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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시작, 아서왕의 탄생지 ‘틴타겔 성’

[런던 빼고 영국 여행] 잉글랜드 콘월 틴타겔(Tintagel)

by 노현지


포트 아이작(Port Issac)의 황량하고 마른 항구에 밀물이 차오를 동안 영국 콘월에 왔다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곳, 전설적인 장소에 다녀왔다. 포트 아이작의 동쪽으로 이어지는 콘월 북부 해안선에 위치한 ‘틴타겔 성(Tintagel Castle)’이다.


틴타겔위치.png < 포트 아이작에서 멀지 않은 '틴타겔 성'의 위치 (출처 : 구글 지도) >


틴타겔 성은 콘월 북부 해안 절벽 끝에 서서 거친 해풍을 맞으며 폐허로 남은 중세시대의 고성이다. 성이라고 부르지만 대부분이 무너져 온전한 성채의 모습을 갖춘 곳이 거의 없기에 성터(Castle Ruins)라는 말이 어울리는 틴타겔 성.


틴타겔성.png < 성터만 남은 '틴타겔 성' 전경 (출처 : 구글 이미지) >


이 틴타겔 성은 영국 문화유산(English Heritage)으로 지정된 5대 명소 중 하나로 여겨지며, 연간 방문객이 약 20만 명, 여름철 성수기에는 하루 최대 3,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대체 이곳이 어떤 곳이길래 겨우 성의 흔적만 남은 폐허에 이렇게 많은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것일까?

아래는 틴타겔 성이 어떤 곳인지 추측할 수 있는 연관 단어들이다.


#전설의왕 #엑스칼리버(Excalibur) #카멜롯(Camelot) #원탁의기사(Knights of the Round Table) #아발론(Avalon) #멀린(Merlin) 등등


정확한 내용은 몰라도 영화나 책, 게임 등을 통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어떤 왕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가? 아주 신비롭고 웅장하고 영웅 같은 이미지의 전설의 왕, 바로 ‘아서왕(King Arthur)’이다.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 속의 왕이자, 영국인들에게는 ‘통합된 영국(The UK)’이라는 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아서왕. 틴타겔 성은 이 아서왕이 시작된 곳, ‘아서왕의 탄생지 (Birthplace of King Arthur)’로 불린다.


잉글리시헤리티지홈페이지.png < 아서왕의 전설과 얽혀 있는 틴타겔 성 설명 (출처 : 잉글리시헤리티지) >
4243894500000578-4690066-The_book_was_extremely_popular_and_other_Arthurian_tales_were_pr-m-16_1499930201193.jpg < 아서왕의 탄생지인 틴타겔 성 안내판 (출처 : dailymail.co.uk) >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등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내가 그랬다. 하하.)을 위해 아서왕을 간단히 설명하면,

아서왕(King Arthur)은 영국 전설에 나오는 ‘전설적인 왕’으로, 5세기 후반 ~ 6세기 초 영국에서 로마 제국이 철수한 이후 여러 소왕국들이 생겨나 혼란스러운 시기인 ‘다크 에이지(Dark Age)’에 등장해 '브리튼 섬(영국 전체)'을 침략자들로부터 방어하고 혼란했던 영국을 통일하여 이상적인 왕국(카멜롯, Camelot)을 통치했던 왕이다.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Excalibur)의 선택을 받아 왕이 된 아서는 ‘정의와 평등’의 상징인 ‘원탁의 기사들’과 함께 신성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이끌었지만 배신자와의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러나 ‘선택받은 왕’ 아서는 죽음이 아닌 신비의 땅 ‘아발론(Avalon)’으로 보내져 안식을 취하고 있으며, 언젠가 다시 혼란과 위기의 시대가 오면 돌아올 것이라 기대되는 아서왕(“The Once and Future King”). 그에 대한 이야기는 신비롭고 신화적인 상징들이 가득하다.

구전설화와 문학작품 외에는 실체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아서왕이 실제 있었던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전설’일 뿐이라는 의견이 거의 정설로 자리잡았지만, 그의 역사적 실존 여부와 무관하게 아서왕은 영국과 인근 유럽 국가에서 정의롭고 현명하며, 전사로서 용맹하고, 백성에게 신뢰받는 영웅적이고 이상적인 군주상으로 받아들여진다.


