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오답을 바라보는 각도가 교육을 바꾼다
"아빠, 이거 왜 해야 돼?"
어젯밤, 10살 아들과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여러 도형이 겹쳐진 그림에서 특정 각도를 구하는 문제였는데, 아들이 막혔다. 알고 있는 것들을 조합해서 단계를 밟아야 답이 나오는 유형이었다. 다른 숙제는 전부 제쳐두고 그 한 문제만 붙잡았다. 답을 알려주면 30초면 끝날 일을 한 시간 넘게 씨름했다. 아들은 점점 지쳐갔고, 결국 그 질문이 나왔다.
"이 각도를 구하는 게 커서 무슨 소용이야?"
솔직히 말하면, 소용없다. 이 아이가 성인이 되어 겹쳐진 도형 사이에서 보조선을 긋고 각도를 역추적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이 각도를 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 각도를 구하기까지 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중요한 거야. 그 과정이 단련되면, 네가 어떤 문제를 만나든 쓸 수 있어."
아들이 납득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대화가 끝나고, 며칠 전 봤던 어떤 댓글이 떠올랐다.
"수학 공식 사회 나오면 아무 쓸모도 없는데 왜 배움?" 좋아요가 수천 개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정말로,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일상에서 쓰는 사람은 극소수다. 미적분을 업무에 활용하는 직업은 전체의 몇 퍼센트나 될까.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수학뿐 아니다. 역사도, 철학도, 심지어 과학의 상당 부분도 '사회에 나가서 직접 쓸 일'은 드물다. 이 논리대로라면 대부분의 학문은 쓸모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수학이 쓸모없는 게 아니라, 수학이 쓸모없게 느껴지도록 만든 구조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수학을 떠올려보자. 공식이 주어진다. 공식에 숫자를 대입한다. 답을 구한다. 답이 맞으면 점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왜 이 공식이 이렇게 생겼는지, 이 공식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지는 다루기 어렵다. 수학은 본래 세상의 패턴을 이해하고, 복잡한 현상을 구조화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사고의 도구다. 그런데 수십 명을 한 교실에 넣고,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범위를 끝내야 하고, 객관적으로 채점 가능한 시험을 만들어야 하는 구조 안에서는, 도구의 '사용법'만 반복 훈련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된다. 망치를 쥐어주고 못을 박는 연습만 시킨 셈이다. 망치가 왜 이런 모양인지, 못 말고 다른 것에도 쓸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어도, 시스템이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한계 안에서도 "왜 배우는지"를 고민하고, 사고의 과정을 가르치려 애쓰는 교육자들이 분명히 있다. 공식을 던져주기 전에 그 공식이 탄생한 맥락을 이야기해주는 선생님, 답보다 풀이 과정을 더 중요하게 봐주는 선생님. 문제는 그런 노력이 현재의 평가 체계 안에서 충분히 빛을 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수능이라는 최종 관문이 여전히 정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고르는 능력을 측정하는 한, 아무리 과정을 강조해도 결국은 결과로 수렴하게 된다.
나도 학생 시절에 같은 의문을 품었다. "이걸 왜 배우지? 어디에 쓰지?" 그리고 그 의문에 답해준 선생님은 거의 없었다. 없었다기보다는, 답해줄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내 아들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교육의 형태는 바뀌었을지 몰라도, 이 구조적 간극은 여전하다. 배움의 '이유'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시스템. 그래서 학생들은 공식을 외우고, 시험을 보고, 졸업하고, 잊어버린다. 그리고 돌아보며 말한다. "쓸모없었다"고.
그런데 흥미롭게도, AI 시대가 이 오래된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드러내고 있다.
AI가 본격적으로 일상에 들어오면서 '실용적 지식'의 가치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공식을 외울 필요가 없다. ChatGPT에게 물어보면 된다. 코드를 짤 줄 몰라도 된다. AI가 대신 짜준다. 엑셀 함수를 모르면? AI가 알려준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사회에 나가면 쓸모없다"고 했던 그 지식들, 사실 실용적이라고 여겨졌던 지식들도 마찬가지로 쓸모가 줄어들고 있다. 엑셀 함수를 외우는 것도, 코딩 문법을 암기하는 것도, 이제는 AI가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면 뭐가 남는가.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이 남는다. "이게 문제다"라고 인식하는 것, 여러 현상 속에서 핵심을 짚어내는 것. AI는 질문을 받으면 답을 생성하지만,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해결의 방향을 설계하는 능력이 남는다. 답을 바로 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순서로 접근해야 하는지,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를 판단하는 것. 내 아들이 그 문제 앞에서 한 시간 동안 한 일이 바로 이것이다. 답 자체가 아니라, 답에 이르는 경로를 스스로 구성하는 연습.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틀린 답을 보고 왜 틀렸는지를 설명하는 능력이다.
현재 우리의 평가 체계는 정답에 최적화되어 있다. 맞으면 점수를 받고, 틀리면 감점당한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 특히 AI와 협업하는 환경에서 가장 핵심적인 능력은 오히려 오답을 다루는 능력이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받아들고, 이게 맞는지 틀린지 판단하고, 틀렸다면 왜 틀렸는지를 짚어내고, 어떤 방향으로 수정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것. 이것이 지금 AI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AI에게 코드를 짜달라고 한다. 결과물이 나온다. 돌려보니 에러가 난다. 이때 중요한 건 코드를 직접 고치는 능력이 아니다. 에러의 원인을 추론하고, AI에게 정확한 방향을 다시 제시하는 능력이다. "이 부분의 로직이 잘못된 것 같다. 이런 방향으로 수정해봐." 이 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사고 과정이, 사실 내 아들이 그 문제 앞에서 한 시간 동안 단련하고 있던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채점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정답에 동그라미를 치는 방식이 아니라, 오답에 대해 "왜 이것이 틀렸다고 생각하는지, 어떻게 고쳐야 한다고 보는지"를 서술하게 하고, 그 사고의 과정에 점수를 주는 방식. 과거에는 이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한 명의 선생님이 수십 명의 학생이 쓴 서술형 답안을 일일이 읽고 평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AI가 이 정성적 평가를 충분히 보조할 수 있다. 학생이 쓴 오답 분석을 AI가 읽고, 논리의 흐름을 평가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 기술적으로 이미 가능한 일이다. 시스템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을, 기술이 허락하기 시작한 셈이다.
아이러니하다. "수학이 쓸모없다"고 느끼게 만든 구조를, AI가 바꿀 수 있다. "왜 틀렸는지"를 묻는 교육이 가능해진 시대.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오답을 해석하는 능력이 핵심이 되는 시대. 그리고 그 능력이야말로, AI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어젯밤, 아들은 결국 그 문제를 풀었다. 답이 맞았는지보다 중요한 건, 한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자기 머릿속의 길을 만들어갔다는 것이다. 언젠가 이 아이가 AI에게 질문을 던지고, 돌아온 답을 보며 "이건 틀렸는데, 이유는 이거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날의 시작은 아마, 겹쳐진 도형 한 문제 앞에서 보낸 그 한 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