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미술, 왜 다시 생각해야 하는가?
나는 손끝으로 세상을 감각하던 사람이었다.
찰진 흙의 무게를 견디며 뼈대를 세우고, 거친 표면을 다듬으며 ‘실체’를 만드는 일. 나에게 미술은 언제나 몸으로 하는 노동이었고, 공간 속에 존재하는 부피와 씨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흙더미와 땀으로 뒤엉킨 작업실에서, 나무의 결을 읽고 단단한 돌을 정으로 내리치며 형태를 찾아가던 시간은 내게 가장 생생한 배움이었다.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마음껏 구상하고, 틀려도 괜찮았고, 서툴면 서툰 대로 나를 드러낼 수 있었던 자유가 좋았다. 내 안에만 머물던 생각이 비로소 공간을 점유하는 조형물로 완성될 때의 감각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지금도 가끔은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가 문득 손톱 사이에 흙이 끼던 그 뜨거운 감각과,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자유를 떠올린다.
그런 내가 한동안 흙 대신 차가운 데이터를 만졌다.
AI가 도래한 시대, 이 거대한 변화가 도대체 무엇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데이터사이언스를 공부했다. 수학 기호와 알고리즘, 수치와 확률로 이루어진 세계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익숙한 재료 대신 숫자와 모델을 붙들고 씨름해야 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패턴을 읽어내는 법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그 치열한 논리의 시간을 지나며 내가 얻은 것은 뜻밖에도 더 분명한 확신이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미술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미술을 하던 사람이 왜 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했느냐고. 하지만 나에게 그 시간은 외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사랑해온 미술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탐구에 가까웠다. 데이터의 논리가 정교해질수록, 계산되지 않는 인간만의 감각과 숨결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였다. 기술이 할 수 있는 일과 인간이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 경계가 조금씩 또렷해졌다.
지금 나는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난다.
아이들은 태블릿을 꺼내 능숙하게 디지털 드로잉을 보여주고, 프롬프트 몇 줄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붓과 연필, 종이와 물감만이 미술의 전부였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아이들의 책상 위에는 매끈한 스크린이 놓여 있고, 이미지는 점점 더 빠르고 쉽게 생산된다. 그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한 가지 질문 앞에 오래 머물게 된다.
이 매끄러운 이미지 속에, 너 자신의 숨결은 어디에 담겨 있을까.
데이터사이언스의 세계에서 AI는 결국 가장 확률 높은 결과물을 찾아내는 정교한 계산에 가깝다. 물론 그것은 놀라운 기술이고, 분명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하지만 내가 배운 미술은 조금 달랐다. 미술은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결과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아무도 답이라 말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서툴고 비효율적이어도, 자기만의 감각과 망설임, 실패와 흔들림을 통과해 끝내 어떤 형상을 만들어내는 일. 내가 기억하는 미술은 늘 그런 모험에 가까웠다.
예술은 완벽한 계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흔적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손에 흙이 묻고, 마음이 흔들리고, 생각이 바뀌고, 처음의 계획이 무너지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더 자기다운 것이 드러난다. 아름다운 결과만이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망설임, 선택, 지워진 흔적과 다시 만든 표면까지 모두가 표현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미술은 단지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인간이 미술을 좋아할 것이라고 믿는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은 여전히 직접 그리고, 만들고, 만지고, 남기고 싶어 한다. 그것은 단순히 예쁜 이미지를 원해서가 아니다. 사람은 그 안에 담긴 마음의 결, 손의 떨림, 설명되지 않는 진심 같은 것을 감지한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인다. 어쩌면 우리는 결과물을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통과해 낸 흔적을 만나기 위해 예술을 찾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AI 시대일수록 미술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느낀다.
기술이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들수록, 우리는 오히려 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인간은 왜 여전히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싶어 하는가. 왜 빠르고 편리한 결과가 있는데도 시간을 들여 그리고 쓰고 빚고 지우기를 반복하는가. 왜 어떤 이미지는 완성도가 높아도 금세 잊히고, 어떤 서툰 표현은 오래 마음에 남는가. 이 질문들은 결국 미술이 무엇인지, 표현이 무엇인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든다.
나는 대단한 철학을 내세우는 전업 작가도 아니고, 미술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다 꿰뚫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미술을 오래 좋아해온 사람이다. 흙을 빚던 시간의 묵직한 즐거움을 기억하고, 조형의 자유를 그리워하며, 데이터의 세계를 통과한 뒤에도 다시 미술로 돌아오고 싶은 사람이다. 그 애정이 나를 조소 작업실에서 데이터 분석의 세계로 이끌었고, 이제는 다시 학생들과 미술을 나누는 자리로 데려왔다.
이곳에서는 그 사이의 간극에 대해 천천히 써보려 한다.
손끝으로 빚어내던 물질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패턴을 읽는 데이터의 세계로, 다시 교실에서 학생들과 감각과 표현을 나누는 시간으로 이어지는 나의 기묘한 여정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 AI가 예술을 대신할 것이라는 불안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끝내 놓지 않을 미술의 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기술과 예술이 어떻게 충돌하고, 또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차분히 고민해보고 싶다.
어쩌면 지금은 인간의 미술을 다시 정의하기에 가장 흥미로운 시대인지도 모른다.
기술이 화려해질수록 우리는 더 깊은 질문으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여전히, 이토록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싶어 하는가.
이 글은 그 질문 앞에 다시 서보는, 나의 첫 번째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