800px-Boys_King_Arthur_-_N._C._Wyeth_-_title_page.jpg < 1920년대에 출간된《The Boy's King Arthur》표지에 그리진 아서왕 (출처 : 위키피디아) >


특히 영국에서는 4개 연합국을 아우르는 ‘통합된 브리튼’의 정체성과 기원을 상징하는 신화적 존재로 인식되는데, 이는 중세시대 영국의 왕들이 자신들의 왕권 강화를 위해 ‘아서왕’의 이미지를 차용한 영향이 크다.

아서왕의 시대라 여겨지는 혼란스러운 ‘다크 에이지’ 이후,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에 의해 기독교 문화 위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국가의 틀을 잡다 갔다. 그러나 11세기 프랑스 노르망디 귀족 ‘정복자 윌리엄(노르만 정복)’이 잉글랜드를 정복했고, 잉글랜드의 지배층은 노르만족 왕가로 바뀌게 되었다.

켈트족 계열의 고대 브리튼의 후손들은 연이어 잉글랜드를 지배하는 외부세력들을 피해 스코틀랜드, 웨일즈, 콘월 등으로 옮겨갔고, 각각의 위치에서 독자적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었다. 잉글랜드는 잉글랜드를 너머 브리튼 섬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하였는데, 이를 위해 외부에서 들어온 왕가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고 변방 지역과의 일체감을 높이는 일은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했다.

이 잉글랜드 왕가의 의중과 후원에 힘 입어, 12세기 제프리 오브 몬머스(Geoffrey of Monmouth)는 『브리튼 왕들의 역사(The History of the Kings of Britain)』라는 책을 썼다. 기존에 산발적으로 구전되던 ‘아서왕’을 본격적으로 다룬 『브리튼 왕들의 역사』는 아서왕을 포함해 고대 브리튼 왕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 왕들의 기원이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브리튼 왕들의 역사』 중 마지막 왕으로 등장하는 아서왕은 브리튼 섬 전체를 통일하고, 이후 아일랜드,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독일 북부 등 서유럽 전역까지 세력을 넓힌 전제적 군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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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프리 오브 몬머스 동상(출처 : 위키피디아)과 '브리튼 왕들의 역사' 영어 초판본(출처: 바우만 레어 북스) >


이 책에 따르면, 비록 외부세력인 노르만족이지만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하나의 절대적 왕 ‘아서왕’의 후손이었다. 이런 역사적 전설에 힘입어 잉글랜드의 지배층인 노르만족 왕가는 자신들과 브리튼 고대 왕권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브리튼 전체를 통치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얻고자 하였다.

특히, 콘월은 스코틀랜드나 웨일즈와 달리 10~11세기경부터 이미 잉글랜드에 속해 있었음에도 고대 브리튼 민족인 켈트족 계열의 독립적인 문화와 지역 특성이 강했다. 콘월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중앙에서 임명되는 콘월의 영주 입장에서는 이 이질적인 지역을 잘 통치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잉글랜드 왕실 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13세기 잉글랜드 왕 헨리 3세의 동생인 리처드는 콘월 백작으로 임명된 후, 제프리 오브 몬머스의 『브리튼 왕들의 역사』에서 아서왕의 탄생지(정확히는 잉태지)로 언급된 콘월 북부 해안의 틴타겔에 아서왕의 전설을 기리기 위한 성을 지었다. (자자, 오래 기다렸습니다. 틴타겔 성의 ‘ㅌ’도 안 보이던 긴 이야기가 끝나고, 이제 드디어 틴타겔 성이 나옵니다!! >.<)


medieval-tintagel.jpg < 13세기 당시 틴타겔 성을 상상하여 재현한 그림 (출처 : 잉글리시헤리티지) >


‘전설의 왕’은 태생부터 범상치가 않았는데, 아서의 아버지이자 브리튼의 왕이었던 우서 펜드래곤(Uther Pendragon)은 콘월(Cornwall) 공작(고릴로이스(Gorlois))의 부인인 이고레인(Igraine)을 사랑하게 되어(응...?), 마법사 멀린의 도움으로 콘월 공작의 모습으로 변장해(뭐...?), 이고레인과 하룻밤을 보낸다(헐....;;;;). 그곳이 틴타겔이었고, 그때 아서왕이 잉태되었다. (과정의 놀라운 막장 스토리는 그 시대의 윤리에 맡기고, 아무튼) 아서왕이 ‘콘월 출신’이었던 것이다!

