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친한 지인이 모처럼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난 2월 중순경, 영국을 강타한 두 차례의 강력한 스톰(Storm) 소식이 한국까지 전해졌나 보다.
“네~ 완전 괜찮아요. 우리 지금 마드리드(Madrid)에 있어요~”
얼마 전, 2월 마지막 주가 아이들 학교 2학기 하프텀(학기 중간 방학)이라 우리 가족은 '스페인, 마드리드'로 여행을 떠났다. 영국에 온 이후 처음 떠나본 해외여행이었다.
가장 가 보고 싶은 나라는 ‘아이슬란드(Iceland)’이지만 첫 여행지를 스페인으로 정한 것은 순전히 ‘날씨’ 때문이었다.
한국 같은 한파가 몰아치진 않지만 해가 잘 뜨지 않는 영국의 겨울은 으슬으슬 을씨년스럽다. 나는 한국의 겨울처럼 맑고 칼칼한 추위에는 오히려 머리가 쨍하게 명징해져서 때론 ‘살아있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덜 추워도 흐린 날의 추위에서는, 바로 영국의 겨울 날씨에는 뼛속까지 축축하게 시려서 잘 돌아다니지도 못한다(물론 집안에서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문으로 바라보는 영국의 음울한 하늘과 자욱한 안개는 일품이다.).
이 축축한 겨울을 벗어나고파서, 우리의 2월 여행 목표는 오로지 따뜻한 나라였다. 볼거리가 많고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스페인, 그 중에서도 더 따뜻할 남쪽 지역, 마드리드, 론다(Ronda), 세비야(Sevilla) 당첨!
< 이미지 출처 : 구글맵 >
11월부터 시간된 영국의 겨울 날씨를 우리는 흡족히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영국 날씨 입장에서 아직 보여 주지 않은 게 많았는지, 여행 출발할 날을 며칠 남겨두고 바람이 예사롭지 않게 일었다.
처음엔 영국의 겨울철 날씨가 굳은 것이 예삿일이라 그런 비바람이 심한 날 중 하루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날이 지날수록 바람이 점점 거세지더니 하룻밤은 빗방울과 바람이 번갈아가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바다도 없는 동네에 거센 파도가 밀려온 것 같기도 하고, 지붕 위로 전투기가 지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 집 앞에 세워 둔 우리의 작은 차가 날아가진 알았을까 하는 염려까지 들어, 날이 밝자 마자 차의 안녕부터 확인했다. 첫번째 스톰이었다.
다음 날 바람이 잦아들고 회색 하늘의 구멍 사이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기도 했다. 스톰이 끝난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하늘은 금세 다시 두꺼운 회색 구름 차지가 되고, 핸드폰에 깔아 둔 날씨 어플에서 ‘Red Warning’이 깜빡였다. 두번째 스톰이 오고 있었다.
여행 하루 전날. 거실 창문 앞에 심겨진 나무들이 뿌리째 뽑힐 것처럼 흔들렸다. 집 뒤편 정원에는 누구네 것인지 알 수 없는 작은 물건이 성인 남자 키보다 높은 담장을 넘어 날아왔다가 또 날아갔다. 옆 집 담장의 위쪽 나무판이 무너져 내렸다. 하교길에 아이들은 바람에 떠밀려 아주 잠깐 날았다고 했다. 정원 건넛집 차콜색 지붕 위로 하얀 알갱이들이 쏟아졌다. 우박이었다. 그리고 잠시 눈발이 날렸다.
< 지난 2월 영국을 강타한 스톰의 흔적 >
아… 내일 우리 비행기 뜰 수 있을까? 예보상으로 내일이면 스톰이 잦아든다고는 하나 정확도가 높은 대신 자주 바뀌는 영국의 기상예보는 한치 앞을 모를 때가 많았다. 짐을 싸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아직 비행기가 취소된다는 안내는 없으니 일단 싸 두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는 날, 다행히 하늘이 개였다. 스톰이 지나갔음에도 바람은 거세게 불어 비행기 안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으나 어쨌든 바람의 틈을 파고 들어 비행기는 이륙했고 구름 너머 안전한 상공에 안착했다.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우리는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겨우 두 시간, 서로 가볍게 오가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 영국에 있을 때 반드시 틈만 나면 떠나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한 순간이었다.
