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아직 3년상이 남아있다.
중국 상하이에서 아내 할아버지, 할머니 납골당(?)에 다녀왔다.
어렸을 때 배웠던 것들을 생활에서 복기하게 되면 신기하기도 하다.
중국에 납골당(?)을 다닌지 8년쯤 된듯 하다.
결혼전에는 결혼전이라
결혼후에는 다른지역에 사느라
상해로 왔을때는 아내가 막 임신을 해서
아이를 놓으니 아이 돌봐야해서,
아이가 조금 크니 아내는 다니기 시작했으나 나는 아이 돌보느라
그렇게 중국온지 6년동안 가지 않았던 납골당을 딸아이가 크고 나니 딸아이는 혼자 집에 두고 잠시 기사 역할을 하며 다녀오기 시작했다.
4월 5일이 중국의 청명절인데 어떨때는 4월 5일 딱 이 날 가기도 하고 2~3주 전에 가기도 한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돌아가신후 3년동안은 청명절 당일에 다녀야 한다고 하더라 ~
그때 알았다.
중국도 3년상이 있고(물론 당시 중국과 한국이 한 문화권이니 같았던가 중국에서 왔던가 했지 싶다) 그 3년상이 이렇게 명맥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내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외로우셔서 견디기 힘드셨는지 그렇게 정정하던 분이 몇달새 부쩍 연세가 더 들어보이시더니 몇달후인 같은 해 돌아가셨다.
그리고 코로나 시기,
코로나로 3년간 청명절에 제대로 가질 못하고 3년상이 끝나버렸다.
청명절 3주전인 일주일전에 함께 다녀왔다.
2019년에 돌아가셨고, 2020년 청명절, 2021년 청명절, 2022년 청명절이 지나고 이번이 4번째이니 청명절에 갈 필요가 없었던 듯 하다.
그리고 딸아이가 14살이 되었음에도 아직도 딸아이는 데려가지 않는다.
제안을 드렸다. 이쁜것만 본다고 이쁘게 자라지 않는다.
죽음을 알아야 더 잘살 수도 있다. 또한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증조 외할아버지, 증조 외할머니와 달리 증조 할아버니 증조 할머니는 울 딸아이도 인사하고 뵙고 자랐는데 성묘가지 않는건 아이를 위하는게 아니라 예의를 모르는 인간을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안가는것이 습관이 되어 장인, 장모님 심지어 우리들 성묘도 안올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마지막 말이 좀 영향을 드린듯 하다. 결국 내년에는 딸아이도 함께 가기로 했다.
문화가 다르면 이렇게 소통하는 재미가 있다.
또 다른 경우가 있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때 한국에 가서 머리 염색 & 파마했던때가 생각이 난다.
중국에 복귀하니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노발대발하셨다.
염색하면 머리 나빠지고 건강에도 안좋은데 왜 그렇게 했느냐고 한다.
아내도 감당을 살짝 못하는 듯 했다.
내가 한마디 했다. 그럼 대부분의 한국아이들은 한번씩은 파마 혹은 염색을 하는데 모든 한국사람들이 중국사람보다 결과적으로 멍청한것 같냐고 말이다. 그말에는 당연히 대답을 못하시겠지 ~ 그래서 결국 울 딸아이는 중국에 자라면서 염색도 해보았고, 파마도 해보았다.
이번 성묘에서 아쉬운점이 하나 있었다.
장인어른 3남매가 다 함께 모여 성묘도 같이 하고 점심식사를 같이 하고 헤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말이다. 사이가 어그러져서 이젠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사회적인 현상과 각 집안의 문제 섞여 있다.
결국 각자 날을 따로 잡아서 성묘를 간다.
가보니 며칠전에 다녀갔던 티가 난다. 다시 며칠후면 다른 한분이 오시겠지 싶다.
반대로 아내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성묘때는 날을 맞춰 장모님의 3남매가 함께 가신다.
각자 나누어 준비를 하고 성묘를 하고 점심식사를 하고 헤어진다. 소가족으로 바뀐지 오래 되어 이젠 과거처럼 자주 만나지 않는다. 1년에 한두번. 이때가 한번이다. 그럼에도 이렇게라도 만나니 나쁘지 않다.
아래는 상차림.
단 한국처럼 어렵게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사온 것으로 채워져 있다.
몇년전 다녀온 사진을 올려본다.
꽃은 필수,
사간 꽃은 갈때 옆에 꽃꽃이를 해둔다.
노잣돈
말로만 들었던 노잣돈을 태운다.
뭘 그렇게 많이 태우는지 각자 행운을 받아야 하니 각자 가져온 노잣돈을 태운다.
한참을 그렇게 태운다. 환경오염인데... 점점 줄겠지 싶다.
이상 중국에서의 경험 공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