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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Jan 24. 2019

저녁 메뉴보다 결혼을 결정하는 게 더 쉬웠지만

결혼과 결혼식, 사랑, 그 참을 수 없는 괴리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나의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결혼식이 왜 재미없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내가 결혼을 한다는 그 자체에 대해서는 그렇다. 내 인생에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때가 되면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괜히 존재하는 바람에 인생의 어느 시점에 답이 정해져버린 것 같은 이상한 제도. 학제 같기도 하고, 뭔가 은행 대출 같기도 한 그냥 그런 시시한 인생의 한 단계.


그런데 나는 결혼을 하기로 했다. 결혼을 결정하는 과정은 매우 간단했다. 새로운 핸드폰을 사거나 여행지 숙소을 예약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쉬웠다. 이 사람 옆자리가 내 자리 같았다. 그냥 오래 전부터 아무 고민 없이 차지했던 지정석 같은 느낌. 우리는 같이 살고 싶었고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여전히 결혼과 결혼식은 나한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 사람과 함께 있기만 하면 됐다. 함께 삶을 꾸리고 서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예뻐해주고 같이 슬퍼해주고 그러기만 하면 됐다. 그게 결혼이라는 제도에 귀속되는 것으로 이어지든 아니든 상관 없었다.



결혼은 거들 뿐

그런데 우린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치지 않으면 둘이 함께함을 존중받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걸 거부하려 한다면 치러야 할 희생이 많은 세계에 발을 딛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결혼할 수 있는 사이인 게 축복인 폭력적인 세계에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결혼이란 국가의 인적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고자 만든 제도일 텐데 현재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비효율적이고 배타적인 제도가 됐다. 사랑에 대한 사고방식을 결혼이란 제도에 묶어버리고, 여러 종류의 사랑 관계를 사회에서 배제했다. 10년 연애한 사람에게 1초의 망설임도 부끄러움도 없이 “왜 결혼 안 해?”를 묻는 사람들을 양산했다.


또 동거가 자연스레 허용되지 않는 문화 아래서, 같이 살고 싶어진 우리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오늘날 부모의 품에서 독립이 점점 더 늦어지는 우리 세대는 결혼이 독립의 핑계가 된다. 근거리에 본가가 있음에도 따로 집을 얻기엔 집값이 너무 깡패다. 독립하지 않는 편이 경제적으로 이롭다. 부모들도 결혼하지 않은 자녀를 혼자 떠나보내는 게 어색하다. 동거를 선언한다면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불가피한 이유로 부모와 함께 있는 지역을 벗어나거나, 결혼을 하지 않으면 집을 떠나기 어렵다.


나는 이 모든 걸 온몸으로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소모적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 이 제도를 어리석다고 생각한다면, 역으로 오히려 그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문제였다. 내가 원하는 관계의 실제 모습에 신경쓰는 것이 제도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것보다 덜 소모적인 일이다. 제도는 형식에 불과하니 내용물이 좋으면 될 뿐이었다. 그래서 결혼은 별 생각 없이 해버리고, 실제 우리 관계를 예쁘게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 결혼의 주요 목적을 해하는 일들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물론 이는 이성애자이기에 쉬운 결정이긴 하지만.


결혼식 좀 안 하면 어때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넘어, 결혼식도 또 하나의 답답한 관문이었다. 결혼은 그냥 제도였지만 그 제도를 누리기로 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식을 올려야 했다. 식을 올리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 돌아올 고통이 할 때의 고통보다 더 귀찮았다. 결혼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냐는 가벼운 넋두리에도 벌써 이런 말들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수근거릴거야, 무슨 사연이 있는 줄 알고.


귀찮은 일 만들지 말고 딱 하루 눈 감고 하는 거야.


어차피 남들 보여주려고 하는 거니까 그냥 해.



