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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Aug 23. 2020

강연, 모임 기획할 때 고려할 것들

콘텐츠 에디터가 하는 일2

1화, 2화에 이어 이번에는 강연/모임 기획하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중 텍스트 콘텐츠 기획을 잇는 큰 덩어리다. 


1화 나는 어떻게 콘텐츠 기획자가 되었나

2화 텍스트 콘텐츠 기획하기


현재 내가 속한 곳에서는 지식 콘텐츠를 텍스트를 넘어 입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강연/모임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물론 매출 측면에 대한 고려도 있었다. 서비스 초기 콘텐츠가 부족했을 때는 사람을 모아 매출을 일으키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규모 있는 모임을 열면 단기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었다. 


25인 규모의 작은 모임부터 200명 규모의 컨퍼런스까지 해왔고, 코로나 이후에는 온라인 강의도 제공하고 있다. 사실 코로나 한참 전부터, 작년이었나, 영상 강의나 스트리밍 질의응답 서비스를 하려고 팀내에 발의했었는데 잘 진행되지 않았다. 그 후로 계속 안하게 될 줄 알았는데 코로나의 영향력이 참 크다. 


강연/모임 기획은 크게 기획과 운영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기획 시에 중요한 것 몇 가지.


1. 기획의도

왜 모임을 만들어야 하는가, 모인 사람에게 어떤 경험을 줄 것인가. 이게 사실 모든 기획의 전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 목표에 따라서 모임의 규모가 정해지고 예산, 공간, 모객 인원, 프로그램 등등 다른 것들이 정해진다. 


일례로, 처음에 우리 팀에서는 100~200명 규모의 컨퍼런스를 월 1회 진행하고자 했다. 지금 주목해볼만한 일과 산업의 변화를 중심으로, 그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연사를 무대에 세웠다. 일과 산업의 변화에 관한 지식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고 배우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 그런 컨퍼런스는 컨퍼런스 주제와 컨퍼런스에 등장하는 연사에 따라 판매 여부가 정해졌다. 


그런데 해당 콘텐츠에 왔던 고객이 다른 콘텐츠에는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리텐션의 문제가 있었다. 우리 브랜드를 알리고 브랜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고객이 필요한데, 지속적으로 이 규모로 다른 종류의 모임을 만든다면 고객 이탈을 통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작은 규모의 인원이 모여 네트워킹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리텐션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게 25명 규모의 인원이 모여 주제에 대해 케이스스터디를 하고 네트워킹하는 모임으로 발전돼, 현재 우리 브랜드를 브랜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즌 별로 6개의 모임이 열리고, 각각 모임 별로 1개의 트렌드 주제를 다루며, 3개월 동안 격주로 그 트렌드를 이야기해줄 수 있는 플레이어들을 연사로 초청하고, 모더레이터 1명이 주도해 모임 전체를 모더레이팅한다.   


중요한 건 단순히 규모가 줄어들었다는 게 아니다. 우리 팀의 목표는 규모를 줄이는 게 아니라, 목표가 분명했다. 더 좋은 경험을 줘서 계속 우리 브랜드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목표에 따라 필요한 판단이었다. 또 더 좋은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리소스가 더욱 많이 필요했다. 가장 트렌디한 주제를 잡고 우리 팀의 강점을 활용해 만나기 쉽지 않은 연사를 섭외했으며, 현장에서도 괜찮은 먹거리 제공, 담당 기획자의 지속적이고 굉장히 밀접한 관리 등에 신경을 썼다. 


그래서 프라이싱을 약하게 하지 않았다. 규모가 줄면 매출이 주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규모가 줄어든 이유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획하느냐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매출에 타격은 없었고 오히려 브랜딩에 좋은 경험이 생기고 리텐션이 늘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모임을 통해 무엇을 달성할 것이냐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진다. 


2. 예산

예산은 기획에서 일종의 이정표가 된다. 왜냐면 예산에 따라서 결정의 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그럴 것이다.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을 주고자 수준 높은 식음료를 선택하겠다, 라고 가정해보자. 이 수준 높은 식음료라는 것은 어떤 식음료일까? 편의점 스낵에 비하면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디저트 가게의 디저트가 수준 높은 거라 할 수도 있다. 일반 디저트 가게의 디저트보다 호텔 디저트가 더 수준 높을 수도 있을 것. 심지어 호텔 디저트보다 정말 아무나 못 먹는다는 어떤 예약제 디저트가 더 수준 높을 수도 있다. 1인당 1만원 내외로 수준 높은 식음료를 준비할지, 1인당 10만원 내외로 수준 높은 식음료를 준비할지, 그 옵션은 너무나 다르다. 