콘월 백작 리처드는 고대 브리튼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콘월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아서왕과 잉글랜드 왕실의 연결성을 높이고자 틴타겔 성을 지었다. 그리고 콘월 외부를 향해서는 콘월을 아서왕의 탄생지로 부각시켜 자신이 통치하는 콘월의 위상도 높이고 싶었으리라. 이로써 5~6세기 고대 브리튼의 전설을 품고 있지만 중세에 지어진 ‘틴타겔 성’의 서사가 완성되었다.

해안 절벽 끝에 세워진 틴타겔 성은 건축되던 당시에도 군사적 요새의 역할을 하기는 지형적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또한 콘월 백작이 상주하는 성도 아니었다. 오로지 지배층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세워진 틴타겔 성은 콘월 지역의 통합과 왕권 혹은 콘월 백작의 입지 강화라는 자신의 목적을 잘 수행했다고 한다.


kdnza7fp.jpg < 선택받은 왕의 상징,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 (출처: 구글 이미지) >


그러나 긴 세월이 지난 현재의 우리가 만나는 틴타겔 성의 모습은 영국인들에게 통합된 브리튼의 정체성과 기원을 상징하는 ‘아성왕’의 존재감과는 거리가 먼, 흔적만 남은 황량한 폐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설에 힘 입어서라도 왕권을 강화하고 싶었던 잉글랜드의 노르만 왕가는 이후 점차 강력한 왕권을 확립해갔고, 웨일즈(13세기)와 스코틀랜드(18세기)를 통합하며 ‘아서왕’처럼 충분히 강한 왕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한편, 사회는 전설과 마법 등의 신비로운 힘을 믿던 중세시대를 벗어나 계몽주의와 고전주의에 의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분위기로 변해 갔으며, ‘아서왕 전설, 틴타겔, 마법사 멀린’ 같은 존재는 미신적 유물로 취급되었다. 더 이상의 ‘아서왕’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에 비합리적이고 미개한 중세의 유산이자 (방어나 거주 등) 실질적인 유용성이 없는 틴타겔 성은 자연스레 효용을 잃고 방치되었다고 한다.


또 다시 시간이 흘러 19세기. 지나친 이성의 강조에 반발하여 ‘낭만주의’가 도래하면서 중세의 유산들이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다. 이에 아서왕의 전설과 함께 틴타겔 성도 주목받게 되었지만 콘월의 해안 절벽에서 소금기 가득한 거친 해풍을 아무런 보호 없이 고스란히 맞은 틴타겔 성은 이미 허물어지고 난 뒤였다.

그러나 낭만주의 새대는 무엇이든 낭만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해안 절벽 위의 무너진 틴타겔 성은 오히려 ‘낭만적인 폐허’로 인상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J.M.W. Turner)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의 시와 화폭에 담겼다. 또한 고고학자들의 연구도 이어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틴타겔 성은 현재 영국의 역사적 유산을 보존하는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에 의해 잘 관리되고 있다.

이렇게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틴타겔 성은 낭만주의 시대가 끝난 지금도 많은 여행자들에게 무너진 성벽 너머 아서왕의 전설을 품은 신비롭고 매력적인 장소로 각광받으며 콘월의 대표 여행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dp-507080-16.jpg < 윌리엄 터너(J.M.W. Turner)의 Tintagel Castle (1815) (출처 : MFABoston) >
H0061-L206292433_original.jpg 윌리엄 트로스트 리차즈(William Trost Richards)의 King Arthur's Castle, Tintagel (출처 : Artnet) >
테니슨책.png < 낭만주의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이 쓴 책 >


본격적인 ‘틴타겔 성’ 여행기에 앞서 사전 설명이 퍽 장황하다. 이렇게 긴 설명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틴타겔 성이 가진 상징이 거대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보여줄, 직접 방문해서 마주한 틴타겔 성의 장면들이 다소 황량하고 허전하기 때문이다.

틴타겔 성이 왜 황량하고 허전한 폐허로 남았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하였으니 부탁컨대 ‘전설의 성이라더니 이렇게 볼 게 없어?’ 라는 시선 대신 콘월의 바다 끝, 해안 절벽에 놓인 틴타겔 성의 무너진 성벽과 흔적들 위로 ‘아서왕의 전설’과 중세시대 잉글랜드 왕가의 정치적 간절함을 켜켜이 쌓아주길 바란다.






