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빼고 영국 여행] 잉글랜드, 중세의 도시 '요크(York)'
이번 영국 지방 도시 여행은 잉글랜드 북부에 자리한 ‘요크(York)’이다. 현시대 세계 대표 도시로 꼽을 수 있을 뉴욕(New ‘York’)에도 이름이 들어가 있는 요크는 영국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했던 곳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잠시 뉴욕(New York)이 ‘새로운 요크(New York)’가 된 사연을 살펴보자.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의 열강은 앞다투어 신대륙으로 진출하여 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아낸 땅을 식민화했다. 영국 역시 1664년, 현재의 뉴욕 지역을 식민화하게 되었다(처음 이 지역을 차지한 것은 17세기 초 네덜란드로 ‘뉴암스테르담’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후 영국이 네덜란드를 물리치고 이곳을 차지했다.). 영국의 왕은 새롭게 쟁취한 땅을 자신의 동생이자 ‘요크 공작(Duke of York)’이었던 제임스에게 하사하였고, 그의 작위인 ‘요크 공작(Duke of York)’을 따서 식민 도시에 붙인 이름이 새로운 요크, ‘뉴 욕(New York)’이었다.
처음 ‘뉴욕’의 이름이 요크에서 나온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도대체 요크가 얼마나 대단한 도시길래 신대륙에도 그대로 옮겨두려고 했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러나 당시 이런 식으로 영국, 넓게는 유럽의 도시 이름이나 왕과 귀족의 이름을 신대륙의 식민 도시에 붙이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었고(케임브릿지, 뉴캐슬, 조지아 등등), 정확히는 ‘요크’라는 도시 자체가 아니라 ‘요크 공작(Duke of York)’이라는 작위에서 딴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조금 김이 샜다. 하하.
하지만 ‘요크 공작(Duke of York)’이라는 작위 자체가 요크 지역을 기반으로 한 것일 테고, 왕실 직계 후손에게 주어지는 귀한 작위에 ‘요크’가 쓰였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식민지의 도시 하나를 그 ‘요크 공작’에게 수여했다는 것 자체가 요크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요크 공작 작위는 왕실 직계 후손 중 왕위 계승권은 있지만, 왕이 될 가능성이 낮은 왕자, 특히 국왕의 둘째 아들에게 수여하는 작위라고 한다.)
다시 ‘요크’로 돌아와서, 고대 로마 시대부터 군사적 거점 도시였던 요크는 로마 시대가 끝난 후로도 계속 잉글랜드 북부 지역의 중심 도시 역할을 했다. 특히 9세기 중반부터 잉글랜드 북부 지역의 일부(요크를 포함한 요크셔 지방과 그 주변 등)는 약 100여년간 바이킹에 점령되어 바이킹의 지배를 받았는데, 바이킹들은 요크 주변 지역을 ‘요르빅 왕국(Jorvik Kingdom)’이라고 정하고, 요크를 이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현재의 ‘요크’라는 명칭은 이 바이킹 시대 왕국의 이름이었던 ‘요르빅(Jorvik)’에서 변화된 이름이라고 한다.
바이킹이 물러간 이후의 중세 시대에도 요크는 잉글랜드 북부의 주요 도시였다. 우선 두 개의 강, 우즈(Ouse) 강과 포스(Foss) 강이 만나는 요크는 잉글랜드 북부의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또한 중세 시대에는 대영제국으로 통합되기 전이라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이 활발하던 시기였기에 잉글랜드 북부에 위치한 요크는 북방을 경계하는 군사적 핵심 도시가 되었다. 그 때문에 왕실에서도 늘 관심을 기울이며 관리와 군대를 배치하였고, 이런 사정으로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도시가 요크였다.
