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하 Rioja] 젊고 어린 와이너리

Javier San Pedro Ortega

by Noelle
Piensa menos, siente mas. 스페인어로 생각을 덜하고 더 많이 느껴라 라는 뜻이다.

성벽이 멋스러운 옛 도시 라구아디아 Laguardia를 조금 더 지나 칸타브리아 산맥 끝자락으로 다가서면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날씨는 더욱 변덕스러워진다. 바스크 지방으로부터 불어오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막아서는 산맥은 거대한 커튼처럼 땅을 두르고 있는데, 날이 흐린 탓인지 더 장엄해 보였다.

하비에르 산 페드로 오르테가 Javier San Pedro Ortega가 위치한 라구아디아 시 인근은 리오하 알라베사 Rioja Alavesa 지역 중에서도 가장 끝단에 위치한 동네이다 보니 와이너리들도 서로 간 널찍널찍하게 자리한다. 이 지역 내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 중 하나인 이시오스 Bodega Ysios 맞은편에 위치한 작은 와이너리 하비에르 산 페드로 오르테가 Javier San Pedro Ortega는 리오하의 한 소규모 와인 생산자 집안의 3대손인 하비에르가 본인 이름을 걸고 설립한 와이너리이다. 소규모 신생 와이너리답게, 실험적인 시도를 해보며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었다.

투어가 시작되었던 초의 방. 불을 다 끄고 와인에서 나는 맛에만 집중하게한다.

하비에르는 30대 중반의 젊은 와인 생산자로, 매 시즌 투어프로그램을 바꾸고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대중에게 다양한 시각을 선사해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깊은 괴짜인 듯한 느낌으로, 독특한 장식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통로에 놓인 아로마키트 주변으로 있던 알 수 없는 조형물들
그래도 투어 곳곳에 준비된 와인과 핑거푸드들이 적절했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알 수 없을 조형물들에도 불구하고 투어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와이너리 바로 앞 위치한 작은 포도밭에서 함께 먹은 작은 도시락이었다.

오르테가가 어릴 적 좋아하던 캐릭터 도시락을 오마주한 샌드위치와 와인

사실 와이너리에서 가벼운 점심이나 피크닉을 준비해 주는 경우가 왕왕 있기는 하지만 (Luis Cañas 투어 중 포도밭에서의 피크닉도 정말 산뜻했다), 귀여운 캐릭터 도시락 통에 그 밭으로부터 만든 어린 와인을 담아 핑거푸드와 제공한 도시락은 조금 남달랐다. 키치하고 힙하면서도 어릴 때부터 포도밭을 누볐을 하비에르와 포도밭의 오리지널리티를 잘 강조한, 좋은 예시라고 느꼈다.

이 와인이 자란 밭을 바라보며 맛 볼 수 있는 건 꽤나 행운이다 생각했다.

산 페드로 오르테가는 최근 스페인에 불고 있는 싱글빈야드 바람을 잘 타고 있다. 리오하에서는 35년 이상된 한 밭에서 난 포도를 수확해 와인을 만들어 인증을 받을 경우, viñedo singular 마크를 부착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더욱 상품성을 높일 수 있다. 오르테가 와이너리는 하비에르가 처음으로 구매한 밭인 La Taconera부터 라구아디아 주변 마을에 작게 작게 여러 밭들을 가지고 있어 밭 별로 싱글빈야드 와인을 소량씩 출시하기도 하고, 블렌딩을 해서 판매하기도 한다. 방문 당시 안내를 해주었던 직원 말에 따르면, 와인별로 특징적인 맛을 더욱 강조하고자 하여 주변의 밭들을 더 구매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한다.

숙성되고 있는 수많은 와인들. 소형이라지만 아주 작지는 않다.

우리가 방문했던 지난 3월은 한창 바쁜 일들이 마무리되고 다음 수확을 위해 준비하는 시기로, 방문객도 드물고 와이너리도 조용한 시기였다. 풍경은 조금 황량하지만, 오히려 천천히 시설을 둘러보며 갓 보틀링 된 와인부터 곳곳에 준비되어있던 시그니처 와인까지 충분히 잘 즐길 수 있어 좋았다.


투어가 마무리될 때쯤, 바에서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있던 나머지 와인들을 맛 보았다.

이 때 서빙되었던 와인들에 대한 시음 후기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Las Levantadas 2023
(Viura (>50%), Tempranillo Blanco, Malvasia. 스테인리스 스틸 용기 숙성. 앙금 숙성 5개월+)

Acidity: H

Body: M

Notes: 살구, 파인애플, 약간의 바나나, 버터, 흰 꽃, 캐모마일, 브리오슈


리오하의 대표적인 화이트 품종, 비우라를 포함한 로컬 품종 블랜드 와인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 이 와인은 숙성이 끝나고 병입 한 지 3주밖에 되지 않은, 굉장히 신선한 상태였다. 바디는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과실과 꽃 향은 굉장히 풍부해 좋았다. (이번 방문에서 리오하의 레드는 기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화이트에서는 기분 좋은 서프라이즈가 많았다. 앞으로 한국으로 많이 들어오길)


Anahi 2022

(Malvasia, Tempranillo, sauvignon blanc. 스테인리스 스틸 숙성)

Color: onion skin, yellowish orange

Acidity: H

Body: H

Sweetness: semi-sweet

Notes: 복숭아, 살구, 바나나


Anahi는 하비에르가 본인의 어머니에게 헌정한 와인으로, 보통은 템프라니요 블랑을 활용해 화이트로 만들지만, 이번 빈티지에만 특별히 로사도 rosado, 즉 로제 와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각 품종별로 따로 숙성하며, 소비뇽 블랑의 경우 일부러 발효를 일찍 멈춰 잔당을 남겨 활용한다. 이 잔당은 블랜딩 시 산도와 과실향을 같이 띄워줘 밸런스를 맞춰준다. 과실향을 띄우기 위해 저온에서 숙성했는지, 살구와 함께 바나나 향이 꽤 올라왔다. 우리를 안내해 준 직원의 말에 따르면 스페인 국민 젤리 맛과 굉장히 흡사하다고 한다. 바디는 약간 약간 기름진 느낌이었고, 통상적으로 프레쉬하게 마시는 로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취향에는 맞지 않았지만, 나름의 캐릭터가 있어서 즐길만했다.

