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청 노무담 22

임금은 돈이 아니다

by 박감

돈만 주면 끝일까.


“방금 입금 다 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근로자에게 연락해서 취하 요청할게요.”


근로자가 체불 임금만 전액 다 받으면 처벌은 원하지 않는다고 진술했었기에 사업주에게 자신 있게 말했지만, 사업주는 나의 말에 오히려 의아해했다.


“취하고 뭐고, 돈 다 줬으면 바로 끝나는 거 아닙니까.”

“네. 바로 종결될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더 설명하면 사업주가 오히려 화를 낼 것 같아, 얼른 전화를 끊었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임금 체불은 단순히 민사 문제가 아니라 형사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임금 체불은 반의사불벌죄다. 근로자가 합의하고 신고를 취하하면 공소권(수사기관에서 형사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져 수사가 중단된다.

우선 경제적으로 다급한 근로자로서는, 밀린 임금만 주면 합의하고 신고를 취하하려는 경우가 많지만, 취하하지 않고 형사처벌을 원하는 근로자도 있다.

물론 근로자가 합의하지 않으면 사업주는 체불 금액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거나 지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민사소송까지 하면서 돈을 늦게 받아야 할 때가 많지만, 한이 맺힌 근로자는 기어이 사업주를 처벌하고 싶은 것이다.




어느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두 달 반 동안 목공 작업을 한 근로자는, 급여를 하나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사업주를 상대로 하는 임금 체불 진정서를 제출했다.


“건물주(인테리어 공사를 맡긴 사람)에게 받은 대금은 이미 다른 급한 데 다 썼습니다. 남은 돈이 없어요.”


그렇게 임금을 미룬 지 1년. 사업주는 여전히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고, 월 200만 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 대출 이자와 원금 상환이 우선이라며, 근로자의 체불 임금은 전혀 갚지 않았다. 매월 단돈 10만 원씩이라도 생활비를 절약해서 근로자에게 갚아 나갔다면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근로자의 임금 청산보다, 개인 채무 상환만을 우선했다는 이기심에,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물론 채무 상환을 제때 하지 않으면, 당장 신용에 영향을 미치고, 이자도 불어나, 사업주에게 눈에 보이는 경제적인 타격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뭘 먹고 살라는 말인가.




물속에서 작업을 하다가 잠수사들이 종종 패닉 상태에 빠질 때가 있어.

왜? 라고 내가 묻자 웅이는 무서워서라고 말했다.

어떤 종류든 간에 공포야. 겁에 질리는 거야. 사실은 공기가 안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문제 상황도 아닌데 그냥, 어둡고 춥고 혼자인 바닷속이 너무 두려운 거야. 정신이 나가면 사람은 호흡이 빨라지게 돼. 숨을 계속 쉬고 있는데도 숨이 빨라져. 사람은 숨을 쉬면서도 질식할 수 있어. 과호흡으로 죽을 수가 있어.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해?

내가 묻자 웅이가 대답했다.

잠수사마다 방법이 달라.

아빠는 어떻게 해?

나는 물속에서 들고 있던 장비들을 다 내려놔. 그리고 가까운 기둥을 찾지. 그걸 항해 열심히 헤엄쳐가서 기둥을 온몸으로 꼭 껴안아. 팔이랑 다리를 죄다 그 기둥에 붙이고 꽉 끌어안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 껴안을 때처럼. 그걸 껴안고 나는 돈 생각을 했어. 보름 후에 월급이 들어온다고.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계속 생각했어.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산업잠수사 아빠와 딸의 대화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노동자가 돈을 벌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때때로 목숨을 걸고 일한다. 노동에 숭고한 가치가 있다는 낡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말은 노동하지 않는 자들이 노동자를 이용하기 위해 사용된 경우가 많았다. 그보다는 노동의 대가인 임금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미신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임금은 그냥 돈이 아니라 어떤 한恨이 서린 돈이다. 일반적으로 기망(사기) 행위가 없는 한, 단순히 빌린 돈을 못 갚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형사처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근로자에게 일을 시키고 임금을 주지 않으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사업주에게 형사적인 책임까지 묻는다. 임금은 그저 숫자로 된 돈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일을 시키고 급여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 노동의 위험과 수모와 괴로움을 돈으로 바꾸고자 발버둥 쳤던 인간의, 한 달간의 희망을 짓밟는 폭력이다. 심지어 2천 년 전의 성경책에도, 품삯(일당)이라는 돈 자체가 한 맺힌 소리를 지른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러분이 밭을 가는 일꾼들에게 지불하지 않은 품삯이 소리를 지르며 추수하는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습니다.

야고보서 5:4 (우리말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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