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9.
“그럼 여기에 있는 이 돌은 뭘까요?”
해설사가 낸 퀴즈를 맞히고 싶은지 아내는 열심히 이 단어 저 단어 던져보는데 자꾸 답을 빗나간다.
“이 돌은 하마석(下馬石)이에요. 왕도 말에서 내려야 했던 거지요.”
장릉(長陵)을 가볍게 돌아본 뒤에 헤이리 마을이나 임진각 관광지를 마지막으로 서울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매표를 한 뒤 입구로 들어서는데 해설사의 집에서 마치 우리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해설을 듣겠느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은 오후 1시 30분. 마침 하루 세 번 중 두 번째 해설 시간이었던 것이다. 언제나 설명 듣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반가운 목소리로 해설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우리 둘만을 위한 파주 장릉 강의 시간이 시작됐다.
“이 느티나무에서 파랑새를 봤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내가 보기엔 여기 터가 그래. 귀한 기운이 흐르는 거지. 인조랑 인열왕후가 금슬이 좋았던 모양이에요. 여기 나중에 합장을 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지.”
이야기 들려주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만나면 좋은 합을 이룬다. 아내의 적극적인 리액션에 해설사의 이야기도 곁가지를 뻗는다. 하루 종일 몇 명 들르지도 않는 곳에서 그저 무척 심심했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해설사 아주머니는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대충 한 번 훑어보려던 내 생각과는 달리 우리의 걸음은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래봤자 여기저기 수없이 널린 왕의 무덤 중 하나가 아닌가.
어제 파주로 들어와 추어탕으로 점심을 먹고 음악감상실에서 차를 한 잔 마실 때까지도 제법 여행 기분이 났다. 우연히 들어간 음악감상실은 예상보다 훌륭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주인의 취향에 맞춘 클래식 위주의 선곡이어서 클래식 귀가 없는 우리에게는 다소 아쉬움도 있었다. 그렇지만 파바로티의 목소리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는 무지렁이의 몸에도 전율이 흘렀다. 느낄 수 있었다. 감동을 일으킨 게 파바로티의 음악인지 비싸고 좋은 오디오 장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 뒤에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잠시 쉰다는 것이 잠이 들었다. 그 사이에 원래 좋지 않았던 컨디션이 더욱 나빠졌다. 출발 전 3일 동안 몸살 기운과 싸우다가 좀 나아진 것 같아 겨우 계획대로 파주로 이동한 길이었다. 잠깐 조는 사이에 몸과 함께 마음도 왠지 가라앉아 버렸다. 나는 아내에게 퉁명스럽게 굴었고 아내의 기분도 점차 내려앉았다. 헤이리 마을을 들렀지만 퇴근 시간이 가까워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평일 해질녘의 프로방스 마을은 마치 태풍이 휩쓸고 간 도시처럼 적막하고 쇠락해 보였다. 속의 말들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저녁을 빵으로 대충 때운 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갔다.
해설사는 우리에게 결혼 몇 년차인지 물었다. 그리고 으레 그렇듯 아이가 있는지도.
“어머, 우리 아들도 3년 됐는데, 난 애들한테 애기 얘기 하지도 않아. 어차피 하늘이 주는 거지, 맘대로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 아들이 현대자동차 다니는데, 저기 광양, 거기 수소차 하는. 걔들도 주말 되면 그냥 지들끼리 놀러 다니느라 바빠요. 난 일절 애기 얘기 같은 거 안 해.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거지 뭐, 요즘 세상에.”
마치 자식 부부를 대하듯 우리에게도 그런 일로 부담 갖지 말라는 투다. 위로를 하는 건지 응원을 하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어떤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 어머니도 친구들을 만나면 저런 말투와 저런 태도로 이야기를 할 것 같아서, 갑자기 마음이 아파진다.
해설사의 이야기는 역사 시대와 현재를 넘나 든다. 해석과 감상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아닌 것은 분명히 구분한다. 능침에는 병풍석이 둘러싸고 있는데, 전통적인 십이지신상이나 구름무늬가 아니라 모란무늬와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 이곳 장릉의 특징이라고 했다.
“이건 어디 나와있는 건 아닌데, ‘내 생각에는’ 현생이 너무 힘들었으니까, 호란(胡亂)이랑 이괄의 난 같은 걸로. 내세의 복을 빌려는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에요.”