Viuda Negra Nunca Jamas 2022

(97% Tempranillo, 3% Graciano. 스테인리스 스틸에서 발효 후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8 - 9개월 숙성)

Color: 맑은 루비

Acidity: H

Tannin: H

Body: M

Acl: M

Notes: 크랜베리, 딸기, 자두, 바질, 토마토 잎, 삼나무, 채소, 초콜릿, 커피

Length: H (삼나무보다는 과실/허브가 남음)

산 페드로 오르테가 와이너리의 Viuda Negra는, 오래된 밭에서 나오는 포도를 블랜딩해 만드는 라인업으로, 7개 밭에서 최소 40년 이상된 포도나무의 포도를 활용한다. 특히 그중 이 Nunca Jamas는 와이너리의 오너, 하비에르가 17살에 처음 만든 블랜드로, 오르테가 와이너리의 시작부터 함께 해 온 대표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클래식한 리오하 블랜드이나, 550 - 650 m 고도에서 수령이 꽤 되는 포도나무의 식재 밀도를 높게 심어 영양분을 제한해 길러내어 강렬한 과실 뉘앙스를 잘 표현해 내었다.


소량의 그라시아노 Graciano 가 산도를 올리고 뗌쁘라니요 Tempranillo 품종의 붉은 과실을 띄워줘 밸런스를 잡아준다. 실제로 그라시아노는 리오하에서 이러한 역할로 블랜딩에 많이 활용되고는 한다. 이 와인도 앞서 테이스팅 했던 Les Levantadas와 비슷하게 병입 된 지 4개월밖에 안 된, 병숙성으로 따지자면 아주 어린 편의 와인이었는데, 바로 음용하기 나쁘지 않았던 화이트와 달리 아직 타닌이 까슬하고 산도가 높아 숙성 기간을 좀 더 주고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이 와인이 오르테가 와이너리에 갖는 의미가 남다른 만큼 하비에르는 매해 그 해의 의미에 맞춰 라벨을 변경하며, 보통 주변 지인들에게 일러스트를 부탁한다고 한다. 무통 로쉴드가 매해 라벨 디자인으로 거장들과 협업한다면, 오르테가는 젊은 소형 와이너리답게 친구들과 자기 브랜드만의 색깔을 계속 새롭게 그려가는 느낌이었다.

이외에도 자체 보유한 증류소에서 만든 진이나 베르무쓰를 맛보게 해주었는데, 크게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이렇게 투어는 마무리되었지만, 명실공히 싱글빈야드 와인을 주력으로 내세우고자 하는 와이너리에 와서 싱글빈야드를 안마셔 보고 떠날 수는 없어 바에서 잔으로 Villa Huercos와 La Taconera를 주문해서 시음해보았다.

하비에르 산 페드로 오르테가의 싱글빈야드 와인들

Viuda Negra Villa Huercos 2021

(Tempranillo blanco 100%, 2500 L 오크 배럴에서 숙성)

Acidity: M+

Body: H

Intensity: H

Acl: 14.5% abv

Notes: 아몬드, 등유, 오일리한 향, 휘발성 유기용매 - 아세톤, 버터, 브리오슈

젖산 변환을 강하게 했는지 녹진한 butter 향이 강하게 올라오는 와인이었다. 큰 푸드르에서 숙성하였고, 앙금 접촉을 약 11개월간 오래 진행한다. 뗌쁘라니요 블랑코 Tempranillo blanco 품종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적포도 품종 뗌쁘라니요의 돌연변이라고 하는데, 세미용 특유의 등유와 같은 기름진 향이 올라오면서 바디도 무거워 마시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디서 뗌쁘라니요 블랑코를 맛볼 수 있으려나 싶어 안내하던 친구가 권했을 때 마셔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Viuda Negra La Taconera 2021

(Tempranillo 100%, 스테인리스 스틸에서 발효 후 1200 L 오크 배럴에서 숙성)

Acidity: H

Tannin: M

Body: M-

Acl: 15% abv

Notes: 사탕, 크랜베리, 삼나무, 담배, 토스트, 초콜릿

Length: H


와이너리의 최초의 밭, 라 타코네라 La Taconera에서 재배한 포도만을 이용해 만든 싱글빈야드 와인으로, 8개월 전 갓 보틀링 되어 아직 많이 어린 상태였다. 밭의 고도는 약 600m로 높지만, 토양이 상당히 영양분이 높은지 식재밀도를 헥타르 당 약 5 천 그루로 높여 식재해 영양분을 제한했다. 덕분에 과실향이 잘 농축된 와인이 만들어졌으며, 토스트, 담배나 초콜릿 같은 2, 3차 향이 기분 좋게 올라왔다. 조금 더 숙성하면 꽤 괜찮은 와인이 될 포텐셜이 보였다.


전반적으로 하비에르 산 오르테가의 느낌은 “젊다”였다. 와인도 어리고,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성숙하지 못한 부분도 많이 보였다. 다만 이러한 시도들이 시장의 반응과 함께 쌓여가며 짧은 시간 사이 크게 성장하는 모습이 보여 지금까지 보다는 앞으로가 기대되는 와이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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