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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Oct 21. 2017

성공의 비밀 따윈 없는 투명한 세계에서

보라카이와 스킴보드, 그리고 어떤 삶

내 인생에 보라카이가 '꼭 가고 싶은 여행지'로 존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곳에 실제로 가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 그곳은 나에게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이제 나는 '전생에 내가 거기 살았던 게 아닐까' 심각하게 생각할 정도로 보라카이를 그리워하고, 언젠가 그곳에 꼭 한 달 이상 살아보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되었으며, 칼리보 행 혹은 까티끌랜 행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는 게 하루 일과일 정도인 사람이 됐다. 한마디로 약간 망했다. 보라카이를 만난 후 서울에서의 삶의 질이 더욱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별을 잊기 위해 그러듯, 보라카이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서울의 삶을 한층 더 바쁘게 열심히 산다.

매일 이 광경을 보는 삶은 어떤 삶일까?

그 이유는 그곳이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 벅차게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기도, 눈부신 해변을 바라보며 언제나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게 더 있다. 감히 어떤 삶의 방식을 강하게 갖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겉으로 치장하지 않고 몸과 움직임 자체가 중요해지는 삶.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아도, 있어보이는 이야기를 얹지 않아도 몸과 움직임으로 진실이 증명되는 생활. 진짜로 계속 연습하다보면 정직하게 실력이 늘어 있는, 성공의 비밀 따위는 없는, 화이트비치만큼 투명한 움직임의 세계.


나는 건강하고 역동적인 신체적 삶에 매료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킴보더들이 있었다.

스킴보드를 타는 내 친구 론. 날고 있어

처음 보라카이로 떠났을 때 나는 너무 힘들었던 두 번째 회사를 아주 후련하게 퇴사하며 떠날 여행의 목적지를 정하고 있었다. 딱히 휴양지를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호핑투어, 다이빙, 선셋세일링, 디딸리빠빠(지금은 불에 타 사라진 수산시장), 루호산 전망대 등 보라카이와 관련해 쉽게 떠오르는 각종 액티비들도 내 안중에 전혀 없었다. 필리핀은 관심에도 없던 나라였고 그들의 역사나 문화적 배경도 거의 알지 못했다.


내가 보라카이를 선택한 이유는 완전히 다른 이유였다. 적당한 비행 시간과 적당한 예산으로 일주일 동안 충분히 훌륭하고 여유로운 여행이 가능하며 스킴보드를 배울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보라카이였다. 사실 이 스포츠가 시작된 곳으로 알려진 캘리포니아의 라구아나 비치나 빅토리아 비치가 더욱 많은 스킴보더들이 찾는 곳이지만 장시간의 비행과 나의 예산, 주어진 시간을 생각했을 때 미국행은 처음부터 배제됐다.

이곳이 너무 예쁘다는 말을 매일 할 수밖에 없었다

스킴보드는 바다에서 타는 스케이트보드라고도 불린다. 빠르고 역동적인 트릭이 가능하다. 파도를 탄다는 점에서는 스케이트보드와 다르고 서핑보드와 같지만, 보드의 모양과 크기, 무게 및 라이딩 방식에서는 서핑보드와도 완전히 다르다. 바다의 적절한 스팟으로 패들링해 들어가 파도를 타고 해변으로 나오는 서핑과는 달리, 스킴보드는 해변에서 파도를 타는 스포츠다.


스킴보드를 타는 방법의 기초는 아주 간단하다. 보드를 양 손으로 잡고 해변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향해 달리다가(Run), 적절한 시점에 보드를 젖은 모래 위에 던지고(Drop), 물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보드 위에 올라타 그대로 슬라이딩(Slide) 한다. 이걸 각 글자의 앞글자를 따서 RDS라고 부른다.


물론 어느 종목에나 범접할 수 없는 초고수들이 존재하듯, 이 분야에서도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진 서핑 스팟에서 자기 키 두 배 만한 파도를 타는 엄청난 고수들이 존재한다. 파도를 타고 반동으로 날아오르는 재주꾼들도 있다. 크루저보드를 타고 각종 트릭을 선보이는 고수들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How To Skimboard/by 고장난언니

나는 당시 이 보드를 무척이나 타보고 싶었다. 강원도 양양에서 내 키만한 파도가 몰아치는 날 처음으로 서핑 체험을 했다가 잔뜩 겁을 먹었다. 깊이가 내 무릎까지 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 보드에서 떨어졌는데, 파도가 너무 세서 나는 두 세번을 고꾸라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극도의 공포체험을 했다. 게다가 그날 내가 서핑을 하던 곳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떨어져 있던 옆 바다에서 거센 파도가 물놀이를 하던 중학생 하나를 영영 집어삼켰다. 그 후로 물 속이 아닌 해변에서 즐길 수 있는 수상스포츠를 찾아 구글을 쥐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고, 결국 스킴보드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게 내 여행의 목적이 되었다.