공간도 마찬가지. 공간은 아무래도 퀄리티에 따라서 대관료가 많이 달라진다. 기획의도에 따라 사람들이 더 잘 어울리기에 편한 코지한 느낌의 공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 일방향의 강의장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규모도 마찬가지로 다르다. 그런 기획의도가 제시하는 제약조건에 예산이라는 필터를 더해, 그렇게 걸러지는 옵션들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것을 골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너무 멋지고 너무 좋고 완벽한 공간에서 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기대 매출, 기대 수익을 넘어서는 기획을 할 수는 없기 때문. 


3. 프로그램

사람을 모으려면 사람들이 관심 가질만한 어떤 일이 있어야 한다. 그게 프로그램. 이는 당연히 기획의도에 맞아야 한다. 여러 사람에게 단시간 동안 트렌드를 훑을 수 있는 강연을 기획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많은 연사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기획하는 게 좋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서 네트워킹을 해야 한다면? 네트워킹할 수 있는 넛지들을 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게 좋을 것이다. 


또 여러 사람이 등장할 때 다같이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지 말지도 중요. 도메인이 다른 사람을 붙여놓고 대담을 하게 되면 진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의 강연이 끝나고 큐엔에이를 받을 수도, 여러 사람이 끝나고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큐엔에이를 실행할 수도 있지만 목적에 따라 선택하면 될 것이다. 


강연이 아니라 모임이라면, 넛지가 되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기획해야 할지 생각해야 함. 워크샵의 경우 어떤 과제를 어떻게 주고 어떤 시간 안에 해결하게 할지, 사전 과제를 줄지 기타 등등. 


4. 시장성에 관한 판단 

공짜로 제공하는 경우는 관계 없지만. 우리는 강연/모임이라는 콘텐츠를 상품으로 파는 것이므로 이것이 시장성이 있을지를 생각해보는 게 좋다. 유명한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이름 난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을 통해 모객효과를 볼 수 있는데, 또 꼭 그런 건 아니다. 이 기획에 대체 이 사람이 왜 있나, 싶은 걸 만들면 판매가 어려울 수 있다. 혹은 기획 자체가 좀 애매할 때? 정확히 어떤 베네핏을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을 때는 좀 어렵다. 실무 팁이나 스킬, 돈 관련 된것보다 특히 인문, 교양의 경우에는 높은 프라이싱으로 판매하기 어렵다. 


나도 몇 번 말아먹은 게 있다.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내가 좋다고 막 만들어버리면은 말아먹더라... 모객이 안 될 경우 어려운 점은 초대한 연사들이나 현장에 온 사람들에게도 미안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상품으로서의 강연/모임에 해당하는 것이고 단지 서비스를 위해 제공하는 거라면 별 상관이 없다. 그래서 모객시 최소 인원을 얼마로 잡아야 할지는 모임이 최소 규모로 열렸을 때를 대비해 합리적으로 정해야 한다. 물론 매출도 생각해야 하고. 


5. 규모

몇 명이 오는 모임인지는 날짜, 시간과 더불어 중요한 정보다. 고객이 자신이 이 모임에서 어느정도의 존재감을 가질 수 있을지, 어느정도 참여할 수 있는 건지 가늠할 수 있는 자리기 때문. 분명 막 50명 이상, 100명, 200명, 1000명 되는 걸 신청할 때는, 내가 뭔가 기여를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1명, 2명, 8명일 때는 뭔가 토론도 있고, 강연자나 모임에 온 사람들과 인터랙션이 필요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상품에 대한 중요한 정보다.


6. 공간

중요하다. 트렌디한 모임인데 공간이 옛날 학원 건물이면 이는 공간이 경험을 해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노트를 펼치고 뭔가를 꼼꼼히 적으면서 일방적인 지식을 배워야 하는 거라면 공간 경험이고 뭐고 책상이 필요할 것. 네트워킹을 하는 곳이라면 좀더 유연한 곳이 좋을 것. 액티비티가 필요한 곳이라면, 가구가 적고 공간감이 넓은 곳이 좋을 것. 그런데 물론 예산이나 기획의도, 그리고 브랜드의 사정에 따라 책상이 필요하지만 제공하지 못할 수도 있고.. 유연하게 대처하되 불편한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체크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운영 시 중요한 것 몇 가지. 


1. 동선

특히 오프라인에서. 

1)현장안내 시. 오프라인 모임에서 고객들이 어디를 통해 어떻게 착석하게 될지를 미리 생각하고 현장 안내를 하는 것이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등록 확인을 해야 하는 모임이라면, 고객이 등록 확인을 하지 않고 들어가는 걸 방지할 수 있는 곳에 안내데스크를 두는 게 좋음. 안내데스크가 없는 공간의 경우 유념해야 함.  