:) '맛’있는 스페인
원래도 오후 출발 비행기였던 데다가 바람 때문에 시간이 더 지연된 탓에, 마드리드 공항에서 아토차(Atocha) 기차역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위치의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나니 8시가 다 되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밤길에 멀리 가기도 마땅치 않아 구글맵에서 숙소 근처 평이 나쁘지 않은 식당을 검색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사진상으로는 멋스럽고 ‘맛스러워’ 보이는 식당이 있었다. 숙소에서 나가 골목 모퉁이만 돌면 있는 정말 가까운 식당이었다.
입구에 즉석에서 음악을 요리하는 DJ까지 갖추고 있는 식당은 캐주얼하고 자유롭고 감각적인 분위기였다. 마침 한 팀이 떠나며 생긴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검색할 때 보았던 사진을 보여주며 문어 요리를 주문했다.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감바스(Gambas al ajillo)도 하나 주문하고, 아이들을 위한 해산물 빠에야(Paella)도 주문했다. 이럴 때 술이 빠질 수 있나. 누군가 이제껏 자신이 마신 상그리아(Sangria)를 모두 부정하게 됐다는 거창한 댓글로 칭송한 상그리아도 두 잔 주문했다.
가장 먼저 상그리아가 나왔다. 과일이 아낌없이 들어있는 상그리아는 이름처럼 싱그러웠다. 잠시 후 아름다운 해산물 요리 한 상이 차려졌다. 남편과 나는 거의 황홀경에 빠져 해산물 요리를 흡입했다.
스페인 음식이 아무리 맛있기로 유명하기로서니 아직 본격적인 여행도 제대로 하지 않고 숙소 근처에서 적당히 검색해 방문한 첫 끼니를 마주하자마자 이렇게 감동하는 것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간 참아온 우리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면 수긍이 될 것이다.
영국은 네 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섬나라다. 그러나 마트에 가면 생물 해산물은 거의 연어나 대구 뿐이고, 새우나 오징어, 문어, 조개, 홍합 등은 대부분 냉동이거나 양념이 되어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내 취향은 아니지만) 해조류가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대체 영국의 바다에는 무엇이 잡히고, 잡은 것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식당에 가면 어떤가. 해산물 요리라곤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 밖에 없다. 아니면 깔라마리 튀김이나 새우 튀김. 해산물로 할 수 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왜 죄다 튀겨 버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만약 다른 해산물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 있다면 그건 영국 기준, 외국 음식점일 가능성이 크다.
< 영국의 대표 음식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 >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일단 나는 부산이 고향이다. 시장에만 가면 각종 생선들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 나의 엄마는 하루 걸러 하루씩 갈치(오해하지 말자. 그때는 갈치가 비교적 저렴했다.)와 고등어, 납세미 등의 생선을 굽거나 조렸고, 오징어를 데치거나 국을 끓였다. 엄마의 꽃게를 넣은 된장찌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일년에 6번이 넘는 제사 탓에 두 달에 한번은 내 팔뚝만한 조기를 먹었다. 해산물의 비린내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친숙해지지 않을 수 없는 유년기였다.
성인이 되어 회사에 들어가자 팁그룹내 최고 ‘대빵’인 부장님은 회식을 할 때 신입사원인 나에게 메뉴를 고를 기회를 주는 진보적인 상사였다. 다만 그 후보가 ‘횟집1’, ‘횟집2’, ‘횟집3’이었을 뿐. 당시 (부산출신임에도!) 날생선을 안 먹던 나는 회식만 가면 오이와 당근으로 배를 채웠고, 그 뒤로 회식에 동참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영국으로 오기 전에는 마트에서 생선회 코너를 빼놓지 않고 둘러보는 입맛의 사람이 되었다.