론의 스킴보드

보라카이 화이트비치 해변에서는 이것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주로 스테이션2에서 윌리스락 부근까지가 그들이 자주 목격되는 장소다. 내 친구 덴과 론도 그랬다. 사실 나는 출발 전까지 보라카이에서 스킴보드 강습이나 렌탈을 해주는 샵이 있다는 정보를 확실히 얻지는 못했다. 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화이트비치에서는 현지인들이 많이 타고 있어서 그들에게 물어보면 가르쳐준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 말을 믿고 일단 무작정 보라카이에 가서 그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로 했다.


그리고 결국 스테이션2의 레스토랑 샤키스(shakey's) 근처에서 화이트비치를 신나게 내달리고 있던 덴을 찾아냈다. 재밌게도, 그가 입고 있던 스윔수트 등판에 'INSTRUCTOR(인스트럭터)'라고 크게 적혀있었다. '저 사람이다!' 라는 생각에, 달리고, 던지고, 올라타서 예쁜 해변을 빠르게 가로질러가던 그를 불러세웠다. 그는 나의 스킴보드 선생님이 되어주었고, 우리의 특별한 우정이 그날부터 시작됐다. 론은 두 번째 여행에서 만났다. 수평선에 해가 반쯤 걸린 시간, 화이트 비치가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가운데, 그는 윌리스락 근처에서 보드를 타고 날고 있었다.

또 날고 있는 론. 여기는 아마 디니위드 비치인 것 같다

달리고, 던지고, 올라탄다! 원리는 역시나 간단했다. 추가되는 게 있다면 무릎을 굽히고 팔은 앞쪽으로 편다는 것 정도. 하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 나는 정말 못탔다. 물에 미끄러져 나가는 보드 위에 올라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방금 물 위에 내려놓았는데 야속하게도 자기 혼자 빠르게 저만치 가고 있는 보드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할 때도 있었다. 넘어질까봐 겁부터 덜컥 먹게 되는 일도 기본이었다. 실제로 처음 덴에게 타는 방법을 배울 때는 정말 많이 구르고 넘어져서 무릎에 주먹만한 멍과 상처가 가득했다. 보드는 내 뜻과 달리 나보다 앞서가거나 잘못 떨어져 미끄러지지 않고 갑자기 멈추거나 하며, 관성의 법칙에 충실한 나를 아프게 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보드에 제대로 올라타서 미끄러져갈 때면 무슨 큰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뿌듯했다. 더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부산 송정에 위치한 스킴보드 샵에서 또 한 번 강습을 받을 정도였다. (그래도 여전히 못 탄다) 더욱이 바다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져 달려가는 스킴보더들을 보고 있으면 그 과감함과 자유분방함에 마음이 들떴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어, 라는 생각을 아주 오랜만에 하게 됐다. 다른 사람이 가진 삶을 탐낸다는 것, 나에겐 조금 낯선 일이었다.

덴의 스킴보드와 나. 이 보드는 조금 큰 편이다

어느 존재든 태어난 이상 고통이 없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타인의 삶을 좀처럼 부러워하지 않는다. 겉으로 나보다 나은 조건에 있는지와는 상관이 없다. (이는 아마 내가 생존을 걱정할 만큼의 어려움은 겪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거운 몸을 신체의 상부에 얹은 채 직립보행하고, 잠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해야 하며 꼬박꼬박 밥도 챙겨 먹어야 한다. 이것부터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젊어서는 생각과 현실의 괴리가 커서 뜻대로 되지 않으며 늙어서는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아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너무나 클리셰적 고통이다.


게다가 우리 사는 세상은 좀체 공평하지 않다. 좋은 것이 있으면 더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이 있으면 더 나쁜 것이 있다. 어떤 기준을 들이대느냐에 따라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달라지는 복잡한 세계다. 여기서 무언가를 부러워한다는 건 어차피 항상 일부의 기준에 의한 부러움일 뿐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이상, 어떤 사회가 탄생한 이상, 인간 삶은 본질적으로 항상 크고 작은 문제에 휘말린다.

푸카비치는 스킴보드 초보자에게는 좋지 않다. 화이트비치에 비해 모래사장이 경사져 있고 파도가 세며 수심이 깊다.

