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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롱말 Aug 26. 2023

모에 작화의 원리와 대중작용

글: 김성모 (조롱말 필진)


 필자는 동인 창작자로서 개인 SNS에 직접 그린 그림을 게시하며 활동하고 있고, 소위 ‘그림쟁이’라 불리는 수많은 아마추어 그림 창작자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해 오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 서브컬처 전반의 ‘모에 작화’에 대해 개인적으로 생각해 온 바를 쓴다.  


1. 모에 데포르메     

1-1. 데포르메란 무엇인가?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2006)>

 ‘데포르메’란 ‘deformation'(데포르마시옹)이라는 불어에서 유래된 말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특정한 의도로 변형하거나 왜곡하여 표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실제 인간 얼굴의 비율보다 눈을 크게 그리거나, 코의 사실적인 형태를 점이나 선 등으로 표현하는 등의 기법이 데포르메의 대표적인 예다. 데포르메의 근본적인 의미는 인간 묘사에 한정된 것이 아니므로, 요즘 SNS 이모티콘 시장에 넘쳐나는 동물 캐릭터들의 눈과 입이 간단한 점과 선으로만 이루어진 것 또한 데포르메의 예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형태를 생략/변형/왜곡하는 기술의 적절한 활용은 미소녀 모에 작화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1-2. 왜 모에 작화는 데포르메를 동반하는가?

<클라나드(2007)>

 첫 번째로, 데포르메는 표현하고자 하는 본질의 압축이다. 사람의 얼굴에서 보통 가장 먼저 쳐다보게 되고, 인상을 결정짓는 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대개 눈과 입이다. 당장 키보드 이모티콘 탭에서도 수십 가지를 찾아볼 수 있는 노란 얼굴 이미지는 눈과 입의 간결한 표현만으로도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전달한다. 이에서 더욱 압축하여 눈만 그려진 이미지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모에 작화를 이해하려면 인간의 얼굴에서 눈이 가장, 그 다음을 꼽자면 입이라는 것을 전제로 할 필요가 있다.


 만화/애니메이션 작화에서 눈을 크게 그리는 데포르메는 왜 효과적인가?

이는 현대 사회의 보편적인 미의 기준이 크고 선명한 눈에 있어서만은 아니다. 애초에 모에 작화를 보고 귀엽다고 느끼는 것은 실재하는 미인의 외모에 감탄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요점은 ’압축‘에 있다. 예를 들어 츤데레 미소녀의 올라간 눈초리나 소심한 미소녀의 처진 눈초리와 같이 성격을 상징하는 요소는 크고 과감하게 데포르메되어 그려진 눈에서 빠르게 전달된다. 이는 실제 사람 얼굴의 인상을 파악하는 과정과 비슷하지만, 그린 이의 전달력에 힘입어 훨씬 직관적으로 보는 이에게 닿을 수 있다. 보는 이들은 ’충분히 데포르메된‘ 눈에서 이 캐릭터의 특성을 가장 빠르게 캐치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각양각색의 모에 작화에서는 그린 이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소녀의 손을 그릴 때 손톱의 묘사를 생략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간략히라도 꼭 그려넣는다면, 후자는 어린 소녀의 짧게 깎은 손톱에 순수하고 투박하다는 특징을 부여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모에 작화를 즐겨 보는 이들은 시각적 정보를 해석하는 것을 취미로 둔 사람들일 테니, 이러한 상징을 기민하게 알아채 준다. 그린 이가 정보를 던지고-보는 이가 받아내는 ’전달 캐치볼‘이 성공적으로 오간다면 캐릭터에 생동감이 생기는 것이다.


<클라나드(2007)>

 두 번째로, 데포르메는 ’환상‘에 집중하는 것을 돕는다. 이는 첫 번째의 ’본질 압축‘과 맥락이 비슷한 것이지만 필요없는 요소를 배제하는 것에 집중하는 관점에서 다른 의의가 있다. 제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서 주변을 ’죽이는‘ 것은 그림을 잘 그리는 방법 중의 기본이다. 모에 작화에서 캐릭터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치워버릴 필요가 있다. 미소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주는 장면에서 눈가의 미세한 주름살이나 목의 접힌 살, 귓속의 귀지 같은 것을 자세히 그린다면 보는 이는 어떻게 느끼겠는가? 불쾌감을 느끼거나, 쓸데없는 것이 그려져 있다고 생각하거나, 차라리 그런 것들을 묘사한 데에는 작가의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름다우려면 빠져 줘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를 보고 더욱 흥분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그냥 그런 요소들을 좋아하는 경우일 것이다. 이와 같이 ’아름다움‘과 어울리지 않는 요소의 작용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요점은, 미소녀가 그려진 만화/애니메이션은 장르가 어떻든 환상의 세계이고 작가는 그 환상에 보는 이를 잡아둘 필요가 있다. 위의 예는 보는 이를 환상에서 내쫓는 행위다. (특별한 의도가 있을지언정!) 기껏 ’아름다움에 필요한 것‘만 갖춘 그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현실 세계의 더러움을 마주하게 하면 보는 이의 몰입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빠르고 직관적인 전달, 그리고 환상의 세계에 대한 방어력은 모에 작화에서 데포르메를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2. 동인 창작자의 모에 작화     

2-1. 계통의 분화 : 남성 캐릭터의 모에 데포르메

<비탄의 아리아(2011)>

 남성 캐릭터의 모에 데포르메는 여성 캐릭터의 그것과 궤를 달리한다.

