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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Nov 06. 2019

예쁜 노트 한 권 사야지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이도우 


여린 꽃잎처럼 연하디 연해서 성급하게 움켜쥐면 망가질까 봐 조심스러운 손길로 살며시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글. 혹여나 잠에서 깨지 않을까 숨도 크게 못 쉰 채 부드럽게 아기를 도닥이듯 숨죽이며 바라보는 글. 여기 그런 글이 있다. 


내가 쓴 글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내 글은 아니고 남의 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사랑스럽고 흐뭇한 미소가 절로 입가에 번지는 아름다운 글. 때로는 간지럽고 때로는 푸훗, 웃음이 나오고 때로는 너무 감질나서 하, 크게 한숨이 나오는 소설이다. 잔잔하면서 세심하고 조용하면서 황홀하다. 자신의 감정에 대한, 혹은 타인의 감정 변화에 대한 예리한 관찰이 없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글이다. 


그리고, 아름답다.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매화꽃 아래서 입 맞추겠네 

 당신이 수줍어해도. 내가 부끄러워도 

 

책 속에서 마음에 드는 대표적인 구절을 뽑을 때면, 일부러 의식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미리 골라놓은 구절을 꼽는 적이 거의 없다.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포인트에서 감동을 느끼는 별난 성격 탓일 수도 있고,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직접 감동받지 않으면 칭찬해 주지 않는 고집 탓일 수도 있고, 남들이 찬사를 보낸 구절에 괜히 박수를 보내기 싫은 삐딱함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번엔, 이미 인터넷에서 수없이 본 저 두 구절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와 대단하다, 어찌 저런 글을 썼을까, 저런 입맞춤이라면 너무 낭만적이겠다는 둥 서투른 미사여구를 함부로 내뱉으면 감동이 훼손될까 걱정이 될 정도로 예쁘다. 내가 쓴 구절이었으면 좋겠다, 는 말도 안 되는 욕심이 들 정도로.


글은 사람을 닮는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처럼 시원시원한 사람은 중국 대륙을 한 입에 다 넣을 만큼 통 큰 글을, 걸음이 느리고 수줍게 웃는 사람은 아기자기하고 잔잔한 글을, 첫눈에 상대방에게 반하는 사람은 불타는 사랑의 글을, 무언가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시니컬한 글을 쓴다. 


나의 글은, 어떤 모습일까. 어느 때는 매우 유쾌하다가도 어느 때는 한없이 우울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차분했다가 어느 때는 울컥 내 분을 참지 못하기도 한다. 뚜렷한 큰 줄기의 분위기 없이 오락가락, 이리저리 천방지축이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고 예측도 불가능한 것을 나름 장점이라 생각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내 글이 너무 시끄럽고 뾰족하게 느껴진다. 좀 더 조용하고 잔잔하면서도 설렘과 감동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다시 좋아지기 시작한 요즘. 오늘은 이 책처럼 연한 벚꽃잎 같은 문장을 예쁜 노트에 끄적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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