역시나 부산이 고향인 남편은 나보다 더했다. 어릴 적 방학이면 부산 옆 울산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큰아버지댁에 가서 지내곤 했는데, 남편을 예뻐했던 큰아버지는 생선회를 한 번에 한두 점씩이 아니라 한 줄씩 쓸어 먹고도 남을 정도의 회를 아낌없이 내어 주셨다고 했다. 바닷마을 출신이셔서 그런지 시아버지는 해산물 마니아였고, 나는 남편과 결혼 후 시부모님댁에 갈 때마다 해산물 요리를 먹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 집에서 자란 남편의 입맛이 어떨지는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입맛의 우리가 섬나라이면서 해산물이 거의 없는 영국에 살고 있으니 그간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느끼하고 지겨운 피시 앤 칩스를 참을 수 없어 마트에서 대구를 사다가 집에서 구워도 보고, 조림도 해보고, 칼로 생선을 다져 어묵도 만들어 보고, 냉동 오징어로 숙회도 만들어 보았지만 맛있는 해산물의 감칠맛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굳이 해산물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영국 같은 해산물과 감칠맛의 불모지에서 지낸다면 누구라도 ‘맛’이 있는 음식이 그리우리라.
그런데 스페인 요리에는 ‘해산물’이 있었다. 스페인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해산물의 향연에 우리는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의 댓글처럼 상그리아가 세계(?) 최고였느냐 하면 그것은 잘 모르겠다. 빠에야는 조금 많이 짰고, 감바스는 아주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인 매콤한 소스의 문어구이 요리만큼은 내가 스페인 여행 중 먹은 음식들 중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히는 나의 스페인 ‘최애’ 음식이라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다.
내 생애 그렇게 식감이 부드러운 문어 요리는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문어 요리를 먹을 때면 끝에 남는 질긴 식감 때문에 결국엔 뱉어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스페인의 문어는 국적이 달라 그런지 부드럽기가 조금 과장을 보태 마시멜로 같았다.
비단 이 가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후 식사 때가 올 때마다 남편과 나는 애써 스페인 음식점을 찾았는데 거기서 문어 요리가 있으면 꼭 시켜 보았다. 조리법과 소스는 다 달랐지만 문어의 부드러움은 한결 같았다. 프라도(Prodo) 미술관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있던 역사가 깊어 보이는 어느 레스토랑의 국물이 자박하게 데친 문어요리도, 마이요 광장 옆 ‘산 미구엘(San Miguel) 시장’에서 먹은 상큼한 소스의 문어 숙회도, 절벽 위의 도시 ‘론다(Ronda)’의 인기 레스토랑에서 먹은 예쁜 플레이팅의 문어 구이요리(소스가 한국의 명절 음식 산적 맛과 완전히 같았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을 발견한다. 바로 스페인은 같은 문어라도 조리법과 소스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영국은 ‘피시 앤 칩스’를 주문하면 대부분 거기서 거기다. 조금 더 바삭한가, 간이 잘 맞는가 정도이지 큰 차이는 없다(물론 영국인들은 아주 예민하게 구분하며 천차만별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여행기이니 내 기준으로 말하겠다). 그런데 스페인의 문어 요리는 다양했다. 스페인의 요리에는 ‘맛’이 있었다.
지난 해 7월 영국으로 온 이후 무표정한 얼굴 같은 단조로운 영국음식에 점점 둔감해지던 우리의 미각이 8개월만에 영국밖의 ‘감칠맛’을 접하고서 흥겨움에 춤을 추었다.
마드리드의 마지막날 저녁, 산 미구엘 시장 간이 테이블에서 남편과 나는 거의 넋을 놓고 음식을 흡입했다. 비린 맛 때문에 한국에선 입에도 못 대던 미역 무침까지 맛있을 줄이야. 옆에서 지겨움에 몸을 비트는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시장이 문을 닫는 자정까지 먹고 또 먹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따가운 눈초리에 시장을 나서며 남편과 나는 서로의 눈에서 ‘감동’을 읽었다. 아, 영국으로 돌아가면 없을 ‘맛’이여 안녕.
:) 파란 하늘 아래 누구라도 빛날 마드리드
그러나 스페인에는 진짜 감동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하늘의 색이었다.
우리가 떠나오기 직전 영국의 날씨를 기억하는가? 그 스톰 이전에 영국의 날씨엔 비가 있었다(여행을 다녀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며칠째 안개와 비가 뒷마당에 상주하고 있다.).