극화체가 아닌 경우에도 남성 캐릭터의 눈은 여성 캐릭터보다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 여성 캐릭터와 달리 콧대를 뜻하는 선이 더 길거나, 아예 여성 캐릭터에게는 없는 묘사(콧구멍을 묘사한 작은 점이라든지)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작화의 차이는 오랫동안 보는 이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지만, 최근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이를 악습(?)으로 보는 관점이 생긴 바 있다. 이들은 여성의 모에 데포르메 자체보다도, 남성과 같이 그려질 때 보이는 차이에 반발한다. 이는 여성의 자연스러운 신체를 긍정하는 페미니즘의 갈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간의 얼굴은 나이가 들면서 변한다. 아기였을 때는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 모여 있으므로 눈이 차지하는 비율이 성인보다 훨씬 크다. 이 ’얼굴에서 눈이 차지하는 자리‘는 사람이 자랄수록 작아져서, 어느 정도 성장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성인의 비율이 되고, 다시는 아기 같은 비율로 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눈을 크게 그리는 모에 데포르메는 전반적으로 어리다는 인상을 띄는 것이고, 한 작품 안에서도 얼굴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큰 캐릭터는 그렇지 않은 작화의 캐릭터보다 어리게 보이는 것이다.

 어린 것은 미성숙한 것이고, 그것은 사회에서 약속된 좋은 남성성에 위배된다. 따라서 한 작품 안에서도 ’멋진‘ 남자 캐릭터는 여자 캐릭터보다 위아래 폭이 짧고 가로 길이가 긴, 상대적으로 조금 더 사실적인 묘사에 가까운 눈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큰 눈은 나이가 어리거나, 성격이 순진하고 사랑스럽고 상냥한 여성 캐릭터들에게 주로 먼저 배정된다.


위에서 언급한, 전통적인 남녀의 데포르메 차이에 반발하는 이들의 분노는 여성을 미성숙하고 예쁜 것만이 기능의 전부인 존재로 그린다는 관점에 있다. 여성 캐릭터에게만 적용되는 모에 작화의 요소가 사회에서 여성에게 실제로 요구되는 관념적 여성성의 압축점이니, 이를 탈피해야 옳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이들은 남성 캐릭터가 여성 캐릭터만큼 큰 눈과 풍성한 속눈썹을 가진 그림을 그려서 게시하기도 한다. 또 반대로, 여성 캐릭터의 얼굴을 극화체의 남성 캐릭터처럼 날렵하고 속눈썹의 묘사가 생략된 눈, 콧구멍의 묘사가 제대로 된(사실적인) 코 등의 요소를 갖추어 그리기도 한다. 여성의 신체를 타인의 뜻에 맞추어 대상화하지 말고, 생긴 그대로 긍정하자는 의미에서 남성과 동등한 레벨의 데포르메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만화 산업의 시작부터 굳건히 쌓여 온 여성 모에 작화의 기틀이 아직까지는 굳건한 요즘, 이와 같은 현상이 상업적으로도 큰 여파를 끼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다만 이러한 여성 한정 데포르메에도 예외가 있다. 어른의 영역인 섹시함을 어필해야 하는 ’누님계‘ 여성 캐릭터나, 사회적 남성성에 부합하는 외관을 가진 ’톰보이‘ 여성 캐릭터 등이 한 작품 내에서도 다른 여성 캐릭터보다 상대적으로 성숙한 눈 작화를 갖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성 캐릭터에게 으레 적용되는 데포르메를 갖는 남성 캐릭터도 있는가? 있다. 바로 ’쇼타‘와 ’오토코노코‘의 양대산맥이다.     


2-2. 쇼타와 오토코노코 작화

<슈타인즈 게이트(2011)>

 ’쇼타‘란 서브컬처에서 나이가 어린 소년을 뜻하는 말이다. ’오토코노코‘는 남자아이라는 일본어 단어지만 서브컬처에서는 ’마치 여자아이처럼 보이는 남자아이‘를 일컫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이 둘은 데포르메가 덜 과감하게 적용되는 남성 캐릭터 중에서 예외적인 존재다. 미소녀 캐릭터에게 적용되는 데포르메를 가질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이다.


