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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그네스 Aug 23. 2019

사랑은 진달래꽃

진달래 꽃부침

  20대의 내가 시집간 집은 관악산 가까이에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관악산 아래에는 서울대학교 교정이 있고, 관악산에는 봄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오른다. 개나리가 노랗게 온 산을 물들이다가 몇날 며칠이 지나가면 금세 진달래 꽃 색깔 진한 분홍빛 꽃잎들이 피어올라 온 산이 전체가 분홍색으로 물들어 오른다.        

  시부모님은 오래 전 신림동으로 와서 적지도 않고 넓지도 않은 터에 오래 오래 살 집을 지었다. 집은 가능한 한 좁은 넓이를 차지하도록 소박하게 지었고, 나머지 마당을 넓게 쓰려고 안배를 하여 공간을 넉넉하게 잡았다. 좁은 공간에 주거할 집은 2층으로 기술적으로 올리고, 앞마당 뒷마당에 좀 더 넓은 곳에 꽃나무와 화초를 가득 심었다.       

  정월 어느 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한 겨울에 나는 이곳으로 시집 왔다. 20대의 신랑은 이집에서 부모님과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내가 시집와서 한 해가 지나 첫째 아기를 낳았고, 세 해가 지나 또 둘째 아기를 낳았으니, 사대가 한 집에 사는 대가족이 되었다. 

  이층 조그만 방에 신접살림을 차리고, 관악산의 댓바람이 쌩쌩 부는 날에 추위를 하루하루 넘기고 그리고 그해 봄이 왔다. 봄 햇살이 앞마당에 눈부시게 내리고, 봄 햇살이 가까운 관악산에도 가득 찼다.


  주말이면 시부모님은 관악산에 올랐다. 그날 점심은 관악산 꼭대기에 있는 절 연주암에서 뜨거운 밥을 대접받는다. 연주암 공양간에는 늘 뜨거운 밥이 있고 보살님들은 산꼭대기까지 힘겹게 올라온 산행객들에게 말없이 간소한 밥과 찬을 대접한다. 

  두 분은 산을 좋아해서 관악산에 자주 오르내렸다. 그 해 봄, 연주암에서 점심을 먹고 산을 내려오니 산에는 개나리가 막 지고, 꽃분홍색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었다고 했다. 산꼭대기에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 사람들이 보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가드다란 진달래 나무에 가득가득 피어오른 탐스러운 진달래 꽃송이들을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시어머니는 꽃대를 뚝뚝 따서 빈 쌀자루에 담았다. 잠시 후 준비해놓은 쌀자루에 이내 진달래꽃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나뭇가지에서 벗어난 진달래꽃들의 무리가 그토록 선명한 분홍빛임을 처음 알았다.   진달래 꽃 자루를 집까지 짊어지고 내려와 부엌에 두고, 시어머니는 미리 준비해둔 찹쌀을 꺼내왔다. 찹쌀은 이미 방앗간에서 곱게 빻아 가져온 것이었다.      

  곱게 빻아 놓은 하얀 눈싸라기 같은 찹쌀을 부엌에 있는 진달래 더미 곁에 내려놓았다. 아니 이 많은 꽃을 어쩌시려고 따 왔을까. 내 두 눈은 커지고, 난 그때 무리 진 진달래꽃의 더미를 처음 보았다. 그리고 꽃들이 먹거리가 된다는 것도 상상할 수가 없었지만, 처음 보았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시집온 첫 봄에 당신의 고향음식을 며느리와 가족들에게 맛보이고 싶었던 듯하다.  시어머니 시아버님 시할머님 세 분 모두 여럿을 적에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살았었다 고 한다.  

  하얀색 찹쌀가루들이 양푼대야 하나 가득 들어있고, 또 다른 양푼대야에 분홍 색 꽃잎들이 다붓이 모여 있는 모습은 아직 눈앞에 생생하다.                   

  분홍빛과 연 보라 빛이 적절히 뒤섞인 그 꽃잎들이 부엌을 하나 가득 채우고, 그 빛깔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받아 은은하면서도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어머니는 진달래 꽃부침을 만든다고 말했다. 

