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어릴 때부터 부러워하던 유형의 사람들은 한 영역에 대한 컬렉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어떤 종류든 덕질의 흔적이 농밀하게 묻어난 컬렉션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했다. 그렇게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모습에 대해 부모님은 '돈만 있음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어'라고 하셨다. 하지만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컬렉터의 삶을 동경하며 지금껏 다양한 종류의 소비를 해봤지만 무엇도 컬렉션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아마 지금 나이대에 1000만 원을 주고 사고 싶은 걸 사라고 해도 컬렉션을 만들진 못할 것 같다. 수집이란 가치관이자 선택하는 힘인 것 같다. 가령 이런 것이다 :
2005 ~ 2007년 무렵의 밀라노, 사춘기 학생들의 마음을 휩쓴 아이템은 단연 위니더푸 고무 키링이었다. 웬만한 쇼핑몰 1층 키즈코너에는 곰돌이 푸 키링 자판기가 있었는데, 자판기에 2유로 동전을 넣으면 랜덤으로 키링이 나왔다. 손톱 1.5배 크기의 곰돌이 푸 플라스틱 몸에는 다양한 테마의 고무 옷을 입힐 수 있었다. 푸 키링은 대 유행이었기 때문에 나도 그 기류에 편승하고자 용돈을 쪼개 자판기 대열에 합류했다.
나의 푸 컬렉션은 15개 남짓한 규모였다. 아무리 돌려도 나오는건 흔해 빠진 코스튬이었다. 같은 반에는 키링 50개를 가방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친구 킴벌리가 있었다. 물론 그녀도 중복되는 아이템이 많았다. 반복된 뽑기 실패로 키링에 대한 내 관심이 줄어들수록, 킴벌리의 컬렉션은 점점 더 방대해지고 다각화되었다. 그녀는 근성을 가지고 뽑기에 정진했다.
어느 순간 킴벌리는 교내에서 일반 키링 5개를 희귀 키링 1개로 교환하는 거래를 활성화시키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키링에 환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도 다시 거래에 참여했다. 원하는 키링을 거래하려면 처음 보는 친구에게도 말을 걸어야 했는데, 나는 말이 서툴러 자꾸 쪼그라들곤 했다. 그렇게 나의 관심은 다음 유행템인 다마고치로 넘어갔다.
그 킴벌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가장 많은 색상의 다마고치 마저 보유한 사람까지 되었다. 그녀는 단순히 용돈이 많았던 것일까? 그녀가 그렇게 유행을 선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외동딸인 그녀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님도 있었겠지만, 그녀가 푸 키링 30개를 다마고치 1개와 교환하는 새로운 통화체제를 빠르게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과거의 물량을 빠르게 털고 (가장 희귀한 푸 컬렉션만큼은 그녀의 가방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새로운 시대에도 유행의 주도자로 군림했다. 지금 생각하면 영리하고 눈치 빠르며 집요한 투자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투자 감각은 용돈의 적고 많음과는 무관한 역량이라는 생각이 든다(물론 시드머니는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나는 아직까지 소비를 통한 몰입감을 체험하지는 못했다. 한 종류의 물건이든 분야든 꾸준히 지속하는 끈기가 부족한 모양이다. 대신 한 달에 지출할 수 있는 자금 안에서 매일 맛있는 걸 먹기 위해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컬렉터라는 칭호는 그 대상이 물리적 실체일 경우에 해당되는 것일 때라고 생각한다. 부러워한 것은 결국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선택하고 집중하는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물건을 어마어마하게 소유한 것 자체가 부럽다기보다, 하나의 영역을 깊게 파고드는 선택력과 덕질력(?)을 언제나 동경한다.
P.S. 킴벌리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