 한 작품 안에서 20대의 청년 남성과 11세의 소년이 한 장면에 그려진다고 하자. 청년보다 소년이 더 큰 눈으로, 더 생략된 코로, 더 짧고 둥근 얼굴과 짧은 손가락으로 그려질 것이다. 이러한 데포르메 차이가 연령의 차이를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그렇다면 이번엔, 나이가 비슷하게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있다고 하자. 둘은 비슷한 크기의 눈으로 그려질 것이다. 이 둘의 성별을 구분하는 요소는 헤어스타일이나 복장, 목소리 등이 있겠지만, 그러한 요소가 모두 똑같을 때도 보는 이로 하여금 마법처럼 성별을 구분하게 해 주는 장치가 있다. 속눈썹이다. 십중팔구 속눈썹이 그려진 쪽을 여자아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다. 속눈썹은 여성성의 상징이다. 속눈썹을 길게 보이게 하여 눈을 강조하는 것이 여성의 오랜 화장법이자 여러 국가에서 미인의 조건이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미지로 각인된 것이다.

여성성의 상징인 속눈썹이 그려졌는데 남자아이라면? 높은 확률로 오토코노코 속성을 갖는 것이다! 이는 성숙한 작화에서도 동일한 성질을 갖는다. 성인 남성 캐릭터의 눈에 속눈썹을 그려넣으면 ’중성적‘이거나 ’미인‘ 속성으로 느껴지는 원인이 바로 ’속눈썹의 여성성‘이다.     


2-3. 글래머 미소녀에 대한 비판의 본질 : 아동성애와 자기검열

<코바야시네 메이드래곤S(2021)>

 앞서 알아본 것처럼 모에 작화에서 캐릭터의 특성을 전달하는 요소는 사회적으로 통용된 관념적 성역할의 지분이 절대적이다. 이러한 관습에 반발하는 이들이 적대시하는 또 하나의 대상은 ’글래머 미소녀‘다.  

 글래머 미소녀는 일부 대중의 2가지 욕망인 섹시한 몸매와 어린 소녀의 얼굴을 동시에 충족하고자 만들어졌다. 2차 성징 전의 어린 소녀는 신체발달적으로 그러한 육감적인 몸의 선을 가질 수 없으므로, 엄연히 성적 대상화를 위하여 창조된 허구 속의 종족이다.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이러한 글래머 미소녀에 대한 비판과 비난의 여론은 매우 거세다. 어차피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캐릭터들의 비키니에 왜 그들은 분노하는가?


첫 번째 이유는 이러한 종류의 도덕적 검열이 그들의 소속감을 충족하거나, 최소한 다수의 지지를 받는 여론에서 배척당하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글래머 미소녀의 수요층에는 남성의 비율이 크기 때문에, 그런 그림을 그려 올리거나 심지어 ’좋아요‘를 누르기만 해도 남성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표출하며 비난하기 일쑤다. 남성들은 저런 비도덕적인 것을 소비하는 더러운 계층이며, 그것을 비난하는 자신은 그들과 달리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라고 믿는 기분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은 글래머 미소녀의 어떤 부분을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답이 바로 앞선 질문에 대한 두 번째 이유다.

그들은 어린 소녀의 얼굴과 글래머라는 육감적 특성이 결합한 대상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동성도착증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최소한 그러한 주장에 동의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아동도 아니고, 실제 아동이 가질 수 있는 몸매도 아닌 키메라적 존재에 대한 오타쿠들의 집단적 자위를 아동성도착증으로 규정하여서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본인들의 도덕적 우월감뿐이다. 글래머 미소녀의 소비층은 그러한 소음에 관심이 없다. 그런 반발에 관심 가질 시간에 자신의 아내에게 집중한다. 글래머 미소녀의 생산 중단에도 기여하는 바가 없다. 만들어내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러한 목소리는 소비층의 불매 운동도 아니거니와, 글래머 미소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인기 있고 잘 팔리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여성 성적 대상화에 있어 다양한 관점과 담론이 생겨나는 것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지만, 이처럼 조준을 잘못하여 의미 없이 총알만 낭비하는 이들은 차라리 아동 캐릭터를 성적 대상화하는 굿즈를 공식 제작사에서 실제로 판매한 작품 쪽에나 총구를 돌려 보면 어떨까 하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필자가 서브컬처 활동을 하면서 모에 작화와 대중작용에 대하여 생각하였던 바를 적어 보았다. 서브컬처 미디어의 비약적인 발달과 메타버스 시대의 시작으로, 이 글에서 간단히 다룬 클래식한 모에 작화 도식 외에도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방식과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에를 그리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누군가가 ’어떻게‘ ’왜‘ 그리느냐를 쭉 생각하고, 그 속에서 유의미한 것을 발견하고 싶다. 그림에 조예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내용이었기를 바라며, 그리고 지금껏 당연하게 바라보았던 모에 작화 속에서 일련의 규칙과 인류의 징그러운 집착적 미학의 농축을 느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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