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곳을 민들레 벌판이라 불렀다. 철책선 너머 동부전선 유일의 평야 지대, 낮에는 궁노루와 꽃사슴이 어슬렁거리고 야심한 밤에는 오소리가 출몰했다. 수많은 새떼가 날아와 들판 위에 잠시 머물다, 하늘을 수묵화로 물들이며 남쪽으로 향했다. 짐승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먹을 것을 찾아 고라니가 민가를 기웃거렸고 두어 마리의 새끼들이 어미 뒤를 따랐다.
간혹 날카로운 총성이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사륜구동을 타고 온 보안사 장교들의 짓이다. 정확히 한 발에 한 마리씩 공중에서 장끼들이 떨어졌다. 수십 번의 총성이 들린 후에야 꿩 사냥은 끝났다. 꿩 사체 몇 마리를 주간 초소에 던져주고 그들은 다음 사냥터로 향했다. 취사병은 털을 뽑고 뼈를 발라 국을 끓였다. 일몰 무렵, 북의 선전 방송이 시작됐다. 살인마 정권을 규탄하며, 총궐기를 촉구하는 ‘혁명적’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백색소음과 같아서 초소 내의 달콤한 쪽잠을 방해하지 못했다.
동틀 무렵의 유곡천 주위는 안개가 지천이었다. 피아를 구별하기도 힘든 짙은 안갯속에서 확성기 소리는 더욱 뚜렷했다. ‘인간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언젠가 들어본 주체 철학의 한 구절이 부조리극 대사처럼
귀에서 겉돌았다. 살인적인 겨울 추위가 계속됐다. 영하 30도의 혹한 이야말로 우리들의 주적이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초병들은 추억 같은 닭싸움을 했다. 입김은 금방 서리로 변했고 서리는 얼마 후 서로의 얼굴을 하얗게 덮었다.
문득 밤하늘을 올려보면 머리 위로 거대한 유성우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이런 밤에는 소식이 끊긴 여자 친구에게 짧은 편지라도 쓰고 싶었다. ‘잘 있는지. 저 많은 별들에게 물려줄 젖이 없구나’. 언젠가는 3/4톤 트럭 몇 대가 비좁은 소대 연병장에 들이닥쳤다. 이번에는 미군, 게다가 여군들이었다. G.O.P 경계근무 1박 체험과정 참가자들이다. 나의 임시 부사수는 20대 초반의 흑인 간호장교, 우리는 지정된 초소에서 별말 없이 하룻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새벽 무렵이었을까. 내내 멍한 표정만을 짓던 그녀가 머뭇거리듯 말을 건넸다. ‘아, 아 유 오케이 히어?’ 나는 그냥 웃고 말았는데, 그것은 사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온 이후로 자신의 안부를 물어본 적이 없다. 과연 나는 지금 괜찮은 것인가.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육사를 갓 졸업한 소대장이 첫 번째 임지로 이곳을 택해 부임했다. 그의 부친은 하나회 출신의 퇴역 장군 R, 5군단의 모든 장성들이 1/4톤 지프를 타고 수시로 소대 막사를 드나들었다. 상황병으로 불려 간 나의 주 업무는 라면 끓이기였다. 나이 어린 소대장은 최고참인 내가 끓여주는 라면이 제일 맛있다며 늘 흡족해했다. 그 사이 소대원 K가 갑자기 사라졌다. K와 친하게 지내던 몇몇 동료들이 차례로 보안사 분실로 불려 갔다. 취조실 의자에 앉자마자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서너 차례 뺨을 맞았다. 조서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조서 내용을 대충 읽고 난 후, 소대원들은 서류 하단 여백에 붉은 지장을 찍었다. K가 월북을 시도하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사건은 서둘러 마무리되었고, 초짜 소대장은 관례적인 임기조차 채우지 않고 다른 임지로 급하게 떠났다. 이례적인 영전이었다.
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햇살 좋은 오후였다. 일부는 묵은 전투복과 야전 상의를 빨았고, 몇몇은 푸세식 변소에서 겨우 녹아내린 똥을 퍼서 날랐다. 침상 위에 누운 채 유상병이 월간 ‘샘터’를 읽고 있을 때, 인터컴으로 대대 OP의 전통문이 날라왔다. ‘전역 대기명령, 금일부로 연대본부 소속을 명함’. 개인 소지품 이래야 ‘떠블빽’의 반도 차지 않았다. 나를 태우러 온 3/4톤 트럭이 저 멀리서 먼지를 날리며 달려오고 있다.
한 번 더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민들레 벌판은 개나리와 진달래, 패랭이꽃과 수선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넘실대고 있었다. 저 찬란한 폐허를 뒤에 남겨 두고 나는 도망치듯 서둘러 차에 올랐다. 때는 바야흐로 눈부신 봄이었고, 나는 이제 겨우 스물일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