이렇게 상업/군사/정치적으로 높은 위상에 힘입어 한 때 이 지역의 귀족 가문인 ‘요크 가문’은 자신들 또한 왕실의 혈통임(요크 가문은 몇 세대 전의 왕인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을 내세워 왕위에 도전하기도 했다. 당시의 왕실인 랜커스터(Lancaster) 가문과 요크 가문의 싸움이 바로, 세계사를 공부했다면 어쩌면 기억 속 깊은 곳에 남아 있을 지도 모를, ‘장미전쟁’. 약 30년간 이어진 왕위 다툼에서 최종적으로 요크 가문은 지고 말았다. 왕위를 지킨 랜커스터 가문은 승자의 여유로, 요크 가문을 왕실의 혈통으로 인정하며 ‘요크 공작’ 작위를 내렸다. 그러나 이후 왕실은 왕권 강화를 위해 권력을 런던으로 집중했고, 요크는 점차 위상을 잃어갔다.
산업혁명 시기 이후로는 산업화에 필요한 운하와 철도, 도로 등을 발달시키기에 적합한 주변 도시(맨체스터, 리버풀, 리즈 등)에 ‘북부 잉글랜드 거점 도시’라는 역할을 내어주고, 대신 요크는 북잉글랜드의 전통과 역사를 지키는 것을 택했다. 로마 시대부터 중세 시대, 또 그 사이를 스쳐간 바이킹 시대까지 품고 있는 요크에는 보존해야할 유산이 많았다.
그 결과로 현재의 요크는 너무 혼잡하지도, 너무 허전하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살기 좋은 지방 도시이자 아름다운 유산이 보존된 주요 관광 도시이다. 화려한 과거의 영광과 자신의 이름을 물려준 후계 도시, ‘뉴욕’의 명성에 비해 이렇게 자료를 찾아 글로 정리해본 지금의 요크가 가진 위상이 초라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크는 2018년 설문조사에서 영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뽑히기도 하는 등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직접 찾아가 만난 요크는 화려한 과거의 영광이 남겨준 유산 덕분에 특별한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저 거리를 걷기만 해도 충분히 아름다운 도시였다.
:: 중세 시대 북부 잉글랜드 종교의 중심, 요크 대성당
‘요크 민스터(York Minster)’라고도 불리는 요크 대성당(공식 명칭은 Cathedral and Metropolitical Church of Saint Peter in York)은 요크에서 가 볼 만한 장소 중 첫번째로 꼽히는 대표 명소이다. 앞서 ‘글로스터 대성당’ 편에서도 말했듯 거의 모든 영국 도시의 (대)성당이 해당 도시의 대표 명소이지만, 특히나 요크 대성당은 더욱 의미 있는 곳이었던 듯하다.
종교의 힘이 거대했던 중세 시대 북부 잉글랜드의 중심 도시였던 요크가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은 당연한 일. 요크 대성당은 요크 및 주변 지역의 모교회 역할을 했고, 요크 대주교는 영국 성공회의 두번째로 높은 직책에 해당되는 등 종교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를 가진 성당이었다. 건축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데, 현재 남아 있는 성당 중 고딕 시대(중세 시대의 일부)에 완공된 가장 큰 고딕 성당이며, 내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중세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지한 나는 요크 대성당에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한번 ‘글로스터 대성당’ 편에서의 변명을 반복하자면, 요크를 방문할 즈음 나는 영국에서 지낸지 거의 일 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고, (영국뿐 아니라 유럽 다른 도시들을 포함해) 매 도시를 다닐 때마다 있는 성당에 지쳐 있었다. 하여 입장료(약 3만 5천원/성인)도 따로 내야 하는 요크 대성당을 과감하게 스킵! 어디 대성당의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이 내부에만 있겠는가. 믿음 없는 자는 성당 밖에서 이미 이 도시 속 하나의 풍경이 되어버린 요크 대성당을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다.
이름처럼 거대한 요크 대성당은 요크 어디서나 잘 보였다. 사람들은 대성당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아마도) 만나기로 약속한 지인을 기다리고, (또 아마도) 다음 여행 일정을 계획했을 것이다.
