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했는데 근로자가 아니라니
“근로자가 아닌데요.”
사업주의 이 말 한마디로, 감독관들이 가장 맡기 싫어하는 사건이 되어 버린다. 근로자성은 그만큼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다. 종종, ‘일은 했는데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답답한 결론에 도달할 때가 있다. 근로자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했던 세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사촌 언니의 회사에서 일한 사람이 노동청에 신고했다. 그녀는 임금 2,700만 원과 퇴직금을 못 받았다고 했다.
“회사 잘 되면 지분 30% 준다길래, 월급도 안 받고 9개월 동안 경리업무며 이것저것 잡일을 다했죠. 그 후엔 3개월 동안 법인카드 받아서 옷도 사고, 가방도 사고요. 그게 월급이나 다름없잖아요? 그러다 지분도 못 받고 쫓겨났어요.”
그녀가 주장하는 급여는 참 독특했다. 법인카드로 3개월 동안 쇼핑한 게 총 900만 원이라서, 약정된 월급은 300만 원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회사의 ‘이사’ 직책이 쓰여있는 자신이 사용하던 명함을 내밀었다.
근로자는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시간, 작업량, 또는 영업직의 경우 판매 실적에 따라 임금이 결정된다. 반면, 사업 결과에 따라 월급을 못 받을 수도 있고, 잘되면 회사 지분을 받아 대박이 나는 등 사업 위험을 함께 떠안는 사람은 근로자라고 보기 어렵다. 불법 여부를 논외로 하더라도, 법인카드를 개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근로자로 볼 수 없었다.
게다가 대질을 해 보니, 신고인은 9개월 동안 사업주의 지시를 받고 일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시간에 혼자 사무실에 나와 자유롭게 이런저런 사업 구상을 하면서 소일거리를 했었다. 이 신고인은 근로자가 아닌 것으로 결론내렸다.
두 번째는 사진작가들로 구성된 스튜디오 이야기다. 사진작가 중 한 명이 스튜디오에서 대기했던 시간에 대한 최저임금과 전체 재직기간의 퇴직금을 요구하며 신고를 했다.
사진작가들은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예약을 선착순으로 선택했고, 손님에게 받은 촬영비는 작가와 사업주가 5:5로 나눴다. 문제는, 손님이 적을 때는 스튜디오에 머물러 있는 시간에 대한 최저임금보다 급여가 적을 때도 많았다.
“일할 때 사장님이 지시하는 건 특별히 없어요. 장비요? 제 카메라랑 노트북 쓰는데요.”
사진작가가 스스로 예약 건을 선택하여 원하는 시간에 출퇴근하였다는 사실과 업무에 대해 지휘․감독이 거의 없었다는 점, 주요 업무 장비들이 사진작가의 개별 소유라는 점은 신고인에게 불리한 요소였다. 일이 없을 때, 사진작가가 스튜디오에서 대기하는 것도 의무사항은 아니었다.
근로자로 볼 수 있는 내용을 더 찾아보려고 사업주와의 대질조사를 진행하려 했지만, 신고인이 개인적으로 노무사와 상담을 받은 후 추가 조사 없이 신고를 취하했다.
다음은 구두 미싱공의 이야기다. 그는 사업주의 공장에서 3년 가까이 일했다고 한다. 공장이 어려워지면서 갑자기 해고를 당했으니, 해고예고수당과 퇴직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미싱공은 원래 사업자등록을 하고, 자기 작업실에서 물건을 납품받아 1인 사업을 하던 사업주였다.
3년 전, 구두공장 사업주가 운송비 절약과 제작 기간 단축을 위해, 그에게 제안했었다고 한다.
“사장님, 우리 공장으로 들어오시죠? 작업실 임대료 아낄 수 있잖아요. 우리 공장에서 같이 하면 서로 좋죠.”
그렇게 그는 3년 전부터 사업주의 공장 한 켠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장소만 바뀌는 것도 커다란 차이다. 일단 외형적으로 분명 근로자로 보였다. 그 사업장에 출근해서 미싱 작업이라는 한 공정을 맡게 된 거니까.
“실장님이 사업자로 일할 때랑 완전히 똑같았어요.”
구두공장 사업주는 그를 공장 안으로 불러들이고 나서는 ‘실장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대금 지급 방식과 일하는 방식은 철저히 이전 방식을 그대로 유지했다. 근무 시간이나 휴무는 언제가 그가 스스로 결정했고, 작업량도 그가 원하는 만큼만 하고 퇴근했다. 대가는 작업 건당 대금만 받았다. 미싱기며 도구들도 전부 그의 소유여서, 일을 그만둔 후에는 도로 철거해서 들고 갔다.
그렇게 실질적으로는 근로자로 보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면, 안타깝지만 퇴직금 지급 의무도 없다. 해고예고수당 역시, 근로자에게만 지급 의무가 있는 수당이므로 사건을 종결했다.
그에게 근로자로서의 모습도 일부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퇴직금 절반을 주라고 할 수는 없다. ‘절반 근로자’라는 건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로만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언제나 고뇌와 괴로움이 있다.
취업이 어려운 여건에 있는 사람일수록 근로자 여부를 떠나, 일이 있다는 것 자체에 안도하며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직업을 선택할 때는 단순히 월수입만 비교해서는 안 된다. 근로자라면 받을 수 있는 금전적인 부분(퇴직금, 연차, 주휴, 연장‧야간근로 가산, 최저임금 보장 등)도 꼭 함께 고려해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이른바 특수 고용직은, 그 분야의 경기가 좋은 때이거나, 일하는 사람의 사업 수완이 특별히 뛰어난 때 외에는 근로자로 고용되는 것보다 불리할 가능성이 크다. 택배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묘사한 글이 있다.
기사가 아프거나 사고가 나서 다치면? 그건 기사 사정이고,
배송을 못 하거나 늦어지면? 계약 위반으로 기사 책임이 되는 거죠.
개인 사업자인데 개인 사업자의 자율성은 없고
노동자인데 노동자의 권리는 없는 게 바로 특수 고용직이죠.
-『까대기』, 이종철 만화
* 근로자성(勤勞者性, 근로자로서의 속성) 판단 기준
근로자인지 개인사업자인지에 관한 판단은 대법원 판례로 어느 정도 그 기준이 확립되어 있다. 근로자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해야 한다.
'임금'이란 노동력 그 자체의 대가를 말한다. 사업 지분을 준다거나, 노동력을 제공했는데도 사업 손실이 생기면 대가를 받지 않기로 약정한다면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 그래서 고정급을 약정했는지는 근로자 여부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종속적인' 관계란 쉽게 말해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즉, 업무 내용·근무시간·근무 장소를 사업주가 지시·지정하고 감독할 것, 작업 도구·비품·자재 등은 사업주의 소유일 것, 근로자는 타 업체에 겸직하지 않고 전속적으로 근무할 것,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고 4대 보험에 가입할 것 등이 그 기준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이 모두 완벽히 갖추어져 있어야만 근로자인 것은 아니고, 전반적인 내용을 보고 근로자로서의 속성이 더 많은지 여부를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