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Cabotines, Ludovic Chanson, 2018
며칠 전, 바위 파스타 바에서 와인을 주문하려는데 화이트 와인 리스트가 재밌었다. 일본산 와인부터 오스트리아산 리슬링까지. 그중에 눈에 띄는 건 이 슈냉 블랑 내추럴 와인이었다. 상세한 설명이 없어 조금 달지 않을까 싶어 피하려다, 슥 찾아보니 소규모 생산자의 네추럴 와인이기에 미네랄리티가 좋다면 해산물과의 조합이 나쁘지 않을 듯해 한번 도전해 봤다. 결과는? 나름 성공적.
슈냉 블랑 Chenin Blanc 은 기본적으로 향이 풍부하고 산도가 좋은 산뜻한 화이트 와인이다. 주로 노란 색감의 과일들과 꽃향이 주가 되는 와인으로, 생산자나 토양에 따라 당도나 미네랄리티 조절이 가능한, 다재다능한 품종이다. 미네랄리티나 토양을 반영하는 성향은 주로 늦게 숙성되는 품종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특징인데, 이런 포도 품종들이 키우기는 까다롭지만 내가 와인에서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 중 하나이다. 루아르 지역이 프랑스 내 와인 생산지 중 꽤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소비뇽 블랑이나 슈냉 블랑처럼 화이트 와인이 대세를 이루는데, 서늘한 기후에 최근 지구 온난화로 따뜻한 기후까지 겹쳐 귀부와인을 만들 때 쓰이는 곰팡이들이 포도 표면에 잘 자라 스위트 와인이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루아르 슈냉 블랑이라고 간단히 설명히 써져 있으면 달까 봐 우선적으로 걱정하게 되는 부분이 약간 있다. 드라이한 와인도 많음.)
슈냉 블랑은 루아르 지역의 가장 인기이자 대표 품종 중 하나로, 루아르 밸리 내 다양한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그중 루아르 중부 쪽 Indre-et Loire 주 내 몽루이 Montlouis는 대단히 인정받진 못했지만, 최근 젊은 소규모 생산자들이 많이 생겨나며 특색 있는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슈냉 블랑은 펫낫 Pet-nat부터 드라이, 세미드라이, 스위트 와인까지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다 보니 소규모 생산자들이 이 품종을 키워 재밌는 와인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다.
Ludovic Chanson도 최근 몽루이에 터를 잡은 생산자 중 하나이다. 루도빅은 원래 제약업에 종사하던 와인 애호가로, 2006년부터 비오디나미를 지켜오던 밭을 매입해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와인 제조를 시작했다. 가끔 보면 과학자들이나 공학자들이 술 제조업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꽤 있는 듯하다. 관심과 체계적 사고가 만나 좋은 술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는 최소한의 개입을 추구하고 연간 25,000병 정도로 소규모로 재배한다. 아직 제대로 된 공식 홈페이지조차 없지만, 펫낫, 소비뇽 블랑 등 세 가지 정도의 라인업을 구축해 벌써 먼 한국까지 수출이 오고 있다.
내가 마신 Les Cabotines는 100% 슈냉 블랑으로, 드라이한 편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향에서 꿀과 당밀같은 농밀함이 살짝 느껴지는 편이다. 향은 전체적으로 노란 사과, 모과와 같은 향이 지배적이고, 사과 향이 처음엔 좀 과한가 싶지만 점차 밸런스를 잡아간다. 2018 빈티지지만 버섯, 이끼, 뿌리류와 같은 숙미도 느껴져 가볍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향이 절대 부족하지는 않아 좋았다. 슈냉 블랑이 어느 정도 장기간 병숙이 가능한 품종인 만큼,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보틀이라면 해산물에 곁들이기에 손색없는 선택지인 듯하다.
Ludovic Chanson
몽루이 지역에서 얼마 전부터 소규모로 와인 생산을 시작한 생산자로, 비오디나미 인증을 받은 밭에서 최소한의 개입으로 와인을 만든다. 포도를 한 번에 수확하는 게 아닌 익은 포도들을 선별해 개별적으로 따며, 슈냉 블랑과 함께 소비뇽 블랑도 조금 키운다. Pet-nat, 스위트 와인도 제작해 총 세 가지 와인을 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