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야 할 오류에서, 사수해야 할 본질로
[프로필 에세이] 이름에 대하여 : Noise
처음에는 그냥 단어의 느낌이 좋았다.
짧고, 선명하고, 조금은 낯설었다.
그런데 오래 들여다볼수록 이 이름이 내가 지나온 시간과 생각을 꽤 정확하게 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데이터의 세계에서 노이즈는 보통 제거해야 하는 것이었다. 예측을 방해하고, 패턴을 흐리고, 정확도를 떨어뜨리는 값. 더 깔끔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걸러내야 하는 대상에 가까웠다. 데이터사이언스를 공부하면서 나는 그런 방식으로 노이즈를 배웠다.
그런데 미술의 세계에서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바라보는 미술에서 노이즈는 꼭 지워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아서 남는 흔적, 계획에서 벗어나 생긴 틈, 손의 떨림과 망설임 같은 것들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매끈하게 정리된 결과보다 서툴고 불완전한 표현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일반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엔 오류 같은 선택을 했고, 때로는 기어이 틀린 길을 골라 걷기도 했다. 졸업 전시 때도 그랬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각상 대신, 나는 20평의 텅 빈 공간을 마주하는 무모한 설치 작업을 선택했다. 계획안 하나만 들고 선 그 공허한 공간을, 오로지 빨간색 끈으로만 채워나가야 했다. 전시 직전 단 하루 만에 공간의 밀도를 끌어올려야 했던, 지독한 몰입의 시간이었다.
수천 개의 빨간 선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서로의 몸을 교차할 때,
텅 빈 공간에 붉은 부피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과연 제시간에 이 거대한 공허를 다 채울 수 있을까, 끝내 완성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끈을 쥔 손끝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그 아슬아슬한 긴장감 속에서 끈과 끈이 얽혀 나갈 때, 나를 지배하던 그 불확실한 떨림이야말로 계산된 정답보다
그 당시에는 훨씬 더 진짜인 미술처럼 느껴졌다.
가장 정답 같은 결과를 향해 가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조금 빗나가고 흔들리면서도 끝내 자기만의 형상을 만들어가는 과정.
누군가에게는 오류처럼 보이는 선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진실한 표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Noise라는 이름을 골랐다.
데이터에서는 지워야 할 값이지만, 미술에서는 끝내 남겨두고 싶은 흔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완벽한 정답보다 설명되지 않는 감각을, 매끈한 결과보다 인간의 결이 남아 있는 표현을 더 오래 바라보고 싶었다.
나는 논리로 완전히 정리되는 세계보다, 끝내 설명되지 않는 흔적에 더 끌렸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그 노이즈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세상이 자꾸 지우려는 것들 속에서, 오히려 인간다움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이름을 골랐다.
No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