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간 묵은 방청소를 했다.
난 잘 버리는 성격이다. 원래부터 잘 버렸던건 아니고 몇 년간 했던 자취와 기숙사 생활이 '버리는 것이 청소'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만들었다. 이후에는 버려야 할 잡동사니는 곧잘 버린다.
그런데 이번 주말 청소는 버리는 데 꽤 애를 먹었다. 몇 달 사이 새 책들이 많이 생겼지만 책장 공간은 그대로이니 옛 책들을 버려야 했다. 다른 잡동사니야 척척 버렸을텐데 책들을 버리려니 어떤 것부터 버려야 하나 계속 생각하게 됐다. 결국 헌책들은 보이지 않는 침대 구석 한켠에 고이 쌓아졌다. 책장을 차지하였던 공간엔 새 책들이 들어섰다.
「근로기준법 24조」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사회적 용어로 흔히 정리해고라고 하는 이 규정은 노동자들(한둘이 아닌)과 단숨에 근로관계를 종료해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생활도 길지 않고 더더욱이 경영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정리해고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정리해고를 해서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리해고가 최선인가?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경영책임 모두를 노동자 탓으로 돌린다는 느낌까지 받을 때가 있다. 어찌 됐든 법에 있는 내용이니 법 상의 절차를 모두 지키면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해고할 수 있다.
코로나 19의 여파가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휴업하고 노동자들에게 휴업수당(원래 지급받던 임금의 70%)을 지급하는 기업에 3/4만큼의 급여를 지원해주는 고용안정대책을 펴고 있다. 물론 정부지원금을 지급받는 과정 중 엄격한 심사가 이루어지므로 갖가지 요건들을 충족하여야 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한다. 코로나로 인한 경영악화까지 모두 경영자의 책임이라고 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경영이 악화되자마자 별다른 고민 없이 정리해고라는 칼을 빼드는 회사까지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경영자는 한 회사의 가장이다. 모름지기 가장이라면 한 가정을 책임져야하지 않나?
근로기준법 24조는 정리해고를 할 때 합리적이고 공정한 대상자를 선정할 것을 그 요건으로 두고 있다. 같은 법 25조는 정리해고를 하고 난 뒤 3년 이내에 다시 같은 업무를 할 노동자를 채용할 때에는 당시 해고하였던 노동자가 원하는 경우 다시 채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해당 근로자를 다시 채용하지 않아도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책장에서 침대 구석으로 들어간 책들은 기준이 없다. 나름대로 생각한 오래 안 볼 책들, 책장에 꽂히면 안 예뻐 보이는 책들, 그냥 마음에 안 드는 책들을 골랐지만 퀴퀴한 침대 구석으로 들어가는 책들로서는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보는 정보대로 다 가져가 놓고 한물 갔다고 빛도 안 드는 곳으로 내쫓혀 지다니......' 그렇지만, 침대 구석으로 들어간 책들이 다시 책장에 오를 일은 아마도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