  갓 시집온 새색시였던 나는 시어머님의 진달래 꽃 부침에 매료되었다.  학창시절  소설 읽기를 즐겨하던 나는 모든 소설 중에 토지를 가장 우리나라 소설 중에 으뜸이라고 확신했다. 대하소설 토지는 1권부터 시선을 독자의 시선을 끌고,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붙잡아놓는다. 

  

익반죽해놓은 찹쌀가루

진달래꽃잎은 물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소설 토지의 장면이 떠오른다. 오늘 글을 쓰기 위해 소설토지의 책을 다시 뒤져본다. 제3권에 있다. 진달래꽃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별당아씨와 구천(환)이가 사랑에 빠져 지리산 자락에 숨어든 이야기가. 

  별당아씨는 윤씨 마님의 며느리이고 구천(환)이는 윤씨 마님의 숨겨진 아들이다. 동학장수 김개주에게서 생긴, 숨겨진 아들 구천(환)이가 어느 날 어머니 집에 걸어 들어왔고 , 그를 본 어머니 윤씨 마님은 아무 말도 못하고 내려다보기만 하다가, 구천(환)이는 그 최참판 댁 머슴신분으로 그 집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별당아씨를 사모하여, 어느 날 밤 지리산으로 야반도주를 한다.  토지 속에는 곡절이 많은 이야기들과 기막힌 사연들이 가득하다. 

  구천이(환)와 별당아씨는 지리산에서 거의 굶다시피 하였고, 추위를 이기지 못한 별당아씨는 병에 들 수밖에 없었다.     



(대하소설 토지 중 제3권에서)

  ‘얼음조각같이 싸늘한 달이 능선 위에 댕그마니 걸려 있었다. 꺼무꺼무한 능선과 맞붙은 하늘을,  환이는 그 푸른 은빛 나는 하늘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서 있었다.  환(幻)이다. 바람개비같이 돌고 이는 지나간 지상의 세월은 지금 없는 것이다. 진실로 없는 것이다. 자취 없는 허무의 아가리였던 것이다. 여자와 더불어 영원히 사라져버린 바람이었던 것이다. 능선을 감싸듯 푸른 은빛의 밤하늘, 영겁의 세월이 흐르고 있는 저 머나먼 곳에서 다시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가고 환이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본다. 

  ‘여보?’

  ‘나 명년 봄까지 살 수 있을는지……’

  ‘……’

  ‘산에 진달래가 필 텐데 말예요.’

  ‘그 꽃 따서 화전을 만들어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당신께, 당신께, 싶어요……’

  여자의 목소리는 진달래 꽃 이파리가 되고 꽃송이가 되고 계속하여 울리면서 진달래의 구름이 되고 진달래의 안개가 되고 숲이 되고 무덤이 되고, 붉은 빗줄기, 붉은 눈송이, 붉은 구름바다,  그 속은 자신이 걷고 있다는 환각 속에 환이는 쓰러졌다. 꿈속에서 울었다. 꿈속에서 가슴을 쳤다. 여자를 부르고 달려가고 울부짖고, 여자가 죽어 이별한 뒤 환이는 줄곧 꿈속에서만 울었다.   (소설 토지 인용)      

물을 먹고 더욱 피어오른 진달래꽃


   부엌에서 시어머니의 손이 반 죽을 시작했다. 하얀 찹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반죽을 하였다. 뜨거운 물이 닿는 순간 반죽은 반쯤 익어가고, 손길을 받아 반죽은 찰기를 더해 가서 차지게 된다. 반죽이 어느 정도 버무려져 가면 동그랗게 손으로 떼어서 전을 부치고 그 위에 꽃잎 한 장을 얹는다. 그러면 완성이다.      

  또 찹쌀가루와 진달래꽃을 모두 합쳐 반죽을 주무르면 조심조심 반죽을 주무르다보면, 찹쌀가루와 진달래꽃이 혼연일체가 되어 분홍색 덩어리가 된다. 그러면 조금씩 떼어 빈대떡처럼 부치고 만일 팥고물이 있으면 부침이 안에 넣고 끝을 모아주면, 분홍빛 진달래부꾸미가 된다.      꽃부침을 완성하여 아이들도 맛보게 주고,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머니까지 고루 나누어 드리면 고향음식이라고 아주 좋아하시곤 했다.                