겨울철 영국의 날씨 예보는 거의 ‘비’다(다른 계절에는 자주 ‘비’다.). 그렇다고 비가 종일 쏟아지는 것은 아니고, 비가 내릴 때도 아주 가느다랗게 흩뿌리듯 내리기 때문에 점퍼에 달리 모자만 툭 덮어 쓰면 될 정도다. 따로 우산을 챙겨 다닐 필요도 없어 생활하기에 아주 불편하지는 않다. 다만 언제 비가 내려도 이상할 것 없는 잿빛 하늘이 몇 개월째 지속되니 원래 하늘은 파랑이 아니라 회색인 것만 같고, 하늘색의 영어표기 ‘Sky Blue’는 ‘Sky Grey’로 바뀌어야 할 것 같은 기본적인 상식에 의문이 들곤 했다.
< 영국 겨울의 흔한 안개와 하늘색 >
썬크림을 바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영국의 하늘에 익숙해져 있다가 마드리드에서 맞이한 첫 아침. 프라도 미술관으로 가는 길의 스페인 하늘이 눈부셨다. 감탄을 위한 상투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눈이 부셔서 눈을 잘 뜰 수가 없었다. 파래도 이렇게 파랄 수가 있나. 우중충한 영국의 회색 하늘에 적응된 눈이 시려서 놀랄 지경이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제일 유명한 그림 벨라스케스(Velázquez)의 <시녀들>을 보고, 그리스·로마 신화를 즐겨 읽는 딸이 보고 싶어했던 아라크네(Arachne)가 등장하는 그림(벨라스케스의 <실 잣는 여인들>)을 보고, 고야(Goya)의 <옷을 벗은 마야>는 못 보고(하필 그 방이 보수 중이었다. 굳이 벗고 있는 마야 언니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그림이 많아 아쉽지 않았다.) 끊어질 것 같은 허리를 두드리며 미술관을 나서자 햇볕에 더 파랗게 달궈진 하늘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겹쳐 입고 나온 겉옷을 벗어 팔에 걸치고 프라도 미술관 위쪽에 위치한 부엔 레티로(Buen Retiro) 공원으로 향했다. 노를 젓는 배가 떠다니는 큰 연못 가에 앉아 아이스크림콘을 먹었다. 2월에 얇은 자켓 하나만 걸치고 야외 공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추위를 느끼지 않는 날씨가 있다니, 내가 그곳에 직접 앉아 있음에도 거짓말처럼 현실감이 없었다(차라리 싱가폴이나 괌 같은 열대기후 지방으로 갔다면 내내 더운 날씨가 수긍이 되었을 것이다.). 공원 위로 탁 트인 하늘은 여전히 파랬다. 뜨거운 햇볕에 데워진 공기가 높이 올라가 파란색 하늘물에 씻긴 후, 다시 내려와 뺨에 닿는 공기가 시원했다. ‘세상에 이런 하늘, 이런 날씨라니, 말도 안돼’라는 말을 스무 번은 넘게 내뱉은 것 같다.
다음 날, 밝은 회색의 넓은 마드리드 궁전 위로 펼쳐진 하늘은 전날 보다 더 맑고 파랬다. 내 눈엔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보다 더 화려하게 느껴졌던 마드리드 궁전이었건만, 궁전 밖으로 나오자 파란 하늘 아래서 금세 빛을 잃었다. 가장 밝고 청아한 파란색 물감을 고르고 골라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산속 깊은 곳의 옹달샘에 풀면 저런 색깔이 나올까. 아무리 핸드폰 카메라의 각도를 바꾸어도 다 담기지 않는 하늘을 그래도 손에 쥐어 보고 싶어서 수 십장의 사진을 찍었다.
마요르(Mayor) 광장의 노천 카페에 앉아 있을 때 머리 위로 흐른 하늘은 또 얼마나 화사했는지. 파란 하늘 아래 반들거리는 돌바닥을 ‘사족보행’으로 기어다니는 아이의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만드는 파랑이었다(그런데 아들아, 굳이 왜 그렇게까지 하고 노는 거니? 응??).