틴타겔 성이 있는 틴타겔(Tintagel) 마을에 입성!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본래 이 마을의 이름은 틴타겔이 아니라 트레베나(Trevena)였다고 한다. 그러나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틴타겔 성’을 향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마을 이름을 ‘틴타겔 성’에서 따서 ‘틴타겔’로 통일하였다고.


KakaoTalk_20250822_175012604.jpg < 틴타겔 성이 있는 틴타겔 마을 거리 풍경 >


마을의 이름까지 바꾸어 버린 신성한 왕의 성 ‘틴타겔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틴타겔 마을 공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해안 절벽으로 이어지는 긴 길(약 600m)을 걸어야 했다.

초록의 풀과 서걱거리는 흙, 그리고 멀리 보이는 바다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길을 걸어 ‘전설의 성’으로 향하는 기분이 현실이 아닌 듯 기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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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822_175031363.jpg < 전설의 성에 닿기 위해서는 긴 흙길을 걸어야 한다 >


무너진 성벽이 점차 가까이 보이고, 마침내 틴타겔 성에 도착했다.

틴타겔 성은 본터와 바위섬, 두 개의 절벽 위에 걸쳐 있었는데 틴타겔 성 탐험은 성문을 지나, 이 두 절벽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Tintagel Castle Footbridge)를 건너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KakaoTalk_20250819_221708534_04.jpg < 본토와 바위섬을 연결하는, '최신식' 틴타겔 성 다리 >
KakaoTalk_20250903_181258026.jpg <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다리 >


이 보행자 다리가 설치되기 전에는 좁고 가파른 오르막길과 계단을 통해 틴타겔 성의 양쪽 절벽 사이의 협곡 아래를 오르내리며 이동해야 했는데(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다리 아래쪽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계단을 말한다.), 날씨가 나쁘거나 바람이 강한 날에는 위험해서 접근이 제한되고 노약자나 어린이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문제 등으로 불편함이 있었다고 한다. 절벽 사이를 잇는 넓고 긴 다리가 근사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이 틴타겔 성을 방문했다가 자연의 변덕으로 입성을 거부당했을 수도 있다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커졌다. (영국 날씨의 변덕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실제로 다리를 설치한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틴타겔 성을 방문한다고.


KakaoTalk_20250903_123549319.jpg <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의 틴타겔 성 다리 >


틴타겔 성의 안전과 인기를 수호하는 다리가 견고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높은 절벽 사이를 걷는 것은 조금은 긴장되는 일이었다. 중간 지지대도 없이 반대편까지 이어지는 긴 다리와 사방으로 트인 시야 때문에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팽팽하게 잘 묶인 다리가 사람들의 진동과 바람, 그리고 나의 긴장으로 미세하게 출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떨림인듯, 설렘인듯 싫지만은 않았다. 다리일 수도 있고 내 기분일 수도 있는 그 미세한 느낌이 틴타겔 성을 걷는 이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50903_123939876.jpg < 미세한 떨림이 싫지만은 않은 틴타겔 성 다리 위에서 >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틴타겔 성의 풍경은 더욱 특별했다. ‘아서왕’이라는 전설이 아니라도 충분히 사람들을 부를 극적인 콘월의 자연 풍광이 뜨거운 태양 아래 넘실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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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819_221708534_14.jpg < 다리 위에서 볼 수 있는 좌/우 풍경 >


다리를 건너자 한때는 견고한 벽이었을, 그러나 이제는 무너진 성벽이 방문자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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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진 틴타겔 성의 잔흔들 >


틴타겔 성의 성벽은 이전까지 영국의 다른 지역에서 봐온 묵직하고 두꺼운 성벽과 달랐다. 얇고 납작한 돌들을 켜켜이 쌓아 올린 형태의 틴타겔 성벽은 무너졌다기보다 바람에 아스라이 흩어진 듯 위태롭고 유약해 보였다. 찢어진 종이의 경계처럼 불규칙하게 오돌토돌한 무너진 성벽의 경계면은 마치 오래전 ‘아발론’으로 사라진 ‘아서왕’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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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903_130048432.jpg < 영국의 다른 성벽들과 달리 얇고 납작한 돌들로 쌓은 틴타겔 성의 성벽 >


틴타겔 성의 벽이 이런 모습인 것은 틴타겔 성이 콘월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천연 슬레이트를 이용해 얇고 평평한 돌을 켜켜이 쌓아올려 지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앞서 포트 아이작의 주택 특징을 설명할 때도 언급된 ‘천연 슬레이트’는 풍화와 부식에 강하고 콘월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좋은 석재다.

