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선택'에 관한 영화다
앤디 : 전 달라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미란다 : 아니 넌 분명 앞으로 나아가기로 선택했어. 이런 삶을 원하면 그런 선택은 필수지.
어떻게 일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런 문제는 쉽지 않지만 항상 고민해야 할 문제다. 삶의 방향을 잃지 않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나만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실마리는 다양한 직간접 경험에서 온다. 어느날 우연히 들은 다른 사람의 한마디에서 통찰이 오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경험담, 책, 혹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이야기에서도 온다.
올해에도 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콘텐츠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기억에 남는 책은 <사업을 한다는 것> <더 골>, 영화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드라마는 <스토브리그>이다. 특히 <악마를 프라다를 입는다>는 올해에만 세 번을 봤고, 대학생 이후로 꾸준히 여러 번 보고 있는 영화다. 의외의 리스트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 영화가 정말로 '어떻게 일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굉장히 근본적인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메릴 스트립의 연기에 빠졌다. 내가 대학생일 때만 해도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 특히 중년 여성 캐릭터는 흔치 않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이 그 일을 해내고 있었고, 앤 해서웨이 또한 그 포스에 뒤지지 않았다. 극중 메릴 스트립이 "That's all"이라고 말하는 그 톤이, 얼마나 얼음으로 만든 비수같은지, 이 짧은 대사 하나를 어쩜 그렇게 완벽하게 해낼 수가 있는지 감탄하면서 그즈음에만 세 번을 봤다.
그러다 언젠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뭔가가 보고 싶어서 다시 꺼내어봤는데, 직장인이었던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 영화는 뉴욕의 화려한 패션이 중심인 영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일과 삶에 대한 태도'와 '선택'에 관한 영화라는 것을. 이후로는 꾸준히 여러번 보고 있다.
살면서,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변명하게 되는 때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 앤디(앤 헤서웨이)도 그랬다. 그는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으나 취업이 되지 않아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는데, 덜컥 패션 매거진 <런웨이>의 편집장 비서직에 채용됐다. 패션엔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업계 종사자들을 조롱하기도 하던 그였다. 잠깐만 있다 떠날거라고 친구들 앞에서 공공연히 말했다. 그런데 이 자리는 "수백만 명의 소녀들이 죽도록 바라는 자리"였다.
처음엔 업계와 거리를 두던 앤디도 점점 더 괴팍한 미란다에 적응하고, 그녀를 연민하고, 그녀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만약 미란다가 남자였다면 일을 완벽하게 해낸다는 찬사를 받았을 것"이라며, 그녀를 두고 악독하다고 하는 세간의 시선이 부당하다고 그녀를 옹호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거는 미란다 때문에 가족도 친구도 멀어졌지만 앤디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커리어가 달렸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선배 비서인 에밀리가 평생 바라왔던 일생일대의 기회가 앤디에게 주어진다. 그 기회란, 미란다와 함께 파리 패션위크에 가는 기회였다. 전 세계 패션 인플루언서들, 권위자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배경은 이렇다. 에밀리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한 가운데, 가차없는 미란다는 에밀리가 실속없다며 앤디에게 ‘대신 가라’고 주문한다. 처음에 앤디는 “에밀리에게 그럴 수 없다”고 하지만, 미란다가 “그건 너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니가 가지 않는다면 “나의 모든 커리어를 동원해 너를 업계에서 내쫓겠다”고 덧붙인다.
이때 앤디는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에밀리를 달래며 파리 패션위크로 향한다.
그런데 그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과 내가 선택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은 일은 무척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후자 또한 “어쩔 수 없는 일”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은 천재지변, 갑작스러운 사고, 코로나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 개개인이 그 일이 발생하는 데 어떤 선택도 하지 않았고, 어떤 선택도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불거진 뒤에 어떻게든 수습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일들이다.
하지만 삶에 너무 깊이 빠져들다 보면, 내가 선택한 일들을 마치 내 선택이 아니었던 양 '어쩔 수 없었다'고 자연스레 변명하게 되는 때가 온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 앤디가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상사의 말을 더 중요시 여기며 약속을 어겼을 때, 평생 파리 패션위크를 꿈꾸던 에밀리를 제치고 그 기회를 얻었을 때가 바로 그런 때다.
