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6-7일, @남이섬
브런치에는 처음 올려보는 캠핑 일지. 앞으로 캠핑을 다녀온 다음날은 캠핑 일지를 써 보겠다. 올 가을은 여러 가지로 바빴던 나머지, S와 나는 캠핑을 많이 다니지 못했다. 바쁘더라도 꼭 짬 내서 다녀오자는 다짐으로 두 달 전쯤 미리 예약해둔 남이섬 트래킹온아일랜드는 다행히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나의 두 번째 백패킹이자, 우리의 장비를 가지고 떠난 첫 번째 백패킹. 이번 글은 캠핑을 완성해준 아이템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여정을 기록해본다.
그동안은 오토캠핑을 다녔던지라, 별생각 없이 물건들을 차 트렁크에 채워 넣곤 했다. 하지만 백패킹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백패킹은 이동수단이 나의 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존에 필요한 모든 아이템들은 가방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며, 가벼워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남이섬 트레킹온 아일랜드는 선착장에서부터 사이트까지 약 600m를 걸어야 한다. 만약 차 없이 뚜벅이로 오는 상황이라면 가평역에서부터 선착장까지 추가로 2200m를 걷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버스 간격이 70분이다.) 나와 S는 무료주차를 할 수 있는 가평역에 차를 대고, 무작정 목적지까지 3km를 걸어야 했다.
00 가방류 : 40L-70L 백패킹용 가방 / 트롤리 혹은 카트
전날 같이 막걸리 5병씩 마시고 비실비실한 상태로 뒤늦게 출발한 우리는, 해 지기 전에 피칭을 완료하겠다는 일념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가평역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짐을 내렸다. 무거운 가방을 들쳐 멘 뒤, 어깨끈을 조이고, 요추 부분에 잠금장치를 체결했다. 가방이 내 몸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손으로 들어 올리기엔 버거운 가방이 일시에 거뜬해지는 마법. 내가 가진 40L짜리 작은 백패킹 가방은 초등학생 때 구입한 가방이다. 군데군데 터진 부분이 있지만, 아직까지 제 역할을 하는 든든한 물건이다. 이외에 마트에서 봐온 먹을거리들은 공간이 부족해 손으로 끌 수 있는 카트에 담았다.
도착한 남이섬은 노랗고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남이섬은 '남이나라공화국'에 여권을 발급받아 들어가는 독특한 컨셉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면 더욱 낯선 판타지가 느껴지는 것 같다. 마치 무릉도원 같은 그런 분위기다. 오랜 세월 자라온 나무들이 시원하게 쭉쭉 뻗어 있었고, 다양한 수종만큼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글바글한 인파 가운데서도 캠핑사이트만큼은 가이드로 둘러쳐져 있어 한적했다. 어쩐지 우쭐해진 느낌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미리 와 있던 일행을 만났다.
01 잠자리 : 텐트(Snowpeak Amenity Dome M) / 자충매트(Seattosummit) + 커플러 / 침낭(Minimal Works Camelleon 500) + 핫팩(방석) + 극세사담요 / 자충배게(Sparrow) / 랜턴(Bearbones mini Edison Lamp)
캠핑 사이트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텐트를 치는 것! 밥을 먹고 놀다 보면 금세 피곤해지기 때문에,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텐트를 칠 때는 꼭 잠자리도 함께 세팅을 해둔다. 빠르게 그라운드시트를 깔고, 텐트를 친 뒤, 자충매트에 공기가 들어가도록 한다. 이때 자충매트를 커플러로 묶어두면 잘 때 매트 사이로 빠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 위 침낭과 베개를 세팅하고, 천장에 랜턴을 켜서 매달아 주면 끝. 바깥에 나와서 보면 아늑한 텐풍 완성이다.
보완할 점은, 생각보다 침낭의 단열 성능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필파워 500으로는 밤새 5도에 가까운 날씨를 핫팩과 옷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다른 부분은 괜찮았지만 코와 발이 시렸다.) 다음번엔 침낭의 컴포트 온도를 높여줄 라이너를 탑재하고, 배 위에 얹고 잘 유단포를 가져가야겠다. 또 가방의 여유 공간이 된다면, 침낭과 자충매트 사이를 얇은 이불로 덧대면 미끄러지지도 않고, 더 따뜻하게 잘 수 있지 않을까 싶다.
