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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치 Apr 23. 2020

나의 북유럽 여행기

히피하피소셜 클럽 세번째 글쓰기 


시벨리우스 공원에 가는 길이었다. 여행만 가면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워진다. 엄청나게 헤맸다는 이야기다. 헤매는 길에 포착하는 순간들을 좋아한다. 마침 햇볕이 가득한 공원을 지나게 되었다. 키가 큰 나무 사이로 햇빛이 성큼 성큼 크게 갈라져서 들어왔다. 큰 나무에 지지 않으려고 다리를 쫙쫙 벌려 크게 걸었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져서 그냥 앞에 보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무민 장난감이 천장에 둥실둥실 달린 도서관이었다. 핀란드는 어떤 구획으로 지역을 나누어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혹시 우리나라처럼 구민만, 동민만 쓰는 도서관일까 봐 살금살금 들어갔다. 요의를 해결하고 나니 태평함이 찾아들어서 조금 대범하게 도서관을 구경했다. 백야가 있는 나라여선지, 어느 건물이든 햇볕이 예쁘게 들어오게 설계되어 있었다. 편안한 의자와 아름다운 조명 기구에 둘러 싸여 있는 공간. 게다가 책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뭐 하나 잡고 슬렁거리며 읽고 싶었지만, 핀란드어를 몰라서 포기했다. 한참을 앉아서 창밖 공원을 지켜봤는데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나무를 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시벨리우스 공원에는 악기를 형상화 한 구조물이 있었다. 구조물에 얼굴을 넣었다가 뺐다가 하며 신나게 놀고 있는 여자아이와 눈을 맞추고 웃어주었다. 조금 걸어서 이름 모를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가에 오래 앉아 있었다. 해가 천천히 지고 있었다.


밤사이엔 바다를 가로질러 스웨덴에 도착했다. 커다란 배가 복잡한 해안선을 헤치고 나아가는 게 이렇게 짜릿한 일인 줄 몰랐다. 아직 5월이라 추운 계절이었고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데크에 서서 오래도록 바람과 바닷새, 육지와 해안이 맞닿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끔은 조그만 마을도 나오고, 누군가가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즐겨 보는 판타지 드라마에서 배를 타고 7 왕국을 찾아가는 마음이 이런 걸까? 뒷짐 지고 서서 내 앞의 풍경이 휙휙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다.

스톡홀름은 헬싱키보다 전체적으로 사람이 많았고, 훨씬 생기가 넘쳤다. 봄꽃이 피어났고 이 날씨만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가 뛰쳐나와 여기저기 드러누워 있었다. 호스텔에 체크인하는데, ‘봄의 첫날에 온 것을 환영해’라는 말을 들었고, 충동적으로 자전거 3일권을 빌렸다. 나는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한다. 스웨덴의 공공 자전거인 시티바이크는 서울의 따릉이보다 무겁고 컸다. 반납할 때는 꽤 높이 들어 올려 어딘가에 끼와 넣어야 되는 구조인데 그럴 때마다 손목에 안녕을 고하는 느낌이었다. 다리도 길고 힘도 센 사람들 같으니. 오기가 나서, 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 여행에서 이상한 오기를 갖게 되면 레벨업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믿고 있다) 무슨 말이냐면 스웨덴 여행을 끝내고나니 자전거가 두렵지 않아졌다는 이야기다. 사실 아직 조금 무섭긴 하다. 자전거랑 점점 친해지면서, 우연히 찾았다가 단골 코스가 된 해안가 자전거 도로가 생겼다. 그 도로를 부드럽게 커브 돌며 일몰을 바라보는 게 좋아서 똑같은 코스를 며칠이나 반복했다. 부드럽게 커브를 돌 수 있게 된 것도, 아름다운 길을 내 손으로 굴리며 달릴 수 있는 감각이 사랑스러웠다.

스톡홀름을 떠나기 전날 우연히 공동묘지에서 쉬어갈 일이 있었다. 주택과 도심 한가운데 갑자기 세상에서 제일 평화로운 공간에 불시착한 느낌이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혹여나 위험한 일이 일어나도, 오늘 누구든 이곳에 일찍 오지는 않기를 순간적으로 빌었다. 해 질 녘이라 햇살이 공기처럼 은은하게 묘지를 감쌌고, 묘비를 하나씩 찬찬히 바라보다가 알 길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마음들이 느껴져서 슬퍼졌다. 형형색색의 장난감으로 꾸며진 몇 개의 묘는, 짧은 생을 살다간 아이들의 자리였다. 잘은 모르지만 좋아하는 것으로 꼼꼼히 채워주려한 노력이 느껴져서 오래도록 발을 뗄 수가 없었다. 한참 묘비를 바라보다 벤치에 앉았는데 어느 노신사가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봐서 짧게 대화했다. 자기는 바로 요 앞에 산다고 했다. 지난 45년간 바로 옆의 지구에 있는 콘서트홀에서 일을 했다고 했다. 나는 고작 5년째 일하다가 지쳐서 여행을 왔다고 하니까, 아직 많은 날이 남았네, 라고 해주었다. 그러게요 할아버지, 아직 많은 날이 남았어요. 아직 지칠 때가 아닌가요. 한켠에 밀쳐두고 온 한국의 일상이 너울거리며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소중한 사람들과 이런 조용한 날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스톡홀름에서 헬싱키로 돌아왔다. 애초에 심심한 도시에서 오래도록 넋 놓고 싶어서 온 여행이었다. 활기찬 도시에서의 며칠도 좋았지만,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아직 나의 생엔 많은 날이 남았지만, 여행의 감각들로 채워질 날들도 많이 남았다는 게 위안이 되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밤이 오지 않았다. 백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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