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 『이동진 독서법』 독서를 성취가 아닌 기쁨으로 남기는 법
독서에 관한 책을 읽을 때면, 나는 자주 긴장한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얼마나 읽어야 하는지,
무엇부터 읽어야 하는지.
독서를 좋아해서 책을 펼쳤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자꾸 '잘 읽고 있는지'를 점검하게 된다.
읽는 일은 원래 기쁨에 가까웠는데,
어느새 평가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이동진의 『이동진 독서법』을 읽으며 가장 먼저 안도했던 이유는,
이 책이 그 긴장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서의 기술을 알려주는 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한다.
책을 어떻게 읽을지보다, 책을 어떻게 사랑할지에 대한 이야기.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책을 고르고 읽고 곁에 두는 방식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2부에서는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독서 경험과 태도가,
3부에서는 추천 도서 목록이 이어진다.
형식만 보면 '독서법' 책이지만,
읽고 나면 남는 것은 기술보다 태도다.
책을 대하는 마음,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식,
그리고 독서를 내 삶 안에 어떻게 들여놓을 것인가에 대한 감각.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덮고 나서 한 가지 질문을 오래 붙들게 되었다.
독서는 정말 '잘해야 하는 일'일까, 아니면 '사랑해야 하는 일'일까.
우리는 독서를 자주 성취의 언어로 말한다.
몇 권을 읽었는지, 끝까지 읽었는지, 남들이 좋다고 한 책을 읽었는지.
독서가 삶을 넓혀준다고 믿으면서도, 정작 독서를 대하는 태도는 자꾸 좁아진다.
정답이 있는 것처럼, 기준에서 벗어나면 뒤처지는 것처럼.
그런데 이 책은 그 단단한 기준을 조금 느슨하게 만든다.
"책을 사는 것, 서문만 읽는 것, 부분 부분만 찾아 읽는 것, 그 모든 것이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사는 것도 독서이고, 서문만 읽는 것도 독서이고,
중간의 어떤 페이지를 펼쳐 읽는 것도 독서라고 말하는 순간,
독서는 '완독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이 말이 좋았던 이유는 단순히 위로가 되어서가 아니다.
그 문장이 독서를 다시 살아 있는 행위로 돌려놓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에도 늘 판단한다.
이 책은 유익한지, 시간 대비 가치가 있는지, 끝까지 읽을 만한지.
물론 그런 판단은 필요하다.
하지만 판단만 남으면 독서는 금방 메마른다.
책을 읽는 시간이 '나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동진 작가의 문장들은 독서를 더 느슨하게 하자는 말처럼 들리면서도,
사실은 더 깊게 하자는 말처럼 읽혔다.
억지로 끝까지 붙드는 독서보다,
흥미를 따라가며 오래 지속되는 독서가 결국 삶에 더 많이 남는다는 뜻으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깊이와 넓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전문성을 이야기하고 그 중요성도 높아집니다. 전문성이란 깊이를 갖추는 것이겠죠. 그런데 깊이의 전제는 넓이입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아요. 넓이의 전제가 깊이는 아니거든요."
전문성이라는 깊이를 말할 때 사람들은 자꾸 깊어지라고만 말하지만,
깊이의 전제는 넓이라는 생각.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왜 내 독서가 문학에서 인문으로, 에세이에서 자기계발로,
다시 가벼운 책으로 자꾸 이동하는지를 조금 이해하게 됐다.
그동안은 한편으로 그런 나를 의심하기도 했다.
왜 한 분야를 끝까지 파지 못할까. 왜 자꾸 옆길로 새는 걸까.
그런데 어쩌면 그 옆길들이 모여서 내 생각의 지도를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는 독서들이,
나중에 문장 하나의 결을 바꾸고 질문 하나의 깊이를 바꾸는 방식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기보다,
책을 읽고 나서 내 안에서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 변화는 대개 '정확한 요약'보다 '오래 남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이동진 독서법』은 내게 그런 질문을 남긴 책이었다.
나는 독서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독서를 관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책을 읽는 시간을 즐긴다고 말하면서, 자꾸 결과만 확인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독서에서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죄책감인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못 읽은 책에 대한 죄책감,
남들보다 적게 읽는 것 같은 조급함,
더 좋은 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그것들은 조금 내려놓고 나면, 책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나를 시험하는 대상이 아니라,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존재로.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독서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더 잘 읽는 사람이 아니라, 더 오래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책은 결국 다 읽은 권수보다, 내 삶에 남긴 장면들로 기억될 테니까.
어느 날 밑줄 친 한 문장, 끝까지 읽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은 한 페이지,
읽고 나서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졌던 어떤 마음.
그런 것들이 쌓여서, 나의 독서가 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