그런데 굉장히 오랜만에 다른 삶이 탐났다. 그 아름다운 공간에서 계속 움직이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또 부딪히며, 일하듯 놀이하고 놀이하듯 일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축복인 것 같았다. 이곳의 친구들이 유쾌하고 친절할 수 있는 건 이 예쁜 바다와, 스스로 매일 겪게 되는 움직임의 정직한 결과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집 앞을 나가면 화이트비치가 있으니 나는 보드만 준비하면 되는 삶이라니. 나부터도 벌써 모든 일에 '뭐 아무렴 어때' 하는 관대한 마음을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꾸준한 신체활동의 세계는 긍정의 세계다. 오늘의 움직임은 내일의 몸에 새겨지고, 내일은 모레에, 모레는 글피에 새겨진다. 나아진다는 것이 눈으로 확인되는 세계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소화불량, 허리통증, 어깨통증은 물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전에 없던 이상한 증상이 한번씩 일상을 헤집어놓고 지나갔다. 발병의 이유가 '스트레스'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온갖 병들은 회색의 작은 공간 속에서 오랜 시간 앉아 항상 누군가와 비교해야 하는 시스템을 발명하면서 인간 스스로 탄생시킨 질환들이다. 우리는 그것의 피해를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일부러 시간과 돈을 들여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일도 놀이도 움직인 그 삶은 조금 더 원래 태어난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에 맞는 삶인 것 같았다.

스테이션3 부근.

그에 비해 퇴근 후 억지로 실내 운동장으로 내 몸을 이고 지고 가야하는 내 삶이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좁은 공간에 갇혀서 정해진 시간 동안, 움직임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닌 움직이는 기술과 그것의 효과를 배우는 나의 생활은 나에게 어떤 걸 주고 있을까? 어떤 기쁨과 슬픔 어떤 축복과 해악을 주고 있을까? 우리는 어쩌다 이토록 몸 위에 많은 겹을 둘러싸게 되었고 움직임을 삶과 분리해야 했을까?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나도 내가 사랑하는 공간에서 매일 조금씩 나의 몸과 움직임을 인생의 중심에 두는 삶을 조심스레 꿈꾸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던 론이 바다의 삶으로 돌아왔던 이유도 이와 비슷했다.


과 론, 그리고 내가 만났던 화이트비치의 스킴보더들은 자신의 몸을 작은 보드와 바다가 우리에게 허용해준 눈부신 영역에 매일매일 기꺼이 맡기고 있었다. 달리고 던지고 올라타는 행위의 타이밍을 온몸으로 느끼고 부딪혔다. 삶터와 일터에서 근육의 움직임을 들여다보고 몸의 가능성을 믿었던 그들의 시간이 고스란히 보드 위에서 나타났다. 자유롭다는 추상적인 말의 구체적인 형태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삶이 탐났다.

오픈 준비중인 론의 카이트서핑샵에 늘어선 서핑보드

자꾸만 고꾸라지는 나를 일으켜세워주며 나의 첫 스킴보드 선생님인 덴은 말했다. "연습하면 늘거야. 잘하고 있어" 오랜만에 들어보는 격려였다. 오늘 또 내일, 차근차근 하다보면 늘게 될 거란 정직하고 자연스러운 믿음, 그리고 거기서 우러나온 격려가 참 힘이 되었다. 본인이 차근차근 겪어온 꾸준한 연습의 긍정적 결과를 바탕으로 던진 진심어린 격려였다. 숨겨진 비결도 공식도 아무것도 없었다. 매일 하고 매일 는다. 매일 겪고 매일 몸이 기억한다. 이것뿐.


이런 이유로 보라카이는 나에게 다른 삶을 생각하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실제로 내가 변화하든 아니든,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은 보라카이에서 목격한 나와 다른 삶이 내 삶에 하나의 중요한 사건으로 침투한 순간 달라졌다. 앞으로 어떤 삶이 내 앞에 펼쳐질지 나는 모른다. 다만 이 기억과 경험이 영영 내 인생에 어떤 파장을 주리라는 강한 예감이 든다.

물론 보라카이 여행의 시작점이 되었던 스킴보드에는 또다시 도전해볼 생각이다. 보드를 들고 화이트비치를 신나게 내달릴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우선 나는 내 몸의 가능성을 믿는 법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그래본 적이 없으니, 이제부터 차근차근 하면 된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을, 지금을,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부딪히는 게 중요하다. 그게 언젠가는 내가 열망하는 곳으로 내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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