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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금비 Oct 06. 2023

날 무너뜨린 교수님의 한 마디

뿌연 회색 안갯속 운전대만 꽉 잡고

마치 7명의 위대한 아티스트 작품을
보는 듯하는구나…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하는 모든 것에 더 이상 자신이 없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카멜레온 같은 다채로움 그 자체가 내 정체성이며, 회색이라는 매우 넓은 색조의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뒹구는 변화무쌍한 나를 인정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러한 속성 덕분에 다양한 일을 한 번에 해나갈 수 있고, 그 안에서 시너지를 일으키는 신선한 기획도 가능하다.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된 나만의 것을 찾아다니는 습관 때문인지 외부의 것으로부터 얻은 영감과 인사이트를 독창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응용력도 늘었다. ‘복사는 창의적인 핵심의 과정이다.’, ‘창조는 편집에서 나온다.’와 같은 구절 등에 격한 공감을 해나가면서.



휴스턴 대학교에서 랭귀지 스쿨(어학당)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전공을 위한 대학 지원 전, 필수 과목을 듣기 위해 휴스턴 커뮤니티 컬리지(HCC)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꼭 들어야 하는 영어, 역사, 수학, 생물 등 앉아서 ‘공부’를 해야 하는 과목 사이에서 나에게 미술 수업은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었다. 특히 고등학교 3년간 미대 준비를 했던 나는 드로잉, 페인팅, 공예, 디지털 아트 수업은 놀러 가듯 즐겁게 들었고 좋은 성적을 받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누드모델을 앞에 두고 목탄을 활용해 크로키 드로잉을 하거나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리는 등의 [라이프 드로잉 수업]을 들을 때였다. 매시간 늘 “Amazing!” “Fantastic!” 등의 칭찬을 받은 나는 열댓 명 사이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통했다.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왔다. 두 달 동안 그린 그림들 중 7개를 골라 교수님으로부터 1:1 평가를 받는 방식이었는데, 나는 지금까지 그려낸 수십 개의 그림들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갖거나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스타일의 그림들을 선별했다.


2011. 05. 06. 내 그림을 함께 골라주던 고마운 반 친구들


7개의 도화지를 손에 쥐고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면담시간에 맞춰 스튜디오에 입장했다.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인자한 교수님의 표정을 보니 긴장된 마음은 그새 사라지고 자신감 있게 7개의 작품을 바닥에 펼쳐냈다.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나의 작품들을 진지하게 감상하시는 교수님을 보면서 아마 난 속으로 ‘교수님께서 꽤나 감명을 받으셨군,’하며 여유를 부렸던 것 같다.


"아주 훌륭해."


교수님의 한마디에 나도 그제야 안심하며 미소를 보였다. 교수님께서는 곧 나를 쳐다보시더니 이어 말씀하셨다.


"마치 7명의 위대한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보는 듯하는구나."

"…"


스튜디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내 머릿속에선 한동안 저 말이 무슨 말인지 온갖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었다. 저게 칭찬이 맞나? 내가 지금 영어를 못 알아듣고 있는 건가?


“…어… 음… 교수님,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혼란스러운 얼굴을 한 나를 다시 빤히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내 말은, 내 눈앞에 지금 7명의 각각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이야.”


여유 있던 미소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내 눈동자는 마치 쥐구멍을 찾듯 흔들렸다. 당황스러움과 서러움이 뒤섞인 혼돈이 뒤따라왔다. ‘너만의 색깔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을 돌려 말씀한 교수님의 한 줄 평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잘’만 그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손에 지문이 사라지면서까지 열심히 했던 입시 미술이 떠오른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는 ‘잘’ 그리는 법만 배웠다. 4절지 도화지 안에 그려질 구성, 색깔, 묘사 디테일, 기교, 조화의 정도 모두 정해진 ‘답’이 있었다. 학원뿐만 아니라 학교 시험에서도 늘 ‘정답’이 있지 않았는가. 나는 그 정답을 찾아간 것뿐이었고, 정답을 맞히면 나는 좋은 점수라는 상을 받아왔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봐도 ‘잘’ 그린 그림을 그린 것뿐이었다. 그게 피카소 화법이던, 고흐 화법이던 ‘잘’만 그리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때부터였을까. 더 이상 내가 하는 모든 것에 자신이 없었다. 여기 가면 이렇게 바뀌고 저기 가면 저렇게 바뀌는 나는 선천적으로 카피를 잘하는 센스를 지녔다. 모창도 잘하고 모작도 잘한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그 스타일을 그대로 내 것으로 고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좋게 말하면 적응력이 뛰어난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다. 어딜 가든 중간 이상은 가게 도와주던 이 대단한 능력은 이제 저주스럽고 숨기고 싶은 치부가 되었다.


어떤 색깔이던 모두 그려낼 수 있던 나는 결국 빨주노초파남보가 마구 뒤엉켜 무슨 색인지도 모를 애매모호한 색이라는 것. 검정과 흰색 그 어딘가에 위치한 수많은 색조 중에 어떤 회색인지 정의 내리기도 힘든 난해하고 우중충한 회색이라는 것. 결국 내 것이 없다는 것. 내가 비어있다는 것.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뿌연 안개가 뒤덮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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