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읽었는가보다 중요한 것
독서를 하다 보면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책은 한 권씩 끝까지 읽는 게 좋을까,
아니면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게 좋을까.
한 권의 책을 먼저 끝까지 읽는 방식은 흔히 직렬 독서,
여러 권의 책을 돌아가며 읽는 방식을 병렬 독서라고 부른다.
두 방식 중 무엇이 더 좋은 독서일까?
예전의 나는 이 질문에 꽤 단호한 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직렬 독서가 더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흐름을 따라가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권을 끝까지 읽어야 이야기와 논리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는 그 생각이 더 강했다.
감정선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다른 책으로 넘어갔다가 돌아오면
처음 느꼈던 몰입이 흐려질 것 같았다.
인문서나 자기계발서도 마찬가지였다.
저자가 전개하는 관점과 구조를 따라가려면
한 번에 끝까지 읽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동안 나에게 독서란
한 권씩 완독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읽던 책이 잘 읽히지 않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기분은 매일 달라지는데
왜 책은 늘 같은 결만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감정 소모가 필요한 어떤 날은 흥미진진하여 빠르게 전개되는 소설이 술술 읽히고,
마음이 무거운 어떤 날은 마음을 다독여주는 에세이가 더 필요하다.
또 어떤 날은 평소보다 의욕이 넘쳐서
자기계발서의 문장이 힘이 되는 날도 있다.
몸의 컨디션이 다르고,
마음의 온도가 다르고,
하루를 보내며 쓰고 남은 집중력의 양도 매일 다르니까.
그날의 나에게 맞는 책이 달라지는 건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던 병렬 독서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전에는 병렬 독서를 하면
집중력이 분산되고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게 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병럴 독서는 산만한 독서라기보다
그날의 마음 상태에 맞게 책을 선택하는 유연한 독서 방식일 수도 있다.
마음이 무거운 날에는 에세이를 몇 페이지 읽고,
집중이 잘 되는 날에는 인문서 한 챕터를 읽고,
잠들기 전에는 소설 몇 장을 넘기는 것.
이렇게 읽다 보면
'오늘은 독서를 못했다'가 아니라
'오늘의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읽었다'가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직렬 독서의 장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 권을 끝까지 밀고 가는 독서는
분명히 큰 몰입을 만들어낸다.
책 한 권이 말하고자 하는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무엇보다 책장을 덮는 순간
내가 이 책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걸어왔다는 느낌이 남는다.
그래서 어떤 책들은 여전히
직렬 독서로 읽는 편이 더 좋다고 느낀다.
결국 직렬 독서와 병렬 독서 사이에서
하나의 정답을 찾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상황에 따라 직렬 독서가 더 잘 맞을 때가 있고,
병렬 독서가 더 잘 맞는 상황도 있다.
독서 방식도 결국
내 삶의 리듬에 맞춰 사용하는 보조 도구일 뿐이니까.
중요한 건
아직 해보지도 않은 방식에 대해
미리 선을 그어버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독서 방식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어떻게 읽었는가보다, 무엇을 남겼는가.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들을
그 자리에서 흘려보내지 않고
조금이라도 바깥으로 꺼내 기록해두는 일이다.
밑줄 하나,
메모 한 줄,
읽는 중간에 떠오른 질문 하나.
다 읽고 난 뒤의 감정 한 문장이라도 남겨두었다면
그 독서는 단순히 읽은 시간이 아니라
내 안에 남는 경험이 된다.
읽은 권수가 얼마나 많았는지보다
얼마나 오래 붙잡고 생각했는지가
독서를 더 깊게 만든다는 것을 더욱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그래서 이제는
한 권을 끝까지 읽든,
여러 권을 조금씩 읽든,
읽는 방식보다
남긴 생각을 더 소중하게 여기려고 한다.
아마 의미 있는 독서란
내 삶이든, 마음가짐이든, 생각이든
어딘가에 작은 변화를 남기는 일이기 때문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