성당의 또 다른 방향에는 잔디밭 주변을 둘러 카페들이 있었다. 날이 좋으나 궂으나 내부보다는 바깥 자리를 선호하는 영국인들이지만, 비교적 맑은 하늘 아래의 카페 앞 야외테이블은 완벽하게 만원이었고, 잔디 위 테이블에도 이미 누군가의 차지였다. 대성당이 바로 보이는 카페의 빈 자리를 염탐하다가 자리 획득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아 돌아서면서도 늘 엄숙해야 할 것 같은 성당 주변의 소란이 시끄럽기보다 어쩐지 다정하게 느껴졌다. 도시마다 있는 대성당에 질렸다지만, 한편으로 도시마다 있는 성당을 접하며 (종교가 있으나 없으나) 이미 성당은 영국인들의 일상임을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성당 가까운 펍에서는 창문으로도 대성당이 보였다. 정각이 되자 대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묵직하고 진하게 퍼졌다. 종소리를 들으며 비워 낸 맥주잔에 운치가 대신 차는 기분이었다.
펍의 한 쪽 벽에는 일요일마다 제공하는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s)’에 대한 메뉴 안내가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영어 동요와 동화책에서 자주 들었고, 다른 펍에서도 가끔 보았던 ‘선데이 로스트’라는 메뉴가 그날따라 문득 궁금해졌다.
선데이 로스트는, 일요일 예배 후에 집에서 천천히 구운 고기 요리를 먹었던 영국의 전통 가정식으로 중세 시대 후반경에 생겨났다고 한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일요일은 지금도 중요한 날이지만, 영국의 기독교인 영국 성공회에서는 특히나 일요일 점심식사를 성스럽게 여겨 온가족이 특별식을 챙겨 먹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차츰 생활이 바빠지면서 펍에서 사먹기도 했다는 선데이 로스트는 현재도 이렇게 성당 옆 펍에서 일요일 오후 시간에 판매가 되고 있었다. 성당이 보이는 펍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선데이 로스트를 먹어보는 것도 좋은 영국 여행이 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으나, 곧 그날이 휴일일뿐, 일요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요크에서 살았었다는 영국인 선생님과 영어수업을 하다가 ‘선데이 로스트’ 얘기가 나왔는데, 물론 종교적인 의미가 컸겠으나 과거 늘 바쁘고 넉넉하지 않았던 일반 평민들에게 선데이 로스트란,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특별하게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챙겨먹는 전통이기도 했다고 했다. 현재는 영국을 떠나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그녀는 가족지인들과 함께 즐기던 선데이 로스트가 그립다며, 애정을 듬뿍 담아 부연설명을 해 주었다. 요크의 대성당 옆 펍에서 정말로 일요일에만 제공하는 선데이 로스트 덕분에 영국의 전통을 또 하나 알았다. 선데이 로스트는 영국인들에게 종교적 안식이자, 고향의 맛 같은 것인가 보다.
:: 긴 세월 무심한 듯 단단하게 이 도시를 지킨, 요크 성벽길
요크의 또 다른 명물은 요크 성벽길(York City Walls)이다.
기억할지 모르겠으나, 앞서 게재한 영국 여행기 중 성벽길이 있는 도시가 하나 더 있었다. 잉글랜드 북서부에 위치한 체스터(Chester)! 체스터의 성벽길과 요크의 성벽길 모두 로마 시대에 지어진 성벽을 기반으로 하여, 중세 시대에 재건축한 도시 성벽으로 구도심을 둘러싸는 3km가 넘는 길이와 뛰어난 보존 상태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높은 성벽들이다.
두 성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본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둘 다 걸어본 경험으로, 두 성벽 모두 근사하지만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의 규모 때문인지 체스터의 성벽길은 조금 더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라면, 체스터보다 큰 도시인 요크의 성벽길은 더 넓고 다부진 느낌이 들었다.
