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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더 Jul 14. 2020

블록체인 게임: 게임의 무엇이 토큰화되어야 하는가

게임에서 정말 토큰화되어야 하는 건 무엇일까?

2010년대에 들어 블록체인 업계에선 대체불가토큰, 이하 NFT(Non-Fungible Token)는 혁신으로 다가왔다. 기존의 ‘화폐’와도 같은 유틸리티 토큰과 달리, A가 소유한 NFT와 B가 소유한 NFT는 각자 완전 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NFT에 토큰의 개수는 문제가 아니었다. 각 토큰이 지니는 고유한 값과 성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유한 고양이들의 끊임없는 증식. 그 결과물도 매우 고유하다.

NFT 특유의 ‘서로다름’으로 성공한 첫 사례로 크립토키티(Cryptokitties)가 있다. 그저 ‘나만의 유니크한 전자 고양이’ 토큰을 가진다는 심플한 내러티브로 시작된 귀여운 프로젝트는 한때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마비시킬 지경에 이를 만큼 짧고 강렬한 이슈를 초래했다. 현재 191만 마리의 고유한 고양이 토큰이 이더리움상에 존재하며, 모두 각자 한 마리씩만 존재하고 있다. 크립토키티의 성공에서 가능성을 엿본 프로젝트들은 블록체인과 게임의 합일을 꾀하기 시작했다.


한정된 수량의 나만의 아이템, 캐릭터, 게임 속 디지털 영토까지. 게임 요소의 토큰화는 꽤 매력적이고, 실제로 말이 되는듯한 설명이었다. 한국 최고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온라인 게임 중 하나인 ‘리니지’의 ‘진명황의 집행검’이 일반적으로 실제 금전적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게임 아이템의 토큰화에 대한 사례로 뽑힌다. 개발사의 게임에 대한 잘못된 선택에서 야기된 불편함은 토큰 기반 거버넌스로 풀 수 있을 문제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게임에서 정말 토큰화되어야 하는 건 무엇일까?


세계 최고의 FPS 하면 빠지지 않는 ‘카운터 스트라이크’도 ‘하프 라이프’의 모드에서 시작되었다.

기술의 빠른 발전과 보급, 재밌는 게임과 게이머들의 전체적 능력 상승이란 요소가 모인 모드(MOD) 커뮤니티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게이머들은 좋은 게임을 경험하는 것을 깊게 즐겼지만, 이젠 더 나아가 ‘좋은 게임’을 ‘더 좋은 게임’으로 바꾸는 데에 능력도, 수단도 충분해진 것이다. 오리지널 게임에서 ‘있었으면 재밌었을 것들’이 실제로 게임 속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원래 없던 캐릭터, 아이템, 게임 속 지역부터, 극단적인 경우엔 오리지널 게임은 뼈대일 뿐, 전혀 새로운 게임이 나오기도 했다. 좋아하는 게임과 창작에 대한 열정은 개발사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공짜’였다. 이에 대해 모더(MODer)들은 커뮤니티의 감사, 소소한 기부들로 만족해왔다. 하지만 창작의 용광로와 같은 모드 커뮤니티에 개발사의 개입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상황은 더이상 이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모드, 모더: 커스텀과 동일하게 기존 게임 요소를 변형해 만든 2차 창작 컨텐츠를 일컬으며, 이를 만드는 사람을 모더라고 한다.


모드, 더 나아가 게임계에 이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게임은 많지 않다.

모드 적용 게임의 명가는 두말할 필요 없이 베데스다(Bethesda Softworks)의 ‘더 엘더 스크롤’ 시리즈와 ‘폴아웃’ 시리즈일 것이다. 두 시리즈 모두 독특한 배경과 방대한 오픈월드, 높은 자유도, 뛰어난 개성의 NPC들과 메인 스토리 라인보다 재밌는 사이드 퀘스트들로 전 세계 수많은 게이머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이 모든 조건은 모더들이 창작의 날개를 펼치는 데에 모든 요소를 충족하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모더(MODer) 커뮤니티 넥서스모드(Nexusmods)엔 두 시리즈 관련 모드만 해도 19만 가지가 넘어가고 있었다.