그래도 하지 않겠다고 우겨보고 싶기도 했지만, 저런 말들에 나부터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가 오랜 세월 쌓여온 타인의 근거 없는 믿음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새삼, 주례 없는 결혼식을 처음 시작했던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저항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혹은 그걸 지지해줄 어른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인지 어쨌든 박수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결혼이란 제도가 생기기 이전부터 인류는 이미 결혼식이라는 행사를 만들었다. 물론 현재와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자원이 풍족하지 않던 시절 그런 의식은 하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혹은 영적인 의미이기도 했다. 또 결혼을 하나의 계약으로서 뭔가 주고받는 행위임이 명백했다. 딸을 줄테니 돈을 다오. 이 의미들은 자원이 풍부해지고 인류의 권리에 대한 가치관이 진보함에 따라 퇴색됐다. 그 의미가 옳았든 틀렸든, 이 의식을치러야 하는 의미는 사라지고 형식만 남았다.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익숙한 형식을 편리하게 제공하는 비즈니스였다. 퇴색된 의미 중 몇 가지를 상업 포인트로 삼았다. 신부를 위한 날이라느니 일생에 단 한 번 뿐이라느니 하며 돈을 써야 할 의미를 부여했다. 사람들은 마치 이게 오랜 전통인 양 웨딩드레스를 입고 버진로드를 걷고 스냅촬영을 했다. 불과 30여 년밖에 유지되지 않은 형식인데 이제는 안 하면 이상한 것이 됐다.


그 의미가 퇴색되고 형식만 남았을지라도, 여전히 결혼식이 오랜 전통이란 건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제도보다 이런 의식이 인간 사회에 더 중요한 이벤트였을 것이다. 가족을 꾸리고 자원을 공유하고 가족의 번창을 꿈꾸는. 이렇게 보면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는 건 “남들 보기에” 어색한 일이기는 하다. 형식과 의미는 변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인류가 행해온 이벤트니까.


그래서 나는 결혼식을 안 하며 인류의 오래된 인식과 싸우기보다 결혼식을 하기를 택했다. 차라리 그 결혼식을 주인공도 참가자도 재미있는 이벤트로 만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것 또한 솔직히 힘에 부치는 일이다.) 주례를 없앤 어느 현자가 있듯이 결혼식에 대한 인식을 바꿔버린 이효리가 있듯이 사람들은 천천히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리고 더 좋은 게 무엇인지 알았을 때 그 좋음을 나누려 할 것이다.



나한테 좋은 결혼 만들기

그의 생각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결정하는 게 쉬웠다.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았다. 며느리, 결혼한 여자라는 역할에 부여하는 가부장제도의 시선. 웹툰 <며느라기>가 그리는 미묘하고 일상적인 싸움. 나라는 사람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가족이 또 생길지도 모른다는 부담감. 그런 걸 머릿속에서 싹 잊기로 했다. 오히려 부딪히면서, 돌파하면서, 타협하면서 나만의 결혼생활을 만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한 사람이 그걸 실제로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살면서 어떤 미묘한 문제들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신뢰하며 다져온 이 관계가 우리가 아닌 다른 것들로 인해 무너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결혼이 목표로 한 '함께함'을 해하는 일은 그 또한 동의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것이 깨지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쓰다보니 미래 남편에 대한 경고장이 된 것 같다. 잘해라. 잘하겠지만.


이제 결혼을 준비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아주 터무니없는 고민이겠지만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상적 싸움의 기록이다. 내 식대로 결혼하기, 내 식대로 사랑하기, 이런 아주 작은 바람을 실현하는 싸움이 된다니. 도대체 무슨 세상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결혼도 결혼식도 나는 싫다. 내가 사랑할 이와 꾸릴 시간이 좋을 뿐이다. 한 번뿐인 날이랍시고 백만원씩 불러대는 장난에 놀아나기도 싫다. 왜 흰 드레스를 입어야 하고 부케는 왜 들어야 하는 것이며 왜 결혼식날 내가 걷는 길의 이름이 버진로드인지. 왜 본식 드레스와 촬영 드레스, 피로연 드레스가 따로 존재 해야 하는지, 왜 단순히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사실을 축복받기에 앞서 형식적인 것들을 고민해야 하는지, 왜 몇 십만 원이나 주고 평소 나 같지도 않은 스냅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평소에도 질문이 많은 나는 이 이벤트에 관해 어리둥절한 게 많다. 나는 이중 납득이 가능한 것만 내 식대로 꾸려보려고 한다. 결국엔 볼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나한테 좋은 현재를 찾아서. 12만 원짜리 웨딩 드레스를 사 입었다는 어느 기자의 글이 내게 안도감을 주었듯이, 나의 일상적 다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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