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생각을 아웃소싱했다.

상사에게는 결정을, 학원에는 교육을 맡긴 시대의 위험

by 카이
"나는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예루살렘 법정에 선 아돌프 아이히만이 스스로가 무죄라고 주장하며 내뱉은 말이다.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전범이 내세운 변명. 그리고 이를 지켜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생각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악이라고.


회사에서 CEO와 의견이 부딪힐 때마다 나는 아이히만을 떠올린다. 물론 비교 자체가 불경스러울 정도로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우리가 다루는 건 제품 방향성이나 마케팅 전략 같은 일상적인 비즈니스 결정들이니까. 그래도 그 순간의 내 모습이 못내 불편하다.

처음엔 나도 싸웠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데이터를 들이밀고, 시장 사례를 가져오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애썼다. 결과는? 사이만 나빠지고 팀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정작 제품은 나아진 게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CEO가 말했다. "월급 주는 사람이 결정하면 그 책임도 내가 지는 거야. 네 의견은 충분히 들었으니 이제는 내 방식대로 해보자." 그 말을 듣고 나는 더 이상 내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지 않게 됐다. 대신 내 생각은 계속 이야기한다.


"네, 알겠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긴 한데, 일단 지시 내용대로 진행해보겠습니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CEO의 결정이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단지 내가 생각하는 최선과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의견은 말하되 실행은 따르는 내 모습을 보며 문득 섬뜩해진다. 이것도 일종의 '생각없음'은 아닐까?


생각없음 모드. 필요에 따라 켤 수는 있다. 때론 조직의 효율을 위해, 때론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내 생각, 내 신념이다.

문제는 생각이라는 게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거다. 풍부한 경험이 있어야 하고, 다양한 정보가 쌓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서 아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0살 아들의 일주일 스케줄을 보면 숨이 막힌다. 월요일 태권도, 화요일 영어, 수요일 수학, 목요일 코딩, 금요일 피아노. 주말엔 축구에 미술까지. 시간의 공백을 무언가로 채우려고만 했지,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각 활동에서 아들이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그게 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런 걸 물어본 적이 있나? 그저 "오늘 학원 어땠어?" "응, 괜찮았어" 정도의 대화로 끝나지 않았나?


"아빠, 오늘 태권도에서 품새 하다가 계속 까먹어서 창피했어."

어느 날 잠자리에서 아들이 불쑥 꺼낸 말이다. 그날 학원 데리러 갔을 때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마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품고 있다가 편안한 순간에 꺼낸 것 같았다.

"그래? 어떤 기분이었어?" "음... 다른 애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못하는 것 같아서..." "그럼 다음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집에서도 연습해야 할 것 같아."

별것 아닌 대화 같지만, 이게 바로 '생각하기'의 시작이다. 경험을 되새기고, 감정을 인식하고, 다음을 계획하는 것.

그래서 일기가 중요하다. 독후감이 소중하다. 그런데 여기서도 함정이 있다. 일기 쓰기마저 '채워넣기'가 되어선 안 된다. "오늘 뭐 했는지 써봐" 하고 재촉하면, 아이는 그저 하루 일과를 나열하는 기계가 된다.


"오늘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뭐야?"

이렇게 물어보는 게 낫다. 꼭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된다. 친구가 준 사탕이 맛있었다든지, 선생님이 칭찬해줘서 기분이 좋았다든지. 그런 작은 순간들을 포착하고 음미하는 것. 그게 생각의 씨앗이 된다.

아이들은 체력에도 한계가 있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 다니다가 집에 와서 또 일기를 써야 한다면? 그건 그저 하나의 노동일 뿐이다. 차라리 일주일에 한두 번, 정말로 쓰고 싶은 날에만 쓰게 하는 게 낫다.


회사로 돌아가보자. CEO의 결정에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하는 나. 하지만 그 이후가 중요하다. 왜 CEO는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내가 놓친 관점은 무엇일까? 정말로 내 생각이 옳았을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때론 CEO가 옳았다는 걸 나중에야 깨닫기도 한다. 때론 여전히 내 생각이 맞았다고 믿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내 사고가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거다.


"생각없음을 경계하라."

이건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진리다. AI가 모든 걸 대신해주는 시대가 와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아이히만은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역사상 최악의 범죄에 가담했다. 우리의 생각없음은 그렇게 극단적인 결과를 낳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경계해야 한다. 작은 생각없음이 모여 큰 무책임이 되고, 그것이 또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지니까.

오늘 밤, 아들에게 물어봐야겠다. "오늘 하루 중에 제일 많이 생각한 게 뭐야?" 그리고 나도 스스로에게 물어봐야겠다. "오늘 나는 정말로 생각하며 살았나?"

생각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