유저생성 콘텐츠의 적극적인 수익화를 위해 베데스다는 ‘크리에이션 클럽’을 출시한다.

여기에 베데스다는 비즈니스의 기회를 발견하고 2015년 크리에이션 클럽(Creation Club)을 만들고 모더들과 협업해 수익을 배분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는 곧 게이머들의 거센 반발과 실망, 분노를 받아야만 했다. 플랫폼에 올라오는 유료 콘텐츠들은 ‘공짜’로 받을 수 있는 모드에 비해 양과 질, 모두 뒤떨어졌고, 가격은 합리적이지 못했으며, 크리에이터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고작 25%밖에 안 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크리에이터들과 모더들도 사정이 있었다. 아무리 작품을 사랑하고 즐겼다 한들 양질의 모드를 만들어 내는 데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이치다.


유료 콘텐츠임에 손색없는 모드들에 정말로 가격이 붙기 시작하자 게이머, 크리에이터, 개발사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모순과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 크리에이터의 몫을 적절히 맞춰준다면 과연 해결되는 문제인가? 수익 모델을 건드린다는 건 사업체 입장에서 매우 민감한 사항일 것이다. 커뮤니티는 ‘공짜’로 즐겨왔던 남들의 노력의 결실에 가격이 매겨진다는 사실 자체를 불쾌해했다. 소수의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다. 공짜 점심이 몇 번 주어진다 한들, 이 점심이 정말 공짜로 계속 나올 수 있을까? 공짜로 나오는 것이 맞는 것인가? 커뮤니티가 만든 점심을 개발사에서 파는 게 맞는 것인가?


리니지를 했던 필자로서 위 집행검의 가격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처음에 언급된 ‘진명황의 집행검’과 같은 예시들은 한정된 수량과 실제 게이머들이 수천, 수억 원의 현금을 지불하고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만, 필자는 이는 사실 오용되고 있는 케이스라 생각한다. ‘집행검’이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실제로 이만큼 강력한 아이템은 리니지에 사실상 없고, 이 원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가히 ‘살인적’이라 할만큼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게임 아이템이, 게임 길드 전체가 몇 달씩 작업에 매달려야 한 자루를 제작할 수 있고, 가장 낮은 등급의 강화 시도부터 증발 확률을 가진다.


즉, 모두가 플레이할 가치가 있는 게임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의 수개월의 노고가, 강화 실패로 아이템이 증발할 확률에도 불구하고 강화에 성공했기에 집행검은 실제 가치를 가진다. 재료를 드랍하는 몬스터는 계속해서 생성될 것이고, 검을 제작한다는 목적만 있다면 이 재료는 긴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모일 수 있다. 때문에 ‘집행검’의 생산량은 리니지가 서비스를 지속한다는 전재하에 사실상 무한이다. 토큰화된 NFT 아이템이 제한된 공급 때문에 가치를 가진다는 건 어쩌면 인과가 뒤바뀐 잘못된 용례일지도 모른다.


수고로움에 귀천은 없다 했다. 어느 새부턴가 게임도 여러모로 수고로워졌다.

필자의 사견으론, 게임의 맥락에서 블록체인을 통해 토큰화되어야 할 것은 바로 게임의 작품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플레이어의 ‘노력’이다. ‘집행검’과 같은 희귀 아이템에 들어가는 ‘노력’의 요소가 이에 알맞은 케이스다. 어떤 게임에 집행검과 같은 아이템이 있다면, 그 가치는 그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고, 이 또한 블록체인상에서 ‘자산’의 지위로서 거래된다면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순전히 봉사라는 것은 게이머들에겐 축복이다. 하지만 인센티브가 가능하다면 어떨까?

