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브라이드!>, 매기 질렌할 (2026) 리뷰

by 김노엘

* 영화가 보인 애티튜드를 직접적으로,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년'과 같은 비속어를 사용하였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 이번 리뷰에서 제가 비아냥거리거나 엉망진창이라는 둥 비판하듯 서술하는 내용은 거의 한 군데도 빠지지 않고 '오히려 좋아'라는, 극단적으로 좋은 의미입니다.


매기 질렌할의 <브라이드!>는 좀 과할 정도로 야심으로 가득한 영화입니다. 일단 매기 질렌할 스스로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걸 전혀 숨기지 않아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로 재정의된 여성성에 대해서도 논해야 하고, 1930년대라는 시대 배경에 맞게 서프러제트 이후의 여성 운동에 대해서도 그려야 하겠고, 아무래도 이야기의 뿌리를 <프랑켄슈타인>과 그에서 파생된 미디어 믹스에 두고 있으니 메리 셸리의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메타적으로 펼쳐 나가야 하겠죠. 거기에 매기 본인이 가진 고전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와 덕심도 뽐내고 싶고, <조커>나 <보니 앤 클라이드> 같은 범죄 영화들을 뒤집어서 여성 서사로 재전유 하고 싶기도 해 보여요. 이 모든 게 뒤섞이면 나오는 결과물은? 좋게 말해서 종합선물세트고 그냥 냉정하게 얹어 놓고 보면 난장판이 따로 없습니다. 이야기의 국면이 전환되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미시적인 소재와 주제의식이 조금씩 바뀌는데, 이런 혼란스러움에 어떤 마스터플랜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아무말 대잔치 하듯이 늘어놓으려던 시도로 보입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또 한 편의 악명 높은 괴작이 나온 걸로만 보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영화는 '괴작'이기는 해도 결코 무시하거나 저평가 받을 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이 영화가 드러내는 투머치토킹의 패기에 완전히 젖어들고 말았어요. 영화는 시작부터 쉽지 않게 전개되는데요. 프랭크(프랑켄슈타인의 괴물)가 아버지에게 느끼는 양가감정을 배경으로만 은근슬쩍 깔고 시작되는 '신부 만들기 프로젝트'부터가 허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영화 초반부에 성공해버립니다. 어떤 고뇌나 생명의 근원, 종교적/과학적/윤리적 은유도 담지 않은 채 브라이드는 그냥 그렇게 창조됩니다. 메타적 캐릭터인 메리 셸리의 '은총 혹은 저주'를 받기는 했다지만, 기실 어떤 토양도 갖추지 않은 채 말 그대로 근본없이 태어나버린 거죠. 이전의 삶과는 온전한 단절을 겪었으니 그건 다시 태어난 것도 아니에요. 말 그대로 그냥 태어났어요. 더 나아가서 이 여자는 그냥 태어나 보니 미쳐 있어요. 그런데 이 근본없는 미친년의 서사가 너무 매력적입니다. 능청스러우면서도 골 때리고, 인간성이니 여성성이니 하는 이전까지의 근원을 깡그리 부정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서사는 다분히 Z세대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매기 질렌할은 이런 근본 없는 캐릭터성을 다분히 의도적으로 끌고 와서 무얼 하느냐?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합니다. <조커>류의 영화가 그려내는 비뚤어진 남성성의 서사를 뒤틀어서 여성에게 새롭게 부여하고, <보니 앤 클라이드>류의 커플 범죄물이 그려내는 유아적 도피 행각이 신드롬으로 확장되는 방식도 그려냅니다. 가장 직접적 레퍼런스가 된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는 아예 영화 속에서 상영되기까지 하는데 그 서사 속 신부라는 캐릭터가 <브라이드!>와 궤를 달리하는 지점들을 생각해본다면 약간 비꼬는 듯이 느껴지기까지 해요. 고전 슬랩스틱 코미디나 뮤지컬 등을 의인화한 인물로 제시된 로니 린드라는 캐릭터까지 더해지고 대체 왜 등장한 건지도 모르겠는 뮤지컬 시퀀스까지 보고 나면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영화가 어떤 의미에서든 개판 오분 전이에요. 대체 뭘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꺼내고자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어떻게 보면 사실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인 것 같아요. 영화 속에 '여성'이라는 느슨한 소재만을 던져 놓은 다음에, 여성 예술가 당사자로서 느낄 수 있었던 고전에 대한 애증, 시대유감, 메리 셸리라는 작가에 대한 경외감, 장르물의 젠더 답습에 대한 답답함, '괴물'이라는 대상화에 대한 양가적 시선 등을 허심탄회하게 다 풀어놓고 싶었던 거죠. 심지어는 그 모든 중구난방의 서사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규합은 해냅니다. 꼭 왜 굴러가는지는 모르겠는데 멀쩡히 작동되고 있는 코드들을 보는 기분이에요. 이렇게 허술하게 엮어 놨는데 왜 이게 말이 되지? 이런 감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정말 기묘한 영화적 체험이에요. 주된 테제는 하나 뿐이고 그마저도 중심을 꽉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든 모든 이야기가 한 가지 지점으로 굴러갑니다.


물론 아쉬움도 존재합니다. 흩뿌리듯 수많은 이야기를 던져놓다 보니 대단히 발칙하게 보이고 파격적이기는 한데 무엇 하나 '급진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아요. 한 발짝만 더 나아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약간의 찝찝함이 영화가 끝나는 내내 남습니다. 다만 지금의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급진성까지 담보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는 건 확실합니다. 그 중에서도 이 영화가 이뤄낸 가장 큰 성취는 '여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괴물'이라는 가능성에 함께하며 그것을 체화하는 존재가 되는지에 대해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호기롭게 드러내고자 했는가 하는 지점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매기 질렌할이 보여준 그 당당함에, 저는 감복되고 말았습니다.


별점: 4.5/5


덧 - 이번 글 제목으로 사용한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는 페미니즘 철학자인 김은주 박사가 쓴 동명의 책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여섯 명의 여성 철학자가 페미니즘/여성 담론을 어떻게 다르게 전개했는가를 살펴보는 책인데, 가벼운 개괄서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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