실제 파주에 온 것은 몇 번 되지 않고, 그 몇 번도 교하니 운정이니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논밭뿐이던 시절의 얘기다. 내 어머니의 고향. 나의 한쪽 피붙이들이 살고 있는 이곳의 이름을 어려서부터 들어서인지, 나에게 파주는 익숙한 곳이다. 익숙하지만 실재가 아닌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곳이다. 안개가 끼어 있고 기와집들이 잔뜩 모여 앉은 금촌. 결혼하기 전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에서 보았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외삼촌의 러브스토리가 꽃피었던 고장.
차를 타고 한 시간이면 오는 곳인데. 한 번도 오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특별히 어머니의 고향, 나의 외갓집이 있는 곳이어서 오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 대해 아내에게 해 줄 얘기가 없는데 아내는 이곳에 대한 나의 얘기를 듣고 싶어 했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줄 수 없어 난감했다. 이번 파주 여행은 그 어떤 곳보다 더 시시하고 기억에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아침에 체크아웃을 하고 바로 오두산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나의 이야기는 없지만, 여기에는 다른 많은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생각보다 가까운 북한 땅을 보고 아내는 놀랐다. 이렇게 눈에 보일만큼 가깝게 접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에 실려 계속해서 밀려 들어왔다. 저들의 관심이 한편으론 고맙지만 어딘지 유쾌하지 않았다. 북한은 저 앞에 닿을 듯이 가까운 곳에 있지만 나는 저 땅을 보러 사십 년 만에 처음으로 파주에 왔다.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만큼 통일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내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함께 있으면서도 아주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낀다. 아슬아슬한 선을 가운데 두고 서로가 나뉘어 있음을 다시 깨닫곤 한다.
사실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르겠을 때가 살면서 더 많았다. 우리가 서로를 잘 모르겠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평생에 걸쳐 우리는 점점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아내는 내가 파주에 추억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의 추억을 궁금해했지만, 사실 나는 파주에 아무런 추억도 가지고 있지 않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파주에 아무런 추억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찬찬히 얘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직 아내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얘기해서 풀 수 있다면 아직 어긋난 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통일전망대를 나왔다. 중국인들이 단체사진을 찍으며 한 마디씩 하는 통에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올라가는 계단은 이렇게 2개 있지만, 내려갈 때는 하나뿐이에요.”
왕의 영혼은 정자각에서 뒷문을 통해 혼유석으로 들어간다. 사람만 다시 내려오면 된다. 죽은 자와 산 자는 다른 길을 걷는다. 나는 반드시 그래야 할 것처럼 산 자들이 다닌다는 계단을 밟고 땅으로 내려온다.
왕과 왕비가 묻힌 무덤의 잔디는 관리가 잘 되어 있다. 푸른 능을 잘 자란 소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새삼, 잘 관리되어 있어 꽤 볼만한 유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해설사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야기는 처마에 달린 어처구니와 연리지의 신비함을 거쳐 파주에서 꼭 가봐야 할 관광지로 이어진다. 아내는 우리가 곧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대신 해설사가 소개하는 장소를 귀담아듣는다.
우리 세 사람은 장릉 관람을 마치고 다시 입구로 돌아왔다.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해설사 선생님은 사무실로 들어가 종이에 뭔가를 적어 아내에게 건넸다. 종이에는 지금 바로 우리가 가면 좋을만한 장소와 줄 서서라도 꼭 먹어봐야 할 국물 없는 우동집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글씨가 반듯하다.
아내는 글씨가 반듯한 해설사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우리의 뒤꼭지에 대고 선생님이 말했다.
“둘이 백년해로할 것 같아. 행복하게 살아요.”
해설사 선생님의 근거 없는 덕담과 함께 파주가 구체적 실체로 내 안에 들어섰다. 여긴 내 어머니의 고향. 나의 외조부모가 살다가 돌아가신 고장. 여기저기 널린 왕의 무덤 40여 기 중 장릉이 있는 곳. 보이지만 볼 수 없는 속을 가진 땅.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잘 아는 것처럼 굴다가 상처를 주고받는, 여기저기 널려 있는 사람 사는 마을 중 하나. 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