마요르 광장을 보았으니 '솔 광장(푸에르타 데 솔 광장, Puerta del Sol)'은 굳이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 태양 아래서 느긋하게 쉬는 중에, 먼저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친구를 통해 솔 광장에 마드리드 도시 문장에도 들어가 있는 ‘딸기나무와 곰 동상’이 있다는 것과 그 근처에 마드리드에서 제일 유명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츄러스 맛집이 있다는 정보는 입수했다. 동상은 안 봐도 그만일 듯 했지만 역사와 전통은 존중받아야 하기에 우리는 마요르 광장에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솔 광장으로 향했다. 달콤한 초콜릿을 듬뿍 찍어 순식간에 츄로스 6 조각을 해치운 뒤 솔 광장 분수대에 앉아 바라보는, 해가 저물어 가는 하늘은 반투명하게 푸른 미농지 같았다.
여행 내내 파란 하늘을 쏟아내던 마드리드는 내게 파란색으로 각인되었다. 파랑이 흘러내리는 하늘 아래 누구라도 빛날 마드리드.
짙은 하늘색을 머리에 이고 마드리드를 거리를 걷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환상적인 날씨 속에 여행하는 설렘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조금 다른 성질의 두근거림이 섞여 있었다. 어딘가 불안하고 불편한 두근거림. 이 묘한 두근거림의 정체는 무엇일까?
산미구엘 시장에서 탐욕스러운 해산물 헌팅을 끝으로 이틀 간의 마드리드 여행을 마치고 숙소도 돌아가 남편과 얘기를 나누다가 답을 찾았다. 남편이 말했다.
“스페인의 날씨란 이런 거구나. 정말 날씨 너무 좋다. 마드리드 진짜 좋다.”
“근데… 이렇게까지 하늘이 파랄 필요가 있나? 굳이 종일 내내 맑을 필요도 없잖아? 너무 사치스럽고 낭비하는 것 같아.”
그것은 바로 마드리드의 지나친 날씨 낭비 때문이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할 수 있겠지만,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물부족 국가에서 온 어떤 사람이 마르지 않는 샘물 옆에 자리한 옆 나라를 방문해 물을 쉼없이 펑펑 틀어 두는 물소비행태를 목격했을 때 받을 충격 같은 것.
언제든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고, 겨울이 깊어질수록 ‘하늘’색은 ‘회색’이 되는 ‘날씨 부족 국가’ 영국에서 지내고 있는 내 눈에 마드리드의 온종일 파란 하늘은 낭비처럼 느껴졌다. 샤워할 때 뜨거운 물을 계속 틀어둔 것만 같고, 한겨울에 과하게 난방을 돌린 방에서 반팔을 입고 있을 때 느끼는 죄책감 같달까. 이렇게 흘려보내지 말고 아꼈다가 나중에 회색의 날들이 오면 꺼내 써야할 것 같은 조급증이 들었다.
“이렇게 넘치게 파란 하늘, 영국에 좀 나눠주지. 돕고 살면 좋잖아?”
영국에서 겨울을 보내며 어느 때보다, 또 가족 중 누구보다 감기에 자주 걸려 고생하는 남편이 강한 공감을 표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이었지만, 거짓말 같은 파란 하늘 아래서 불안한 두근거림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반응한 이 두근거림과 말도 안되는 불안 때문에 깨달았다. 영국에 온지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내가 ‘영국생활’에 많이 적응했구나, 영향을 받고 변하고 있구나.
만약 우리가 한국에 있다가 스페인으로 여행 왔다면 스페인의 파란 하늘에 불안할 정도로 감동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겨울이, 특히 서울의 겨울이 춥기는 해도 하늘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높고 파랗지 않은가(한겨울에는 미세먼지도 덜하니 더욱 그렇다!).
이것은 날씨에 앞서 얘기한 음식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다양한 음식을 먹다가 왔다면 해산물 요리가 테이블 위에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흥겨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음식 맛에 대한 기준도 훨씬 높았을 것이고, 산 미구엘 시장에서 먹은 차가운 킹크랩 다리 2개에 감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여행의 만족도도 지금과는 달라졌겠지.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영국에 머무는 시간은 이미 나의 생각과 감정의 모양과 색을 바꾸고 있었다. 그러니 영국에서의 경험이 우리에게 비단 ‘가난’만 남기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 변화와 영향에는 좋은 방향도 있고 나쁜 방향(여기에 ‘가난’이 포함될 것은 분명하다.)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영국에서 보낸 시간이 스페인 여행에서 받을 수 있는 감동을 최대로 끌어내 스페인을 더욱 아름답게 밝혀 주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