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청 노무담 36

다이어트가 쉬운 이유(에필로그)

by 박감

근로감독관으로 근무할수록, 갈 수 있는 식당과 살 수 있는 제품의 선택지가 점점 줄어든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는 정말입니다.


한 유명 과자 공장에서 간부로 일하던 근로자가 공금 횡령으로 해고되었고, 회사 대표를 상대로 해고예고수당 미지급과 퇴직금 지연 지급을 이유로 신고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맡은 두 달 동안, 저는 근로자로부터 회사의 여러 부조리를 들었고, 회사 상무로부터는 근로자의 횡령 증거가 빼곡히 담긴 자료들을 받았습니다.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양 당사자를 불러 대질하였는데, 두 사람은 고성과 욕설을 퍼부으며 서로를 맹비난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양측은 거의 매일 전화해, 자신의 주장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며 저를 압박했습니다.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입증되는 부분은 일부 인정하여 결과를 통보했지만, 양쪽 다 결과에 만족하지 못해 저에게 온갖 불만을 토로하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그 브랜드의 과자를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그 과자를 볼 때마다 그 사건과 그들의 불행, 그리고 사건 처리 과정에서 제가 겪었던 괴로움이 떠올랐습니다. 소비는 행복을 돈으로 사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품을 먹으면서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카페에서 일하던 근로자의 신고 사건도 비슷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정 지점(가게)만의 문제라고 해도, 그곳에서 벌어진 갈등과 눈물은 제게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전국 어느 지역에서든 똑같은 간판이 눈에 들어오면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심지어 휴가를 받아 여행을 떠나는 길에도 마음을 비우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부산 김해국제공항 근처를 지나며 대규모 공단 지역의 공장 간판을 보게 되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저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을까. 그들은 일하면서 제대로 쉬고, 사업주로부터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을까.

일하면서 저는 항상 많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제가 그 모든 문제를 바꿀 수 없는 작은 존재라는 무력감이 크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무력감 끝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을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맡은 몫을 다 하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몫을 다해 나간다면, 우리 각자의 날갯짓이 결국 좋은 바람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말입니다.


매일 저녁,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어깨동무합니다. 팔베개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깨동무입니다. 그리고 각자 회사에서 있었던 재미있었던 일이나 힘들었던 일을 서로에게 늘어놓습니다. 30~40분 남짓의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특히 아내는 제가 다루는 사건들에 얽힌 기구한 이야기에 큰 흥미를 보였습니다(물론 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개인정보를 철저히 삭제하거나 변경한 것들이었기에, 개인정보 보호법이나 업무상 비밀누설의 문제는 없었음을 밝혀둡니다!). 뜬금없이, 책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이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써 보면 어떨까?”

“아주 좋을 것 같아.”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 대화 이후로도 아무런 진전 없이 1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책상 위에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 봅시다》와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내는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신간 도서를 골라, ‘이달의 도서’라며 제 책상에 올려놓곤 했습니다. 이번엔 두 권 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읽었지만, 차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로자와 사업주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제가 이 이야기를 세상에 하고 싶었습니다. 아내의 교묘한 부추김 덕분인지, 아니면 우연히 두 유명 작가가 같은 시기에 글쓰기 책을 낸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그 결과로 이 글을 쓰게 되었고, 여러 독자분들의 응원 덕분에 '밀리의 서재' 2025년 5월 100만원 지원 우수작(밀크)에 당선까지 되었습니다.


근로감독관으로서의 제 일은 사실 단편적인 몇 가지 진술, 단편적인 증거, 법, 판례, 그리고 행정해석에 의존해 판단을 내리는 과정입니다. 억대의 임금 체불 사건이 아니라면, 근로자 한 명과 사업주 한 명이 얽힌 일반적인 사건은 불과 몇 시간 안에 조사하고 고민하며 결론을 내려야만 합니다.

모든 형사 절차에서 그러하듯, 근로자가 명확한 증거를 제출한다면 사건은 빠르고 명확하게 결론이 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증거가 부족해 쉽사리 결론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정의를 바로 세울 능력이 제게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매일 저녁 기도합니다. 내일도 제 앞에 놓인 사건에서 정의가 승리할 수 있길. 근로자가 자신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길. 사업주든 근로자든, 진정으로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그 억울함을 풀어줄 단서를 제가 놓치지 않길. 때로는 우연이라도 그 사람의 편에 설 수 있길. 그래서 그 사람이 웃을 수 있기를.


긴 연재를 따라 끝까지 완독해주신 분들, 또 브런치에서 일하면서 글과 함께 노동하시는 분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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