요크 성벽길로 오르는 타워는 ‘바(Bar)’라고 불린다. 총 4개가 있는데 나는 그 중 가장 높은 성문인 ‘Monk Bar’를 통해 올랐다. 성문의 생김이 마치 중세 시대 영화의 장면 같았다. 이 성문을 오르지 않고 통과하여 들어가면 구도심이 나온다. 요크 구도심의 작은 골목길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명소인데, 그것은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성벽길 위에 오르면 성벽 아래 혹은 옆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도시 풍경이 근사했다. 그중 최고의 장관은 아마도 요크 대성당이 아닐까. 주변의 나무와 건물 등과 어우러져 멀리 보이는 요크 대성당은 가까이에서 올려다볼 때보다 더욱 성스럽고 아름답게 빛났다.
갑자기 좁아진 폭의 성벽길을 지날 땐 은밀한 지령을 전하는 병사가 된 듯 조심조심 소리를 죽여 움직였다. 로마 시대의 성벽이 남아 있는 구간이라는 안내문을 읽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성벽길 주변 풍경은 또 바뀌어 있다.
들풀이 자란 언덕 옆으로 난 성벽길을 걸을 땐 탁 트인 들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언덕 아래의 집들과 거리를 둔 채, 무성하게 자란 풀과 나무 사이로 긴 성벽길이 초연하게 뻗어 있었다. 긴 인생을 살아낸 노인의 담담함 같다고 할까.
사람에 비유하면 정말로 노인이라 할 수 있을 요크 성벽길을 스쳐간 바람의 세월은 얼마일까. 그 긴 세월 성벽 안과 밖의 도시와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변해가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며 성벽은 무심한 듯, 그렇지만 단단하게 이 요크라는 도시를 지켰으리라.
눈 앞으로 아득하게 뻗은 성벽길이 지나간 세월 같기도 하고, 내가 헤치고 나가야 할 다가올 시간 같기도 하여 나도 모르게 뚜벅뚜벅 계속 앞으로 걸었다.
:: '다이애건 앨리'를 연상시키는 중세의 거리, ‘The Shambles’
성벽길 안쪽에 형성된 요크의 오래된 도심은 성벽과 함께 당연히 아주 긴 역사를 품고 있다. 특히 중세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 혹은 그런 풍의 건물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데, 그 때문에 요크의 작은 골목길들은 곳곳이 특별하고, 그 특별함을 경험하려는 여행객들로 늘 붐빈다.
‘The Shambles’라는 이름이 붙은 옛 거리는 특히나 유명하다.
요크에서 바이킹들을 몰아낸 잉글랜드의 왕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 윌리엄 1세)’이 중세 시대에 제작한 책에서도 언급되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이 거리는 원래 정육점들이 모여 있는 거리였다고 한다. 거리의 이름 ‘Shambles’은 고기를 진열하는 선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거리의 건물들은 대부분 14~16세기에 지어진 것들인데, 중세 시대의 건물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 거리의 독특한 생김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The Shambles 거리에 늘어선 건물들은 가지런하게 반듯하지 않고 어딘가 울퉁불퉁한 느낌이 든다. 울퉁불퉁한 건물 탓인지 길도 구불구불 휘어지고, 거리의 폭은 양쪽의 건물들이 거의 맞닿을 듯 좁다.
제각각의 건물들이 늘어선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무엇이 떠오르는가? 바로 <해리 포터>의 상점가, 다이애건 앨리(Diagon Alley)다.
요크의 중세 시대 작은 골목길 The Shambles는 다이애건 앨리와 꼭 닮아 <해리 포터>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까진 아니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내 눈에도 너무 ‘다이애건 앨리’라, 심지어 몇 달 전 방문했던 런던 근교의 ‘해리 포터 스튜디오’에 있는 다이애건 앨리 세트장 보다 더 ‘다이애건 앨리’라 정말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중세 시대에 이 거리를 채웠을 정육점들은 이제 마트 안으로 사라진 시대. 그 빈 자리는 여행객들을 위한 카페, 기념품샵 등의 상점들이 차지했다. 그 중 해리 포터 기념품샵 혹은 중세 기사, 마녀, 혹은 기괴한 소품들을 파는 상점들은 The Shambles의 ‘다이애건 앨리’화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있다.