베데스다의 크리에이션 클럽 사태는 게임 아이템뿐만 아니라, 모드와 같은 ‘게임’의 토큰화에 매우 알맞은 케이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재능과 노력, 시간을 들여 게임에 편입될 수 있는 콘텐츠는 분명 일정 가치를 가지게 된다. 최종 가치의 결정은 다른 게이머가 최종 결과물에 매기는 가격과, 창작자가 생각하는 가격의 균형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블록체인상 창작자와 게이머 사이 게임 거래엔 개발사의 개입이 최소화될 수 있기 때문에, 수익 배분 구조로 인한 불편해질 수 있는 상황은 사라질 수 있다.


현재 디센트럴랜드 제네시스 플라자의 모습.

현재 게이머의 노력이 들어간 콘텐츠, 유저생성 콘텐츠(User Generated Contents)의 토큰화에 힘쓰는 프로젝트로 크게 ‘디센트럴랜드’와 ‘더 샌드박스’가 있다. 디센트럴랜드는 최근 ICO 이후 약 2년 만에 실제 플레이어들이 즐길 수 있는 탈중앙 가상세계를 출시하였다. 출시 후, 충분한 즐길 거리가 없어 텅 빈 세계에 플레이어들은 우려 반, 기대 반으로 시작되었지만, 최근 제네시스 플라자를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유저들이 만든 콘텐츠들이 랜드 곳곳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유저들도 플라자를 중심으로 모이며 자신들의 아바타를 뽐내기 시작했다. 탈중앙 가상세계의 흥망을 정하기엔 매우 이르지만, ‘게임’이라기보다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플레이어와 프로젝트팀이 쏟아야 할 애정과 관심, 노력은 앞으로도 많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한국 팀이 공유한 더 샌드박스 게임 메이커의 로딩 화면.

디센트럴랜드가 표방하는 ‘가상세계’에서 더 나아가, 유저들이 직접 개발한 게임들을 하나의 메타버스로 묶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바로 ‘더 샌드박스’다. Pixowl은 샌드박싱 게임 장르로 유명한 전작 ‘The Sandbox Evolution’을 개발하고 운영하며 느꼈던 유저생성 콘텐츠의 잠재성과, 이를 블록체인으로 토큰화했을 때 실현 가능한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복셀 에디팅 프로그램과, 이를 활용해 실제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게임 메이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정된 가상세계의 공간을 토큰화하는 프로젝트들과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게임’의 토큰화다.


기존 오픈월드 게임의 모드와 같은 개념을 더 샌드박스에선 토큰화하고, 토큰 보유자는 한정된 디지털 부동산상에 이를 펼쳐내 게임을 호스팅한다는 개념이다. 최근 실제로 게임 로직을 적용시킬 수 있는 게임 메이커가 커뮤니티에 공개되었고, 이를 활용해 주기적으로 유튜브와 트위치 스트리밍을 통해 공격적으로 어필을 하기 시작했다. 초기 콘텐츠에 부족함이 없도록 ‘크리에이터 펀드’와 ‘게임 메이커 펀드’에 적지 않은 금액을 안배해 놓은 것도 기존 블록체인 게임 프로젝트에선 찾아볼 수 없는 치밀함인 듯하다.


인터넷은 이미 우리의 삶과 법을 많이 바꿨다. 과연 게임은 우리의 세계를 또 어떻게 바꿀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게임과 여러 가상 아이템의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 하고 있다. 물론 기존 법과 기존 게임 약관의 디테일 속엔 해당 게임과 관련한 모든 사항의 소유권은 게임 개발사에 있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은 바뀌기 마련이고, 그것은 게임도 마찬가지다. 어느 새부턴가 게임과 게이머들 간 상호작용은 이전 PC게임과 온라인 게임의 태동기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복잡해졌고, 게임 시장에 돌아가는 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런 맥락에서 게임 생태계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들의 노고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실현시키는 것과 같이, 기존의 잣대로 보았을 땐 하찮지만 불거져 나오는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고, 블록체인의 특성을 살린 해결책을 하나씩 내놓는 것으로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블록체인 상용화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콘텐츠는 블록체인 인사이트 미디어 '노더'에 기고된 글입니다.

https://noder.foundation/game-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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