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1.
풍부한 상상력과 독특한 컨셉으로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는 류의 소설이 있다. 정용준의 <바벨>도 그런 소설이다. 과학적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어 SF라 불러도 좋지만 그려지는 세계의 암울함은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말을 하는 순간 형체를 가진 물질(펠릿)이 몸에서 튀어나온다는 상상. 그로 인해 변한 인간들의 세계와 그 안의 군상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와 그것을 나르는 말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는 시작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기획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읽을 때면 세상에 나오지 못한 무수히 많은 습작들을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엄청난 이야기들이 책이 되지 못한 채 컴퓨터 어딘가에 묻혀있을 것인가. 뭔가가 모자라서 공모전의 문턱을 넘지 못했거나, 공모전의 한계 상 발견되지 못한 이야기들. 작가가 되지 못해 누구에게도 읽히지 못한 이야기들이.
오래전 합평 스터디를 함께 하던 사람 중에는 수백 편의 단편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지방지에 한 번 당선된 적은 있지만 별 재미는 못 본 모양이었다. 또다시 메이저 신춘문예에서 떨어지면 글쓰기를 접을 생각이라고 했었다. 그때가 10년 전이고 그 후로 그 사람이 쓴 소설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없는 걸 보면 아마 잘 풀리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사람은 그때의 결심대로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는지 궁금하다.
세상에 나오는 책이 이미 어마어마하게 많다. 하루에 출판되는 책이 평균 150권, 1년에 55,000권 수준이라고 하니, 습작생들의 서랍에 있는 이야기들을 굳이 끄집어내지 않아도 이야기는 이미 세상에 넘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더 새롭고 더 재미있고 더 끝내주는 뭔가를 갈망한다. 이야기는 결코 넘치는 법이 없을 것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열기는 텍스트힙 현상과 맞물려 가히 폭발적이었다. 최근에 코엑스에서 하는 박람회에 꽤 자주 참석했는데 이렇게 엄청난 인파는 비교 불가한 수준이다. 이런 인기라면 한국 도서 출판 시장의 미래는 걱정 없는 게 아닌가 싶었다. 숨어있던 독자들은 며칠간 얼굴을 드러내고 마음껏 취향을 뽐내고 있었다. 다들 즐거운 얼굴로 세상에 넘쳐나는 이야기, 감각적인 굿즈 중 자신을 대변할만한 것들을 수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큰 출판사, 독립출판사 가릴 것 없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몸이 달아 보였다.
부스 사이를 한 바퀴 돌기만 했는데도 진이 빠져버린 건 단순히 사람에 치이고 소란스럽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좋은 것들을 찾아 눈을 빛내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더 새롭고 더 재미있고 더 끝내주는 뭔가를 갈망하는 눈빛들. 치열하게 자신을 깎아 나가는 건전한 이고(ego)들의 집합체 같은 사람의 물결이 통로마다 출렁였다.
강연장에서 관객들은 지난 12월 이후 ‘읽을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어 힘들었다는 식의 질문을 하고 있었다. 무대에 앉은 작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에도 우리는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고상한 선문답 같은 지식인들의 대화가 어딘가 조금 역겨웠다. 타락한 나는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고, 기진맥진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책을 읽고 싶었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텍스트를 읽고 싶었다. 정용준이 창조한 <바벨>의 세상을 오로지 일대일로 마주하고 싶었다.
장마가 시작된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앞으로 당분간 맑은 하늘은 보기 힘들다는 사실이 조금 힘이 됐다.
EBS 공감에 브로콜리너마저가 나왔다. 오랜만에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했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노래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떤 시기에 외운 노래들은 잊히지 않는다.
브로콜리너마저를 보며 세상에 나오지 못한 무수히 많은 노래들을 생각했다. 내가 알던 사람들은 그것들을 가슴 깊숙이 묻고 살아갈 테지. 그중에는 정말 좋은 노래들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다.
활동 19년째라며 멤버들은 지나온 시간을 추억했다. 긴 시간 동안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그 끈기와 에너지가 부러웠다.
그들은 이제 중년의 위치에서 노래 가사를 쓴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부딪쳐도 이야기가 되는 젊음과 청춘은 끝났다. 내 안에 쌓인 모순을 더 깊게 고민하는 나이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창작의 방식도 달라진다고 했다.
이것이 멈추지 않고 창작하는 사람의 힘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표현할지 늘 생각한다. 그 과정 자체가 생각의 힘을 키우고 철학을 두텁게 한다. 그렇게 나온 것이 사람들에게 가 닿았기 때문에 이들은 아직까지 음악을 할 수 있는 거다.
고독한 작업을 계속한다고 해서 세상이 알아주지는 않는다. 영원히 발견되지 않을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가. 실패한 예술가들은 아직도 어두컴컴한 방에서 심지에 불을 붙이고 뭔가를 끄적이고 있는가.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면 아직 기회는 있는가. 수백 편의 습작이 수천 편이 되도록 쓰고 또 쓰다 보면 언젠가는 책이 되어 읽힐 수 있는가.
나는 아직도 답할 수 없다. 내가 아는 실패한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