:: 그러나 내게 요크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 서점 그리고 연어 에그 베네딕트
그러나 유명한 랜드마크만이 여행지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인 장소가 그 도시만의 감성 혹은 풍경, 또 여행하는 순간의 기분과 어우러져 무엇보다 진하게 여행지를 기억하게 한다. 요크에도 그런 곳들이 있었다.
해외 도시를 여행할 때, 굳이 검색을 해서 목적지로 설정하지는 않지만 길을 가다가 눈에 보이면 한 번은 꼭 들어가보는 곳이 있다. 서점.
외국어로 쓰인 책들이 빽빽하게 꽂힌 곳에서 책의 내용과 느낌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내 취향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고. 그래도 나는 박물관을 감상하듯 이국의 서점을 구석구석 꼼꼼하게 돌아본다. 과연 읽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기념으로 한 권씩 사기도 한다.
요크의 옛 거리에도 작은 서점이 있었다. 요크 대성당 바로 근처에 있는 서점인데, 서점 앞 거리에 서면 좁은 거리 폭 사이로 요크 대성당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서점의 이름도 ‘The Minster Gate Bookshop’이었다.
청록색의 외관이 예쁘기도 했지만, 이 서점에 끌렸던 건 서점 앞 가판대에 진열된 책 때문이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Why I Write’. 늘 글을 쓰지만 과연 글을 계속 쓰는 것이 맞는지 늘 고민이던 내게 그 서점이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이리 와, 어쩌면 이곳에 답이 있을지도 몰라.’
오래된 좁은 건물(아마도 집을 개조했을 것이다)의 작은 방 구석구석에 책들이 가득했다. 벽면은 말할 것도 없고, 벽난로 앞과 방 가운데, 그리고 복도와 계단 층계참까지 책들이 쌓여 있었는데, 그 덕분에 기분 좋게 퀴퀴한 종이 냄새가 났다. 낡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둔탁하게 울리는 나무 계단 소리가 좋았다. 오래된 거리의 오래된 서점은 오래된 요크를 닮아 있었다.
매끈한 대형 체인 서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이 서점만의 묘한 매력에 괜스레 마음이 벅차올라서 이곳의 무엇이라도 손에 넣어가고 싶어졌다. 서점 앞 가판대에서 내게 손짓하던 조지 오웰의 ‘Why I Write’를 샀다. 노암 촘스키의 ‘On Anarchism’도 샀다. ‘Why I Write’는 읽었고, 그래서 이렇게 계속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아직 무정부주의자는 되지 못했다. 어쩌면 영영 못 읽을지도 모르나(하하;;;), 둘 다 내게 요크의 작은 서점을 환기시키는 기념품이자, 요크의 특별하고 아름다운 기억이다.
또 하나, 요크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요크를 떠나던 날 아침식사를 했던 브런치카페, Brew & Brownie다.
여행을 할 때면 남들이 다 가 본다는 유명한 곳을 방문하길 좋아하는 남편은 요크에서 유명한 브런치카페를 찾았다.
“요크에 가면 꼭 가 봐야하는 카페래. 빵이랑 에그 베네딕트가 유명해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먹는다나봐.”
식당이든 카페든 줄을 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달달한 빵과 에그 베네딕트를 좋아하는 남편은 또 오기 힘든 곳이니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사진으로 보는 빵과 음식이 정말 맛있어 보이긴 하여, 일단 아침에 카페 상황을 보고 줄이 너무 길면 포기하자고 절반의 찬성을 했다.
이르게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부지런을 떨었는데도 카페 앞에는 이미 대기줄이 있었다. 그러나 포기할 정도의 긴 줄은 아니라서 대기줄에 합류했다.
카페 앞에 서서 기웃기웃 앞쪽 거리를 바라보니 요크 대성당이 보였다. 그런데 거리 끝으로 보이는 뷰가 어딘가 낯익었다.