02 식사
테이블(Helinox) / 의자(Helinox Chair One) / 리액터(Kovea) / 수저세트 / 시에라컵 / 텀블러 / 랜턴 + 랜턴용 삼각대(Claymore)/ 저녁 및 아침식사
흙바닥에서 밥을 먹을 수는 없는 법.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는 역시 헬리녹스다. 헬리녹스의 다른 아이템도 구하고 싶지만 올 한 해는 내내 인기 있는 컬러들이 품귀 상태였다 ㅠㅠ. 내년엔 공급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백패킹에 알맞은 조리기구가 없어, 이 장비들은 모두 B에게서 빌렸다. 백배킹의 열원은 이소가스 한 가지다. 이소가스에 리액터를 연결해 밥을 지어먹고, 후식 커피를 끓여먹었다. 두런두런 떠들 때는 틀어놓기만 해도 따뜻했다. 시에라컵은 국/밥그릇으로도 쓸 수 있고, 막걸리잔이나 커피잔으로 쓸 수도 있다. 넓적하면서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은 포개두기도 좋아 좁은 테이블 공간을 여유 있게 쓸 수 있게 해주는 굿 아이템이라는 걸 알았다. 이것도 위시리스트에 추가!
나와 S는 슴슴한 맛으로 해장을 하기 위해 반조리 곰탕과 햇반을 가져왔다. 입구를 찢어 냄비에 졸졸졸 따르는데, 어라,, 뭔가 이상하다. 떠먹어보니 이건 육수였다. 살짝 멘붕이 왔지만, 육수에 신라면을 끓여먹으면 어떻겠냐는 Y의 기똥찬 제안에 '옳거니!' 하며 프리미엄 신라면 블랙을 만들어먹었다. 다른 친구들과 또 캠핑을 가게 되면 아침에 대접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프리미엄 신라면 블랙과 가평의 명물인 닭갈비를 야무지게 먹고, 또 우동사리까지 알차게 말아먹었다. 후식으론 달고나까지.
보완할 점 : 다음번엔 히터캡을 사야겠다. 리액터만 켜 두는 것은 열효율이 너무 떨어진다. 다음번엔 시에라컵, 리액터, 코펠 모두 자가 용품으로 가고 싶다는 점.
03 위생용품
일회용칫솔(콜게이트) / 일회용 타월(무버 타월) / 로션+크림 / 선크림+파운데이션+브로우 카라+립글로스
해가 떨어진 남이섬의 밤은 겨울이었다. 손에 물이 묻으면 더 추워지기 때문에 가급적 씻는 과정과 시간을 단축하고 싶었다. 일회용 무버 타월(얼굴용 물티슈같은 것)로 세수하고 발을 닦았다. 텐트 안에서 간편하게 뽀송해질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 따로 쟁여두고 있다. 일회용 칫솔은 이번에 처음 써봤는데, 치약이 고체형태로 칫솔에 박혀있다. 조그만 칫솔 머리로 꼼꼼히 입안을 닦고 가글로 헹궈내기만 하면 되는 식이다. 재빨리 씻고 핫팩이 데워져 있는 침낭으로 쏙 숨으면 잘 준비 끝!
04 의류
위아래 히트텍 / 청바지 / 맨투맨 / 후드플리스 / 패딩조끼 / 잠옷바지 / 수면양말 / 스니커즈
한정된 가방의 용량, 여기에서 가장 많은 부피를 할애한 부분은 단연 잠자리 아이템들이다. 원체 침낭이나 매트의 크기가 큰 것도 있지만, 안락하고 따뜻한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선 부수적인 아이템이 많이 필요해진다. 이번 백패킹에는 상하의 히트텍을 챙겨 입고, 후드 달린 플리스 재킷으로 무장한 뒤 침낭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방석 핫팩과 일반 핫팩, 그리고 극세사 담요로 부족한 온기를 채워갔다. 나는 아직 초보라 잡다한 아이템들로 덕지덕지 단열을 하지만, 백패킹에 제대로 투자한 고수들은 필파워 짱짱한 고가의 침낭 하나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한다.
나는 비교적 옷을 많이 껴입은 덕에 따뜻하게 잘 수 있었지만, S는 그러지 못해서 힘든 밤을 보낸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무도 없는 조용한 남이섬을 놓쳐선 안된다며 주섬주섬 외투를 주워 입고 텐트 밖으로 나섰다. 강 한가운데 있는 섬이라 오전엔 안개가 자욱하다. 파란 하늘 아래서 보던 단풍이 아니라, 안갯속에서 보는 단풍은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한 발짜국 걸을 때마다 찍고, 걷고 찍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오전 8시. 섬 밖으로부터 관광객을 실은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이 많아지기 전에 더욱 이 시간을 즐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곤 또다시 파워 워킹. 사실 이제부턴 캠핑을 다녀온 후로는 포스팅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아이폰 12 PRO로 폰을 바꿨다. 이전 핸드폰보다 향상된 화질과 색감이 다시 봐도 만족스럽다 ㅎㅎ.
남이섬은 전통(?)적인 요소들로 꾸며져 있는데, 화려한 가을 단풍과 함께 있으니 무릉도원이었다. 정말 메이플스토리 무릉도원 맵에 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남이섬 트래킹 온아 일랜 드는 항상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 오픈 이기었기 때문에 더 특별했다. S와 꼭 다시 오길 다짐하며, 아래 잘 찍은 사진 몇 장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