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스튜디오 디자인 영업
나는 1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오픈하고 8개월이 지났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우선, 좀 배웠다.
3D 모션 그래픽을 4개월 정도 꾸준히 배웠다.
3D 모션 그래픽을 배우면 웹사이트 키 비주얼로 활용할 수도 있고, 제품을 만들어 팔 수도 있고, 3D 캐릭터도 만들어 팔 수도 있고, 애니메이션도 제작하고, 인포그래픽을 팔 수도 있고, 모션그래픽을 납품할 수도 있으리라는 부푼 꿈을 갖고 열과 성을 다해 배웠다.
"나 멋진 모션그래픽 디자이너가 될지도~"하는 귀여운 생각도 빠지지 않고 했다.
하지만, 현실이 이렇게 녹록할 리 없지...
아니다.
디자이너 스튜디오로 독립하면 일거리가 줄줄이 이어질 거라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웹사이트를 잘 만드니, 웹사이트 제작 업체를 차리면 다 잘 될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3D 모션 그래픽도 하다니, 너무 멋지잖아!
웹사이트에 3D 모션이 날아다니다니, 아 너무 멋져라며 자화자찬을 그렇게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만했던 나 자신을 겸허하게 만드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머리로는,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나한테는 하나도 적용하지 못한 사실들이 적나라하게 전시되었다.
영업. 나는 다를 줄 알았다.
회사에 있을 때 외부 미팅도 '디자이너'로써 많이 참여하기도 했고,
다양한 업종의 외주 업체와도 원활한 소통이 되었던 나 아닌가.
분위기도 화기애애, 업무도 로봇같이 정확하게 척척.
당연히 영업? 문제없다 생각했다.
포트폴리오만 올려두면 연락 줄줄이 있는 거 맞겠지?
이런 생각까지 하며 나는 나에 취해있었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영업은 어나더레벨이라는 것을.
영업 없는 디자인은 그저 속세와 멀리 떨어진 멋있는 무인도 같은 것이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다. 그렇다. 영업이 필요했다. 그것도 디자인 영업.
여기 멋있는 디자인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 디자인 영업해보자. 디자인 필요한 곳 어디든 찾아가자 했다.
그런데, 어디에? 어디로 찾아가나? 웹디자인 필요하신 분 어디 있냐고 어떻게 찾아가느냔 말이다.
그렇다. 나는 영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영업을 처음 접하는, 유튜브 영업 강의 등으로만 영업을 접한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였던 거다. 머리로만 대~충 알고,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것이다. 디자인은 9년 동안 산전수전 겪어가며 이 실력을 쌓았는데,
아뿔싸.
1인 스튜디오는 영업도 내가 하고, 디자인도 내가 하고, 회계도 내가 하는, 모두 모두 내가 하는 길이었다.
나는 전체 과정에서 디자인을 잘할 뿐 그 이외의 앞, 뒤 상황에 대해서는 어깨너머로 보고, 알고만 있을 뿐 이걸 내가 직접 하는 것은 막막한 과정이었다.
먼저,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디자인 영업?
지인 소개로 일을 받거나,
회사에 있을 때 고객사를 가지고 나오지
이와 같은 대답을 들었다. 나는 아무 준비 없이 천둥벌거숭이로 뛰쳐나온 것이다.
나는 내가 관리하던 모든 고객사를 이전 회사에게 잘 인수인계하고 나왔다. 상도덕이라 했다.
순진한 나, 잘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일단, 이 방법은 알겠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구글도 찾아봤다. 유튜브도 찾아봤다.
키워드는 디자인 영업. 딱히 속 시원한 답변은 못 찾았다.
초기에 어떻게 클라이언트 만나냐고요.
대신 그 과정에서 많은 디자인 인력 사이트들을 알게 되었다.
다 올렸다. 나를. 입력란을 꽉꽉 채워 올렸다.
그런데 연락이 없다! 왜 연락이 없지?
그러던 중 한 지인이 힌트를 줬다.
막돼먹은 영애씨에 개지순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밉상이긴 해도 영업을 참 잘한다는 것이다.
그 캐릭터는 그냥 거리낌 없이 영업장에 들어가 이야기도 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잘 캐치한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막돼먹은 영애씨에 나온 영업 장면을 잘 볼 수 있는 유튜브 링크를 찾았다.
극 중 '영업왕이 되고 싶어? 지순에게 연락해~' 씬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회사 사정이 안 좋아 영업도 함께 하게 된 영애씨는 지순씨와 팀이 되어 영업을 하러 돌아다닌다. 날은 덥고 개지순도 싫은 영애씨는 대충 눈 앞에 보이는 낡은 간판을 가리키며 여기 간판 바꾸면 되겠네요 말한다.
개지순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 보쌈집은요. 이 동네에서 장사한 지 20년이 넘었어요. 역사가 깊은 곳이라 일부러 빈티지하게 이렇게 놔둔 거예요. 이 동네는 신장개업 아니면 간판 할 데도 없어요.
그동안 내가 다 돌아다녔으니까.
나는 이 대사에서 나는 영업에 대해 깨달았다.
영업은 고객에게 필요한 것을 내가 찾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고객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내 디자인의 훌륭함을 어필할 것이 아닌 고객이 필요한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목적을 갖고 찾아오지만, 이제 아무것도 없이 똑 떨어져 독립한 나는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야 하는 업무가 주어진 것이다.
앞으로 나는 고객에게 필요한 디자인을 연결하기 위해 돌아다닐 것이다. 세계 방방곡곡. 우리나라 곳곳.
1인 디자인 스튜디오로 잘 자리 잡는 고군분투기는 계속됩니다.
응원해주세요. 할 수 있다! 아이 캔 두!
P.S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디자이너인 영애씨가 영업을 어떻게 경험하는지에 대한 영상을 여러분께 공유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MzAmnQUT1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