찹쌀위에 올라앉은 진달래꽃잎

  그리고 하루 일이 다 끝나가는 저녁시간에 나는 이층 신혼방으로가 책꽂이에서 토지1권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새색시의 독서취미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글쓰기를 즐겨하고 문학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 책들은 특히 소설책들은 새색시 곁에 늘 놓여있고, 나는 오래오래 그 책들을 읽곤 했다.  

  진달래 꽃 부침이 등장하는 대목은 꽤 오랜 동안 읽은 후에 나타났다. 대하소설 중에 3권 째 였다.  대하소설은 정말로 읽기가 어렵다.  우선 시간이 많이 들고 등장인물들도 어마어마하게 숫자가 많고, 우선 그 시대적 배경과 사건이 웅대하고. 무엇보다 끝까지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작가가 뿜어내는 흡입력이 굉장하다. 그래서 대하장편소설은 손을 대기가 두렵다. 나를 송두리째 소설 속으로 잡아당겨 끌어드리기 때문이다.   그곳에 풍덩 빠지면 무릉도원이 펼쳐진다. 그러나 일상에서 맏며느리로서 일을 해야 하는 나는 그 문 앞 에서 매번 망설인다.  

  소설 토지의 대하소설로서의 분량은 전체 20권이다. 1권을 들고 그 도입을 읽자마자 그 스토리에 빠져들어 정신없이 읽어 내려간 기억이 난다. 어쩌면 여성작가로서 이토록 방대한 이야기를 꾸밀 수가 있었을가. 감탄의 연속이었다. 장면 장면 속에 나오는 인간에 대한 사랑 배려……등등이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고도 남았다.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워서 인가, 요즘 진달래 꽃부침을 만들어 파는 곳은 없다. 


  올해 이제 내 나이 환갑이 되었으니, 시집온 이후부터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다. 

  극중 인물 환이와 별당아씨는 소설 속에 존재할 뿐, 그 인물을 지어내신 박경리 선생님도 떠나가셨다. 우리 집에 오래도록 함께 사시던 시할머니도 시어머니도 오래오래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작년에는 홀로 남았던 시아버님도 돌아가셨다.  해마다 철마다 진달래 꽃부침을 만들어먹던 나는 그 어느 해인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다.  

  소설 토지 속에 별당마님과 구천이도 있고, 그 인물들은 소설 속에 영원히 살아있다. 그리고 오래도록 독자들을 만날 것이다.  

  진달래꽃부침을 나눠 드시던 시할머니 시할아버지 시아버님 시어머니 모두 저 멀리에 계실 텐데, 그분들과 또 그곳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토지를 진달래 꽃 부침처럼 아름다고, 또 웅대하게 기록해놓으신 박 경리 선생도 그곳에 계실 텐 데....그분들은 모습을 어떤 모양새일까 알 수가 없다.  하늘나라에도 꽃들이 있을까. 꽃분홍색 진달래 꽃 이파리가 다문 다문 피어있을까.      

  아담한 이층집에 너른 앞마당이 있던 그 집은 사라졌다. 그 동네가 모두 고시촌이 되어버렸다. 수십 칸 수백 칸 되는 고시원이 방 한 칸 마다 월세를 받는 고시원이 가득 자리 잡아있다.  이제는 진달래꽃의 운치도 공부에 지친 고시생들의 뒷모습도 모두 사라지고 집장사의 칸칸이 월세를 받아먹는 집장사의 온상으로 변해버렸다. 

  사법고시제도가 사라졌으니 고시생은 이젠 없고, 집도 전세금도 마련하지 못하는 이들이 물어물어 찾아오는, 도시빈민의 거처들이 되어버렸다. 적은 액수의 월세만 내고 몸을 누일 수 있는 고시원들이 가득 들어서있다.  울타리에 개나리며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던 그 집은 이젠 간 곳을 모른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이 있다. 우리네 삶은 한정되어있고, 진달래 꽃부침은 오래도록 이어지리라. 소설 토지 같은 예술작품처럼.                    

진달래꽃부침은 오래오래 사랑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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