된 우리나라 법무부 설명자료에도 complaint가 '고소장' 또는 '고발장'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대배심(grand jury)은 공소장 접수 이전에 해당 사건이 기소할만한 것인지 아닌지 일반 시민 중에 선발된 배심원들이 검사의 설명을 듣고 판단하는 절차로, 미국 연방법에서는 중죄(felony)의 경우 대배심을 통해 기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처럼 법률상 효력이 있는 의무적 절차는 아니지만, 기소 이전에 기소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심의하는 우리나라의 '검찰시민위원회'가 이와 유사한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검찰개혁 법안 논의 과정에서 검찰의 기소권 통제 방안으로 미국식 대배심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충분히 심도깊게 논의되지는 못했습니다.

한 마디 거짓말을 반박하려면 백 마디의 진실이 필요하다는데, 무척 피곤하네요.


※ 윗 글은 제 개인 블로그에도 올려놨습니다.

http://yimchanjong.com/archives/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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