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현재, 나는 다시 고등학교 미술 교실에 서 있다.
2026년 현재, 나는 다시 고등학교 미술 교실에 서 있다.
학생들의 서툰 선을 다듬어주고 팔레트 위에 물감을 짜주는 일상은 겉으로 보면 평온하다. 그러나 나는 이 평온 속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여전히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새로운 항해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스물아홉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가벼운 사람이었다.
그 무렵 나는 산자락 아래 조용한 동네에서 카페를 가족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1층은 일터였고 2층은 집이었다. 스물둘부터 함께한 강아지 두 마리와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을 만나고, 창밖으로 보이는 산의 사계절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다. 남는 시간에는 대학원에 다니고,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거나 낚싯대 하나 들고 바다로 나가곤 했다.
나는 내가 그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 사람이라고 믿었다. 산 밑의 여유로운 카페를 운영하며 안정적인 미술 교사. 강아지들과 함께 천천히 나이 들어가는 삶. 어쩌면 그게 내 미래의 전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른의 문턱에서 나는 돌연 그 평화를 뒤로하고 낚싯대를 접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익숙하게 누리던 삶의 리듬을 스스로 끊어냈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동업이라는 새로운 길 앞에서 강한 확신이 있었고, 나는 그 확신을 따라 익숙한 삶의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2020년 2월, 세상이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하던 때 나는 정들었던 공간과 익숙한 자리를 뒤로하고 프랑스로 향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내 삶이 본격적으로 익숙한 울타리를 벗어나던 순간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나를 어느 정도 안다고 믿었다. 적당히 여유롭고, 적당히 즐길 줄 알고, 필요 이상으로 삶을 무겁게 짊어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낯선 땅에서 돌아온 뒤 0과 1의 세계, 그러니까 개발과 데이터의 언어 속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전혀 다른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완고한 사람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탈출구처럼 찾던 바다를 제외하면, 내 삶은 내내 설명하기 힘든 답답함으로 가득 찼다.
나는 남에게 짐을 나누기보다 먼저 감당하려 했고, 함께 해결하기보다 혼자 버티는 쪽을 택했다. 결국 모든 문제를 스스로 짊어져야만 안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를 계속 몰아붙인 시간은 2023년 말부터 분명한 흔들림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서른 이후의 시간은 내가 몰랐던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믿었던 내가, 실은 책임 앞에서 가장 먼저 나를 몰아붙이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이, 그리고 그렇게 변해버린 내 모습이 문득문득 무서웠다. 나를 몰아세울수록 타인과의 소통은 단절되었고, 어느새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버티는 것이 최선이라 믿었던 나의 선택이, 결국 소중한 것들을 멀어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갔다.
"나는 내가 여유로운 사람인 줄 알았다. 법인 인감을 손에 쥐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