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5.
고창으로 가는 길. 옆에서 훈수 둬서 운전 방해할 거면 차라리 음악이나 들으라는 아내의 말에 재빨리 블루투스를 연결한다. 운전할 때는 운전대를 쥔 사람 말이 법. 언제 시끄럽다고 끄라고 할지 모르니 허락했을 때 충분히 즐겨야 한다.
예상과 달리 비도 안 오고 하늘에는 구름도 몇 조각 없다. 월요일 고속도로는 주말만큼 막히지 않아서 달리는 맛이 있다. 이런 날 어떤 음악을 틀어야 제맛일까, 즐거운 고민을 한다.
재즈는 금지당했다. 출발 전에 집에서 4시간 내리 재즈를 틀어놨었기 때문이다. 스윙, 브라질리안 삼바, 아방가르드 등등 닥치는 대로 틀어놓고 볼륨을 한껏 올려놓은 통에 아내는 그만 지겨워져 버린 듯하다.
한 때 푹 빠져서 지겨울 만큼 들었는데도 때때로 다시 꺼내 듣고 싶어지는 음악이 있다. 9와 숫자들의 모든 앨범이 그렇다. 그중에서, 나온 지도, 들은 지도 가장 오래된 1집 셀프 타이틀 앨범을 튼다. ‘그리움의 숲’이 흘러나온다.
너의 눈빛은 별처럼 밝아서
우리 집에서도 다 보여
나도 알아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거룩한 너의 광채는 내 눈을 멀게 하겠지
너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커서
내 이불속까지 다 들려
나도 알아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심오한 너의 언어는 내 귀를 멀게 하겠지
매일 밤 나를 찾는 너에 대한 그리움
짧은 한마디 말도 난 건넬 수 없네
울창한 너의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나는
빨간 모자를 써도 구조받을 수 없네
(후략)
노래를 듣던 아내가 말한다.
“오빠는 이런 가사 못 쓰지?”
나는 시인한다. 나는 저런 훌륭한 가사는 쓰지 못한다. 노래 가사든, 시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칼럼이든, 뭐든 쓰다 보면 처음 시작과 달리 혼자 진지해져서 길을 잃고 만다. 너무 무겁고 심각해져서 쓰는 나도 피곤한 상태가 된다. 의도와 달리 거창한 이야기가 된다. 마치 이 주제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인 것처럼 착각에 빠진다. 결과물은 영 별로다.
아내가 나의 실패에 관해 훈수를 둔다. 알고 있지만 쓰라리다.
“너무 무겁고, 혼자 심각하고. 상징이나 비유도 들으면 바로 확 오는 그런 느낌이어야 되는데.”
특히 가사는 따로 써 놓고 보는 것과 노래로 듣는 게 많이 달라서 실패를 변명하기가 수월하다. 그만큼 훌륭한 가사는 흔치 않다. 가사와 음악이 콩떡처럼 조화로운 음악을 듣는 건 행복한 일이다. 9와 숫자들 1집이 끝날 때쯤 정안알밤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에서 교대해서 내가 운전대를 잡는다. 조수석에서와는 다른 속도감이 몸으로 전해져 온다. 책임감이 달라붙은 감각이다. 조수석에 앉을 땐 운전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를 온전히 맡겨버리면 마음은 편하다. 운전석에 앉으면 나뿐 아니라 여럿의 목숨을 잠시 맡는다. 어깨가 뻐근하다.
우리는 차에서 9와 숫자들의 가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창에서 어디에 갈지 생각한다. 마이너스인 주식 계좌와 가족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언제 어디에서나 똑같다. 고속도로를 달린다고 해서 갑자기 특별한 대화를 하지는 않는다.
오늘 죽을 거라 생각하고 차에 올라탄 사람은 없을 거다.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가 나와 내 가족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운전대를 잡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고속도로에서는 교통사고가 나고, 났다 하면 사람이 죽는다. 갑자기 그렇게 이야기가 멈춘다.
사고를 당하는 순간의 감각이 생생하게 몸을 감싼다. 살면서 크든 작든 몇 번인가 다치거나 사고를 당해왔다. 그 일들은 순식간에 예상치 못하게 일어났다. 사고는 원래 그런 식이니까. 9와 숫자들 가사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다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그 순간의 감각이 어떨지를 알 것 같아서 공포스럽다. 그게 너무 아득하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안전하게 저기로 건너가리라. 아직 사라지지 않으리라. 지금 살아 있는 모두는 수없이 많은 죽음의 위험을 이겨낸 운 좋은 사람들. 이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가사는 어떻게든 써보면 되지. 혼자서 그런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로 고창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