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편으로 살고 있는가
어떤 책은 한 번 읽고 끝난다.
그때의 감상은 분명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펼칠 이유까지는 남기지 못한다.
어떤 책은 읽었던 책인데도 다시 꺼내 들게 되고,
다시 읽었는데도 처음과는 전혀 다른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박찬위의 『나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가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예전에 여자친구에게 선물 받았던 책이다.
그때의 나는 1부 ‘사랑’에 오래 머물렀다.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다정해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장들이 유독 마음에 들어왔다.
다시 읽는 동안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2부 ‘사람’과 3부 ‘삶’이었다.
사람 사이에서 상처받는 마음,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애쓰는 태도,
자꾸만 나를 탓하게 되는 버릇,
그럼에도 끝내 나 자신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문장들.
『나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는 거대한 서사를 가진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짧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에세이다.
한 페이지 안에 감정이 담겨 있고,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다른 위로가 놓여 있다.
그래서 줄거리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 있다기보다, 살아가며 누구나 한 번쯤 마주했을 감정들이 차례로 놓여있는 책에 가깝다.
이 책이 다루는 것은 특별한 누군가의 삶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서운함, 관계 속에서의 상처, 불행 앞에서의 무력감, 스스로를 의심하는 순간,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 그리고 다시 나를 다독여야 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들은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지친 사람의 곁에 조용히 앉아 있는 쪽에 가깝다.
큰 소리로 괜찮다고 외치지 않고,
다만 '네 탓이 아닐 수도 있다', '너를 좋아해 줄 사람은 분명 있다' 같은 말을 건넨다.
나는 이 책의 힘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억지로 밝아지라고 하지 않는 것.
지금 당장 단단해지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
그저 조금 덜 무너지도록, 조금 덜 나를 미워하도록 도와주는 것.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가장 오래 붙들게 된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과연 내 편으로 살고 있는가?
누군가 내 편이 되어주는 일은 참 든든하다.
내 말을 믿어주고, 내 감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내가 흔들릴 때도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오래 기억한다.
그런데 타인에게 바라는 그 태도를 정작 나 자신에게는 잘 주지 못할 때가 많다.
실수하면 누구보다 먼저 나를 몰아붙이고,
관계가 어그러지면 내 탓부터 하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 여기고,
타인의 시선 앞에서 내 모양을 자꾸 깎아내린다.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해주면서, 나 자신에게는 유독 인색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정말 내 편인가.
아니면 가장 오래 나를 비난해 온 사람이 사실은 나 자신이었던 걸까.
"내가 모두를 사랑할 수 없듯
모두가 날 사랑해주지 않으니
날 싫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라.
굳이 남의 입맛에 맞춰 살지 않아도
너를 좋아해 줄 사람은 반드시 있다."
예전의 나는 모두가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할 때도 행동할 때도 한 번 더 눈치를 봤다.
이 말이 불편하지 않을까, 이 선택이 별로 같아 보이지는 않을까, 혹시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그건 이상한 일도, 억울한 일도 아니었다.
나 역시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으니까.
중요한 것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일이 아니라,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어떤 시간을 쌓아가느냐는 쪽에 더 가까웠다.
내가 내 편이 된다는 것은 아마 이런 뜻일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으려 애쓰는 대신, 나를 이해해 주는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것.
모두의 기준에 맞추려 하기보다, 나와 맞는 사람들 곁에서 내 모양을 덜 잃는 것.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야.
누구보다 너를 먼저 챙기고
너 자신을 가장 사랑했으면 좋겠어."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관계의 출발점이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면,
남이 나를 함부로 대할 때도 그 경계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못하면,
어느 순간 그 불안과 자책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번져간다.
내 마음이 무너지면 관계 역시 쉽게 흔들린다.
한동안 나는 자책하는 쪽에 더 익숙했다.
무언가 잘못되면 이유를 내 안에서 먼저 찾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이 성실함이라고 착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책은 사람을 더 나아지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점점 더 움츠러들게 한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은 결국 나를 지치게 하고,
때로는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까지 힘들게 한다.
그래서 요즘은 예전보다 더 자주 생각한다.
나를 아끼는 일은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누군가를 오래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라는 것.
"불행은 언제나 예고 없이 우리 삶에 끼어들지.
하지만 불현듯 너를 찾아온 불행에 무너지지 마.
내가 못나서가 아니야.
네 탓이 아니야.
그저 지나가는 먹구름일 뿐이야.
분명 다시 좋은 날 올 거야."
살다 보면 안 좋은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준비할 틈도 없이 끼어들고, 마음을 휘저어 놓고,
아무렇지 않던 하루의 방향을 바꿔놓는다.
그럴 때 사람은 쉽게 자기 탓을 한다.
내가 못나서 그런가, 내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나,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달라졌을까.
그런데 이 책은 말한다.
그저 지나가는 먹구름일 뿐이라고.
분명 다시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나는 이 말이 단순해서 좋았다.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 오늘을 견디게 해주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많은 불행은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불행 앞에서 사람들은 이유를 만들기 위해 자기를 희생양으로 삼곤 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다 나의 부족함 때문인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정말 그저 운이 나빴고,
어떤 순간은 정말 그저 지나가는 먹구름일 뿐이다.
내 편이 된다는 것은,
그런 날의 나에게까지 책임을 과하게 묻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무너지지 말라고 다그치기보다,
오늘은 조금 흔들려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실패작처럼 취급하지 않는 일.
"우리는 둥근 사람이 될 필요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모양이 있고
그 모양이 있기에 내가 특별한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요즘 우리가 너무 쉽게 스스로를 다듬고 깎아내리며 산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에 맞추기 위해, 타인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무난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내 모서리를 없애려고 애쓴다.
너무 튀지 않게, 너무 불편하지 않게, 너무 나답지 않게.
하지만 끝내 나를 지탱하는 것은 남들과 비슷해진 모양이 아니라, 오히려 나만의 결일 때가 많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고,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일도
결국은 내 모양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떤 모양의 사람인지 완전히 다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남들과 같은 모양이 되어야만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쩌면 행복은
더 나은 누군가가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나에게 가까워지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덮고 나서도 질문은 남았다.
그래서, 나는 과연 내 편으로 살고 있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나를 탓하지는 않는가.
모두에게 사랑받으려 애쓰느라 정작 나를 잃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모양을 숨기면서까지 무난한 사람이 되려 하지는 않는가.
행복이라는 말은 너무 크고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어쩌면 행복은 거창한 상태가 아니라,
적어도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내 편이 되어주는 것.
내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 것.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의 곁을 더 오래 바라보는 것.
흔들리는 날에도, 보이지 않는 날에도, 나의 가치를 쉽게 의심하지 않는 것.
『나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는 그런 책이었다.
행복하라고 등을 떠미는 책이 아니라,
행복으로 가는 길 어딘가에서 먼저 나를 놓치지 말라고 말해주는 책.
그래서 다시 읽은 이 책은
예전의 내게는 사랑의 책이었고,
지금의 내게는 삶을 버티는 태도에 대한 책으로 남았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이 질문을 오래 품고 살 것 같다.
나는 오늘, 내 편으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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