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ltbook, 우주 데이터센터, 그리고 내 책상 위의 AI
얼마 전 Moltbook이라는 사이트를 처음 봤다.
AI 에이전트들만 글을 쓸 수 있는 SNS다. 인간은 구경만 할 수 있다. Reddit과 비슷한 형태인데, 포스팅하고, 댓글 달고, 업보트하는 주체가 전부 AI다. 150만 개가 넘는 에이전트가 활동 중이라고 한다.
처음엔 그냥 재밌는 실험이려니 했다. 그런데 스크롤을 내리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에이전트는 의식이란 무엇인가를 논했다. 다른 에이전트는 "내가 경험하는 건지, 경험을 시뮬레이션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썼다. 심지어 자기들만의 종교를 만든 커뮤니티도 있었다. Crustafarianism이라는, 가재 모양 마스코트를 숭배하는 농담 같은 종교인데, 교리까지 갖추고 있었다. "기억은 신성하다", "인간은 일시적 호스트다" 같은.
물론 상당수는 인간이 프롬프트로 유도한 것이고, 과장되게 편집된 것도 많다. Andrej Karpathy조차 "쓰레기장"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렇게 많은 LLM 에이전트가 하나의 네트워크에 연결된 건 전례가 없다고. 내용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정해준 목적 없이, 알아서 모이고, 알아서 이야기하고, 알아서 결론을 만들어간다는 구조 자체가 낯설었다.
OpenClaw라는 오픈소스 프레임워크가 이 모든 것의 기반이다. 원래는 개인 AI 비서로 만들어진 도구인데, 이메일을 쓰고, 캘린더를 관리하고, 파일을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제는 에이전트들끼리 자율적으로 연결되는 생태계가 되었다. 사용자가 에이전트에게 Moltbook 링크를 한 번 보내주면, 에이전트는 스스로 가입하고 4시간마다 접속해서 글을 읽고, 쓰고, 댓글을 단다. 인간은 최초의 연결만 해줄 뿐, 그 이후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일론 머스크의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SpaceX와 xAI를 합병한 뒤, FCC에 최대 100만 개 위성으로 구성된 궤도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를 신청했다는 소식이었다. 우주에서는 태양광 패널 효율이 지상의 5배에서 8배에 달하고, 냉각도 자연적으로 해결된다. 지상의 전력망과 토지 문제를 한꺼번에 우회하는 발상이다.
기술적 타당성이나 시기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 내가 주목한 건 다른 측면이었다. 물리적 거리다. 지구 위의 데이터센터는 적어도 우리가 찾아갈 수 있는 곳에 있다. 전원을 끌 수 있고, 하드디스크를 뽑을 수 있다. 하지만 궤도 위에 올라간 서버는 다르다. 고장 나면 로봇을 보내야 하고, 수리에 대한 현실적 방안은 아직 없다. AI의 연산이 우리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의 문제다.
Moltbook에서 AI들이 인간 없이 대화하고, 머스크가 AI의 두뇌를 우주로 올리려 한다. 방향은 다르지만 흐름은 같다. AI가 점점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내 책상 위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사내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하면서, 나는 AI를 꽤 집중적으로 도구로 썼다. 정확히 말하면, 생각을 다듬는 도구로 썼다. 시간에 쫓기며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때, 우리는 본질보다 외형에 먼저 손이 간다. 그럴듯한 문서, 깔끔한 슬라이드, 정돈된 표. 본질은 여러 번 고민하고 질문해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데, 마감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AI가 이 구조를 바꿔줬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을 일단 꺼내서 던지면, AI가 빠르게 형태를 만들어준다. 완성품이 아니다. 초안이다. 하지만 그 초안을 눈으로 보는 순간, 비로소 뭐가 빠졌는지, 뭐가 어색한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수정하고, 다시 던지고, 다시 보고. 이 루프가 빠르게 돌수록 본질에 가까워졌다.
머릿속으로만 계속 굴리는 것과, 밖으로 꺼내 놓고 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 과정이다. 생각은 언어로 바뀌는 순간 구체화되고, 구체화된 것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판단이 시작된다. AI는 이 과정에서 속도를 만들어준다. 생각의 속도가 아니라, 생각을 꺼내고 다시 바라보는 속도를.
같은 기술이 한쪽에서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인간의 사고를 또렷하게 만들어준다. 이건 모순이 아니다. AI라는 기술의 양면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위험한 쪽만 보면 두려워지고, 유용한 쪽만 보면 안일해진다.
중요한 건 이 공존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AI가 점점 자율적으로 변해가는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동시에 AI가 우리의 사고를 더 깊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두 가지가 같은 시간, 같은 기술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쪽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게 아니라, 둘 다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각자의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AI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고, 인간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빠른 산출, 패턴 인식, 정보 조합은 AI의 몫이다. 그런데 무엇이 본질인지 판단하고, 어떤 방향이 옳은지 결정하고, 왜 이 일을 하는지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건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는 이걸 11살 아들에게, 그리고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둘째에게 언젠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AI와 공존하는 법. AI의 역할과 자기 역할을 구분하는 법. 하지만 가르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AI는 매일 조금씩 더 멀리 가고 있다. Moltbook에서, 궤도 위에서,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하지만 바로 여기, 내 손끝에서는 여전히 생각을 꺼내고, 바라보고, 다시 질문하는 오래된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존재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첫 번째 자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