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 『스토너』를 읽고 조용한 삶 끝에 남는 질문
어떤 책은 읽고 있을 때보다, 덮고 난 뒤에 더 오래 남는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가 내게는 그랬다.
읽는 내내 큰 사건이 연달아 터지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이 극적으로 성장하거나 성공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놀라울 만큼 조용하다.
그런데, 그 조용함 때문에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한 사람의 생을.
그 사람이 끝내 붙들고 있던 것들을.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 스토너가 대학에서 문학을 만나고,
이후 대학에 남아 교수가 되어 살아가는 생애를 따라간다.
그는 화려한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결혼은 불화로 기울며,
사랑은 끝내 지켜지지 않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잘된 인생'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삶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자꾸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조용한 삶은 실패한 삶일까.
우리는 너무 자주, 눈에 보이는 결과로 삶을 판단한다.
어떤 자리에 올랐는지, 얼마나 인정받았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쉽게 '아쉬운 인생',
심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스토너는 그런 의미에서 평가하기 쉬운 인물이다.
승진도 더디고, 명성도 크지 않고, 관계에서도 자주 밀려난다.
상황을 단번에 바꾸는 결단을 내리는 사람도 아니다.
부당한 일을 겪으면서도 크게 소리치지 않고, 버티고, 견디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읽는 동안 답답했다.
왜 저렇게까지 참을까,
왜 더 분명하게 맞서지 않을까,
왜 더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바꾸지 않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내가 처음 붙였던 '답답함'이라는 단어가 조금씩 흔들렸다.
정말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일까.
아니면 우리가 쉽게 알아보지 못하는 방식으로, 자기 삶을 살아낸 사람일까.
스토너는 늘 크게 이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히 무심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문학을 사랑했고, 가르치는 일을 완전히 놓지 않았고,
어떤 순간들에서는 분명하게 자기 기준을 지키려 했다.
때로는 그 기준 때문에 손해를 보기도 했고, 관계에서 밀려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자기 삶의 중심까지 전부 내어주지는 않았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성공’보다 ‘애정’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생각했다.
한 사람이 자기 삶에서 무엇을 사랑했는가.
그리고 끝까지 무엇에 애정을 남겼는가.
결국 삶을 버티게 하는 것은 거창한 성취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끝내 놓지 못한 어떤 것,
설령 자주 흔들리더라도
다시 돌아가게 되는 어떤 마음이 사람을 살게 하는 것 아닐까.
『스토너』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 같았다.
물론 이 소설이 스토너의 삶을 낭만적으로 미화하지는 않는다.
그의 삶에는 분명 놓친 것들이 있고, 상처가 있고, 후회가 있다.
사랑을 지키지 못했고,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충분히 따뜻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다.
그 역시 현명한 사람이라기보다
성실하지만 서툰 사람에 더 가깝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삶도 대부분 그렇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옳지도 않고, 완벽하게 강하지도 않으며,
나중에 돌아보면 왜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을까 싶은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삶을 두고, 우리는 어디까지를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 안에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결국 소설 밖의 내 삶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날카롭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향해 가고 있는지 묻는 질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내 삶을 너무 타인의 기준으로만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때때로 결과가 눈에 띄지 않으면,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금방 불안해진다.
조용히 쌓이는 시간은 과소평가하고,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쉽게 초라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럴 때 『스토너』 같은 소설은 삶을 조금 다른 속도로 생각하게 만든다.
삶에는 빠르게 증명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겉으로는 밋밋해 보여도, 한 사람이 오래 붙들고 살아낸 시간 자체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잘 살았다’는 말보다 먼저,
‘끝까지 살아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평가일 수 있다는 것.
『스토너』를 읽고 나서 나는 누군가의 삶을 쉽게 평가하는 일이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동시에 내 삶을 바라보는 기준도 조금은 달라졌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남들이 보기엔 별다를 것 없어 보여도, 내가 사랑하는 일을 오래 붙들고 살아도 괜찮을까.
아마 이 소설은 그 질문에 선뜻 답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조용히, 그러나 오래 남는 방식으로 되묻는다.
그래서 나는 『스토너』를
한 사람의 실패담이 아니라,
삶을 평가하는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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