그러나 방어용이 아닌 정치적 목적을 위해 탄생한 틴타겔 성은 그 돌들을 단단한 회반죽 등의 접착재료 없이 단순히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치적 쓸모가 없어진 14세기 이후 버려지고 잊혀진 성은 19세기 낭만주의가 이곳을 다시 건져올릴 때까지 수백 년간 해풍과 비, 염분에 방치되어 빠르게 붕괴되었다.

애초에 잠깐의 목적을 위해 가볍게 지어진 성. 그러나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수백 년을 홀로 견뎌 콘월의 해안 절벽 끝에 앙상한 흔적으로 매달려 있는 성. 이제 다시 고대 전설의 유적으로, 심지어 그 무너진 모습마저 신비롭게 추앙받고 있으니 지난 잊혀진 세월을 보상받고 있다 보아야 할까? 어쩐지 쓰고 버려진 종이컵처럼 틴타겔 성의 운명이 가련해 보여 자꾸만 무너진 성벽을 돌아보았다.


KakaoTalk_20250903_125425802.jpg < 틴타겔 성벽은 어쩐지 가련하고 애잔했다 >


이후의 공간들은 얼핏 보면 흔한 ‘콘월의 근사한 해안 절벽’일 뿐 특별한 공간인지도 모를 정도로 허허벌판인 해안가 언덕이었다. 물론 열심히 사전 공부를 하고 갔다면(공식 가이드 투어는 없다) 성터 곳곳의 남다른 의미를 알 수도 있었겠으나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은 우리는 입구에서 얻은 안내문을 참고해가며 이 아서왕의 공간을 직관적으로 느꼈다. (그냥 둘러봤다는 소리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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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에서 받은 가이드맵과 함께 둘러본 틴타겔 성의 이곳저곳 >


대서양으로 뻗어나가는 콘월의 바다를 등지고 터만 남은 틴타겔 성을 여전히 지배하고 서 있는 아서왕이 보였다.


KakaoTalk_20250903_131101149.jpg <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틴타겔 성을 지배하는 아서왕 >


그런데 이.럴.수.가, 가까이 다가가 확인한 동상은 아서왕이 아니었다. (웁스!)

콘월어로 ‘권력’을 뜻하는 ‘갈로스(Gallos)’라는 이름의 조각상은 성 입구의 다리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최근(2016년)에 세워진 것으로, 아서왕을 포함해 이 틴타겔 성이 품은 전설적·역사적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상징화한 예술 작품이라고 한다. 흠... 이 조각상을 기획하고, 주조하고, ‘갈로스’라는 이름을 짓기까지 치열한 고민과 토론이 있었겠으나, 누가 봐도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를 들고 있는 아서왕이라고 생각할 이 동상을 나는 그냥 아서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잉글리시 헤리티지, 쏴리!)

그리고 이름이 무엇이었건 황량한 성터에 세워진 조각상 덕분에 전설은 풍부해지고, 틴타겔 성의 풍경은 더욱 근사해졌다.


KakaoTalk_20250903_131512659.jpg < 콘월의 바다를 등지고 더욱 풍성해진 틴타겔 성의 전설 >


성터를 둘러본 뒤에는 더욱 신비롭고 마법 같은 곳으로 깊이 들어갈 차례였다.

본터와 바위섬 절벽을 잇는 다리가 놓이기 전, 불편하고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렸다는 계단 중 일부 구간은 여전히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그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틴타겔 성이 있는 절벽 아래, ‘숨겨진 동굴’에 닿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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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903_131831008_09.jpg < 틴타겔 성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


이 ‘숨겨진 동굴’ 썰물일 때에만 진입이 가능했는데, 운이 좋게도 마침 우리가 틴타겔 성을 찾은 시간이 동굴바닥에 바닷물이 찰박찰박 찰랑이는 썰물 시기였다. 틴타겔로 오기 직전, 바닷물이 밖으로 다 빠져나간 포트 아이작의 마른 항구 앞에서 ‘아... 하필 썰물’이라고 원망했던 마음이 여기 틴타겔 성으로 오자마자 ‘오! 마침 썰물’이라는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포트 아이작에서 틴타겔 성으로 오면서 이 부분을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완벽한 일정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불현듯 오는 행운은 두 배로 반갑다.