2)무대에서도 동선은 중요하다.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컨퍼런스의 경우 연사가 어디에서 대기를 하다가 어디로 등장하고 어디로 퇴장할지, 사회자는 어디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를 미리 결정하고 디렉팅해야 서로 등장, 퇴장시 민망하게 부딪히는 일이 안 생길 수 있다. 사전 리허설에 꼭 알려야 함. 

3)사회자가 특히 동선에 대해 잘 알고 연사들이 실수할 때 임기응변을 발휘할 수 있으면 좋다. 그래서 기획자가 사전에 사회자에게 잘 일러두면 좋다. 이전에 어떤 컨퍼런스에서 사회자에게 빼먹고 디렉팅하지 못했던 텀이 있었는데, 그때 사회자가 약간 우왕좌왕 하면서 연사를 팔뚝으로 밀어 가운데로 가게 했고, 연사도 어쩔줄 몰라 딸려갔다. 그러다가 사회자가 무대의 중간에 위치하고, 연사는 무대의 한쪽 사이드로 치우치게 된 일이 발생했다. 아무도 특별히 지적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좀 땀이 삐질했다. 다음부터는 더 꼼꼼히 디렉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온라인에서도 중요. 온라인에서의 동선이라고 하면, 화면에 몇 명이 어떻게 들어올지,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나갈지, 화면 전환을 어떻게 할지 등의 문제가 될 것. 


2. 큐

조명, 음향, 영상, 스크린 화면이 있는 경우. 언제, 어느 타이밍에 어떤 식으로 들어와야 할지 미리 결정하고 오퍼레이터와 진행자에게 알려야 한다. 진행자가 "영상 함께 보세요"라는 등의 열어주는 멘트를 해야 할지 아니면 조명과 음향으로 무대의 전환을 알릴 수 있을지 판단하고 디렉팅해야 스무스하게 진행할 수 있음. 

사전 리허설 시간이 없으면 이 큐 위주로 진행하는 게 좋음. 멘트 하는 사회자가 미리 오지 않을 경우 기획자라도 대사를 읽고 오퍼레이터들과 맞춰보는 게 좋음. 

그런데 대관 가능한 공간 중에 현장 전문가들이 오퍼레이팅을 직접 해주셔서 아무 걱정할 게 없는 공간도 있음. 슈피겐홀이라고..

 

3. 시나리오, 큐시트, 장비, 강연 자료 등

1) 시나리오 작성하는 게 좋음. 나 같은 경우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줄글로 스크립트를 다 쓰고, 그 뒤에 서머리본을 쓰기도 함. 

2) 큐시트 작성해 오퍼레이터들과 공유하는 게 좋음. 

3) 장비는 언제 어디에 어떻게 도착하게 할지 미리 생각해두면 좋음. 물 200개를 시키는 행사에 공간을 대관하기로 했다면 해당 공간에 물 200개를 미리 도착하게 할 수 있을지 뭐 그런 짜잘한 문제들.. 

4) 강연자료는 늦어도 3-4일 전 미리 보고 기획의도에 맞는 내용 위주로 해주십사 조율하는 게 좋음. 하루 전이라도 안 보는 것보다 미리 보는 게 나음.. 

5)또 현장에서 사용할 노트북에서 강연자료가 잘 동작하는지, 영상/음향 포함된 자료인지 그런 것들 미리 확인하는 게 좋으므로 강연 하루 전까지는 완성 파일을 받는 게 좋음. 어려울 경우 완성에 가까운 거라도 받아두고 리허설 해보는 게 나음. 간혹 맥 키노트 쓰시는 연사들이 있는데 그럴 경우 피디에프로 요청하거나.. 아 너무 디테일하다.. 



잘 정리를 했는지 모르겠다.. 할 얘기는 많은데 산으로 간 느낌이다.. 운영 이야기는 100명 정도나 모여야 좀 의미 있는 이야기일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작은 모임이라도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만든다면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어디까지나 이건 내 경험에 기초한 방법론일 뿐이다. 


참고로 100, 200명 이런 걸 넘어서 정말 큰 수백 명, 수천 명이 오는 컨벤션, 전시 등을 기획하는 더 전문적인 인더스트리가 있다. MICE라고, 나도 최근에 알았다. 공간 디렉팅에 관해서는 더 큰 노하우가 있을 것. 


사실 나는 이 콘텐츠 기획, 공간 연출 관련 일을 대학 동아리 시절부터 해와서 지금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대학 시절에 휴학을 하면서까지 6년이나 연극을 했던 것. 동아리 연극을 하다가 프린지페스티벌 같은 데도 나갔음. 예전에는 정말 쓸 데 없는 경험이 아니었을까, 생각한 적도 있는데 새삼 참 재밌다. 


다음에는 아마도 콘텐츠 주제 잡기에 관한 얘기를 써볼까 싶다. 나도 그냥 내가 도대체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건지 정리해보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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