나도 사회 생활을 하면서 어느 순간 자꾸 '어쩔 수 없다'고 말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첫 직장은 한 뉴스통신사의 지역 본부였다. 기자 생활을 막 시작하면서, 혼란스러운 일들이 많았다. 기사에 제목이 정직하지 않게 달릴 때, 본문 내용 안에 언급이 됐다는 이유로 자극적인 표현이 "팩트"라며 제목이 되었을 때, 내가 보고 느낀 것과 다른 내용을 기사로 써야 했을 때, 취재원들을 괴롭게 해야 했을 때, 나는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하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스스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겪으면서도 거기에 남아 있길, 거기에 속해 있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1년 정도를 하다 그 일을 그만 뒀다.
물론, 그런 부당한 결정들을 내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앤디 또한 미란다가 경력을 망쳐버리겠다는 협박에 겁이 났을 것이며,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일은 앤디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천재지변처럼 선택할 수 없는 사고 같은 일이 맞다. 그런 일들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내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는, 적어도 내 선택에 관한 것이다. 나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때, 거기 있었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앤디 또한 거기 남아 있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커리어를 유지하길 선택한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언제나 처음이란 게 있고, 처음이란 그 일에 대한 데이터, 즉 경험이 충분치 않을 때다. 그럴 땐 특히 더 타인의 말과 행동, 결정에 휘둘리게 마련이다. 내 자리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더 잘할 수 있으며, 더 잘하고 싶은지, 나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 등. 스스로 확신하지 못 하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인정이 더욱 더 필요해지고, 갈피를 잡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커리어에서도 그렇고, 인생에서도 그렇다.
앤디도 종국에는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깨닫고 그 일을 때려치우길 '선택'한다. 그 계기는, 역시 미란다였다. 미란다는 자신보다 젊은 새 편집장의 이름이 대두되며 자신의 위치가 위협받자, 그 편집장에게 역으로 더 좋은 자리를 제안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그런데 그녀가 제안한 자리는 사실, 그녀 밑에서 18년을 일해온 아트 디렉터 나이젤이 옮기기로 했던 자리였다. 한마디로 나이젤을 배반한 것.
이에 앤디는 미란다에게 크게 실망한다. 그리고 둘만 남은 차 안에서 이런 대화가 시작된다.
미란다 : 너는 나랑 닮은 것 같아. 사람들의 심중을 꿰뚫어볼 줄 알고 본인을 위한 선택을 할 줄도 알지.
앤디 : 전 나이젤에게 하신 그런 일은 절대 못 해요.
미란다 : 벌써 했잖아. 에밀리한테.
앤디 : 그건 달라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미란다 : 아니 넌 분명 앞으로 나아가기로 선택했어. 이런 삶을 원하면 그런 선택은 필수지.
앤디 : 이게 제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면요? 전 당신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요?
앤디 : 웃기지마 누구나 이런 삶을 원해. 다들 우리처럼 되길 원해.
앞서 말한 일하는 태도와 선택의 문제에 대해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다.
이 대화를 끝으로 앤디는, 런웨이를 떠난다. 미란다를 등지고, 휴대폰을 버리고, 웃으며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길 '선택'한다.
그런 선택을 하면서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는 사람들을 질책하려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들이 있다. 단지 그런 어쩔 수 없음과 정말로 어쩔 수 없음이 다르단 사실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선택을 더 중요시 여길 때, 커리어에서든 인생에서든 나만의 길이 이전보다 더 명확하게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나의 경험은 그랬고, 이 영화 또한 그런 길을 보여주고 있다고.
위 대사에서도 보듯이,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 변명하고 있을 때, 이걸 물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인가.' 사회초년생 시절, 혹은 청소년기나 대학생 시절, 경험이 부족해 스스로 확신을 갖기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온다. 내가 원하는 삶인지는 단번에 알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여러 가지를 여러 번 경험해보고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일생에 걸쳐 찾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어쩔 수 없다' 뒤에 숨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이며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일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삶이 주변에 떠밀려 대책없이 흘러가고 있을 때, 다시금 내가 원하는 삶, 나에게 옳은 선택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가 바로 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이다.
+ 물론, 나는 명품이나 패션 제품을 구입하는 건 좋아하진 않지만 구경하는 건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또 재미가 배가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 사실 영화의 러닝타임 등의 한계가 있다 보니 친구나 가족과의 갈등이 조금은 평면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친구들이 왜 저 정도도 이해를 못 하지" 싶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본질적인 메시지에 비춰봤을 때 여기서 더 중요한 건, 이때 앤디는 스스로 패션 매거진에서 살아남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삶을 원하는지 확신하지 못 한 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보다 그 장담할 수 없는 일에 더 몰입하길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그 자체로 비난받을 일은 전혀 아니다. 앤디가 그런 삶을 원했다면 그 과정을 모두 하나의 도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게 중요하다. 원치 않는 삶을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할 때, 되새겨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