KakaoTalk_20250903_171634464.jpg < 틴타겔 성 절벽 아래에 숨겨진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


수천 년의 시간과 바닷물이 함께 빚어낸 천연 동굴의 이름은 ‘멀린의 동굴(Merlin’s Cave)’이었다. 앞서 틴타겔이 아서왕의 탄생지라는 설명을 하며 언급한 ‘멀린’을 기억하는지. 멀린은 아서왕의 탄생부터 왕이 되기까지 곁에서 조력자 역할을 한 마법사의 이름이다. 아기(아서왕)가 바다에서 밀려와 마법사 멀린이 절벽 아래 이 동굴에서 아이를 데려왔다는 데서 비롯된 ‘멀린의 동굴’. 그러나 이 동굴은 아서왕의 오래된 전설에 필수 요소로 등장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 영국의 시인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이 틴타겔 성을 방문한 이후 틴타겔의 풍경과 전설에 영감을 얻어 아서왕의 전설을 담은 서사시 《Idylls of the King》을 썼다(앞서 낭만주의 시대 예술작품 사진들 중 마지막 사진). 테니슨은 그 시에서 ‘멀린의 동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 이후 이 틴타겔 성 절벽 아래의 동굴은 ‘멀린의 동굴’로 불리게 되었고, 현재는 거의 공식 이름이 되었다. 정말 낭만주의 시대가 아니었으면 이 틴타겔 성은 어찌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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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819_221708534_01.jpg < 멀린의 동굴 내부 >


동굴 안으로 조심조심 들어섰다. 동굴 바닥에는 바닷물이 얕지만 거칠게 철썩이고 있었다. 절벽 아래에 동그랗게 뚫린 ‘멀린의 동굴’ 안에서는 작은 파도 소리도 크게 울렸다. 우리가 동굴 입구에 서 있음에도 오히려 동굴 저편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눈이 부셨다. 동굴 안으로 밀려드는 파도, 메아리치듯 울리는 소리, 환한 빛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동굴이니 소리가 울리는 것은 당연하고, 이 동굴이 절벽 아래를 완전히 관통하는 형태의 해식 동굴이기에 저편에서 들어오는 파도와 빛 또한 모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 공간에서 특별한 기묘함을 느끼는 것이 ‘마법사의 동굴’, ‘전설’의 힘이었다.


KakaoTalk_20250903_131831008_19.jpg < 보통때와 똑같이 찍었는데 나중에 사진첩을 보니 이런 사진이... 혹시 마법의 기운? 하하. >


동굴 옆에는 작은 자갈 해변도 있었다. 밀물이 깊이 들어오면 거의 대부분이 잠기는 해변에는 우리처럼 썰물 때를 잘 맞춘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아서왕의 전설 안에서 즐기는 해수욕이라니, 어쩐지 더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아, 낭만주의여!)


KakaoTalk_20250903_175917384.jpg < 멀린의 동굴 앞 아서의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


특히, 바다 가운데 있는 돌을 향해 헤엄을 쳐 다이빙을 하는 아이들에게서는 풋풋함과 청량함, 그리고 대담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멀린에 의해 일반 가정에 맡겨져 자신의 신분도 모른 채 지냈던 어린 아서도 이렇게 콘월의 바다를 용감하게 헤엄치며 유년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KakaoTalk_20250903_175648170.jpg < 아서왕의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는 용감한 아이들 >


바다를 본 아이들은,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는 해변에 선 아이들은 이번에도 슬금슬금 바다를 향해 발을 뻗었다. 해수욕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인 줄은 정말로 예상을 못해 이번에는 내 가방에도 여벌 옷이 없었지만 나는 또 남편의 걱정을 모른 척하고 바다에 발 담그는 것을 윤허하였다. 우리가 언제 또 틴타겔로 와서 ‘아서의 바다’에 발을 담그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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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얕은 해변가에 서서 발로 물장난을 치는 정도로도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진 듯 신난 아이들을 바라보며, 문득 아서의 푸른 바다 빛에 물든 발처럼 내 아이들의 마음도 아서왕 같은 담대함으로 물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콘월에서 보낸 여러 날의 잊지 못할 여름이 이렇게 마무리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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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빼고 영국 여행] 영국 잉글랜드 콘월

전설의 시작, 아서왕의 탄생지 ‘틴타겔 성’ _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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