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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Apr 10. 2023

어느 30대의 암 극복기: Intro_PART 2

그 이후, 그리고 지금


진단을 받은 후의 시간은 쏜살처럼 지나갔다. 진단을 받고, 전이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난생처음 들어보는 온갖 검사를 하고, 좀 더 큰 병원으로 옮기느라 하루하루가 바빴다. 목 놓아 울며 슬퍼할 수 있는 기간도, 병이 생긴 원인을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며 나를 책망하거나 또는 ’너 때문에 내가 아프게 되었다‘며 누군가를 힐난할 수 있는 기간도 길지 않았다.


진단일로부터 딱 한 달 하고도 일주일 뒤인 2021년 10월 21일, 내 인생 첫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2022년 2월 7일까지, 3주 간격으로 총 6번의 항암치료를 받았고 3월에는 수술을 했다. 그러나 수술이 끝이 아니었다.


유방암은 암을 발현시킨 인자에 따라 세 가지로 타입이 나뉘며 암의 타입과 병기에 따라 수술 후에도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내 암 타입은 수술 후에도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우들 사이에서는 '삼중양성'이라 불리는 타입이다. 첫째, 내 암은 과다한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의 영향을 받아 발생했기 때문에 호르몬을 억제하는 치료가 필요하다. 이에 4월부터는 호르몬을 조절해 주는 약인 타목시펜을 복용하고 루프린이라는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둘째, 허투 세포 역시 내 암을 발생시켰기에 허투 발현을 억제하는 표적치료(독성 항암과 달리 일반 세포는 공격하지 않고, 특정 세포만 공격하는 치료)가 필요하다. 표적치료는 항암치료 시 허셉틴과 퍼제타 조합으로 6번 받았고, 수술 후에는 허셉틴만 단독으로 11번 더 받았다. 표적치료는 작년 11월에 끝났지만 호르몬 치료는 끝나지 않았다. 보통 호르몬 치료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동안 진행한다. 나는 일단 치료기간을 5년으로 안내받았다. 가끔은 5년만 치료를 하고 싶기도 하고, 또 가끔은 10년까지 하고 싶기도 하다. 부작용이 심각한 때는 지금 당장이라도 치료를 끝내고 싶고, 몸이 좀 괜찮을 때는 이걸 계속해도 상관없다 싶기도 하다. 사람 마음은 정말로 갈대 같은 것이다.


암 진단은 분명 내 인생에서 최악의 사건이었다. 처음 암을 진단받고 나는 내 인생이 불행해지리라 믿었다. 암으로 인해 내 삶이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비가시적이긴 하나 내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인생의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고 생각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인 30대 중반을 앞두고 이런 병을 얻었으니 안 그래도 막막한 인생이 더 막막해졌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 잠자처럼 벌레가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벌레의 삶도 소중하고 의미가 있는데 그때는 그걸 몰랐다. 이 자리를 빌려 세상의 모든 벌레들에게 사과를 전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암을 진단받기 전보다 더 행복하다. 그냥 '더 행복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이, 훨씬 더 행복하다. 암이 내게 많은 선물을 가져다줬기 때문이다. 아니, 암 자체가 내 인생의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약 5개월간의 항암치료 기간 동안 나는 나와 세상과 삶,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으며 항암치료가 끝난 후에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다.


나는 언제나 나를 괴롭혔던 완벽주의,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초조함과 불안에서 벗어나 현재에 집중하고 현재를 즐기며 사는 법을 배웠다. 물론 후회나 걱정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예전의 내가 후회와 걱정에 매몰되어 매일, 매 순간을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고 초조해하며 살았던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후회나 걱정을 빨리 잊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대안을 먼저 찾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다. 마음의 병을 고쳤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얼굴이 좋아졌다’, ‘보기 좋다’, ‘예전보다 자신감이 넘쳐 보이고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 ‘건강하고 행복해 보인다’고 말한다. 아프기 전엔 들어본 적 없던 말들을 아프고 나서야 듣는다니 인생은 참으로 묘한 것이다.


병이, 그것도 아주 큰 병이 생겼지만 나는 아프기 전보다 지금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다. 나는 병 덕분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비로소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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