“어, 여기. 여행 책에 나온 요크 거리 사진, 거기다!”
영국 생활을 시작하며 앞으로 떠날 영국 여행을 대비해 동네 서점에서 영국 여행책을 한 권 샀었다. 그 책 앞에는 영국 여행지(도시) Top 12를 선별해 놓은 섹션이 있었는데, 요크는 10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해당 페이지에서 첫 번째로 실린 요크 거리 사진이 정말 운치있게 아름다웠는데, (각도는 살짝 다르지만) 내가 그 거리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어머, 이 카페 오길 잘 했네~”
남편의 고집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자리에 앉았다. 따끈한 커피와 핫초코가 아침 공기에 움츠린 몸을 녹여 주었다. 달콤 쌉싸름한 시나몬롤과 초코 쿠키도 맛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연어 에그 베네딕트! 나는 에그 베네딕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짭쪼롬한 훈제 연어와 함께 먹으니 맛이 풍성해서 감탄을 부르는 아침식사가 되었다.
아침 식사를 한 뒤에는 요크를 지나는 두 개의 강 중 더 큰 강인 우즈 강(River Ouse)가를 산책했다. 요크에서의 마지막 코스였다.
강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난간에 새겨진 흰 장미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요크의 장미였다.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중세 시대 왕권을 두고 벌어진 ‘장미전쟁’. 처절한 전쟁의 이름 치고 아름다운 ‘장미전쟁’은 왕권을 다투었던 두 가문이 각각 붉은 장미(랜커스터 가문, 승리함)와 흰 장미(요크 가문)를 상징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었다. 장미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요크 가문과 더불어 요크 도시 자체도 점차 세력을 잃어갔지만, 요크 가문의 기반 도시이자 영향력이 컸던 요크에는 아직도 흰 장미가 거리 곳곳에 수놓여 있었다. 실제로 요크는 현재에도 흰 장미를 도시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결과만 보면 패배의 역사이나, 달리 생각하면 왕권에 도전해볼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위상을 누렸던 영광의 역사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잔잔하게 반짝이는 우즈 강의 풍경이 평화로웠다. 강물 위에는 몇 조각의 배들이 떠 있고, 몇몇 사람들은 물살을 가르며 조정을 즐기고 있었다. 이 고요한 강이 요크의 치열한 역사 속 뜨거운 영광과 씁쓸한 고배를 다 지켜보았으리라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어느 편의 시시비비를 보태지도 덜어내지도 않고 모든 것을 묵묵히 흘려보낸 강물만이 품을 수 있는 평온함일 것이다.
우즈 강 산책을 마지막으로 나는 요크를 떠나 북쪽을 향해 달렸다. 요크 여행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산악 지역(레이크 디스트릭트)을 둘러보는 긴 여행의 시작이었다. 아직 내가 보지 못한 요크의 모습이 많은 것을 알면서도 다음 일정을 위해 떠나야만 하는 발길이 아쉬웠다.
마찬가지로 알려주고 싶은 요크의 명소(요크 대성당 앞의 로마 황제 동상과 정복왕 제임스가 세운 요크 성, 유령이야기가 난무하는 요크 던전, 우아한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는 베티즈 카페 티 룸 등등)와 요크에서 겪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비밀번호를 잘못 알려주고도 전화를 받지 않아 밤중에 호텔을 예약하게 만든 에어비앤비, 레몬으로 홍차의 떫은 맛을 극복하는 팁 등등)를 다 전하지 못하고 글을 마무리하는 아쉬움이 크다.
혹여 나중에 요크에 간다면, ‘그 사람, 요크를 보다가 말았네?’라고 할까?! 후훗, 그런 핀잔을 들어도 좋으니 당신에게 요크를 여행할 기회가 한 번은 꼭 오면 좋겠다.
[런던 빼고 영국 여행] 잉글랜드, 요크(York)
‘New York’ 말고 ‘Old York’ 어때요? 중세의 도시, 요크 _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