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첫 문장을 쓰려고 과욕을 부리다 실패했다.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나 보다. 그냥 이렇게 시작하자. 세상에는 ‘꼰대’라는 ‘쉰 인류’가 존재하고 그들의 카톡 ‘상메’ (상태 메시지)는 흔히 ‘카르페 디엠’이라고. 사실 그들은 오늘을 제대로 즐겨 본 적이 없다. 늘 내일을 위해 오늘을 유예하며 살았고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한자 취향의 어떤 이는 ‘고진감래’를 ‘상메’로 쓴다. 좋은 날은 오리니, 오직 그날을 위해 이를 악물고 현재의 고통을 견디겠노라. 그날이 올지 안 올지 모르겠으나 불행히도 남아있는 날들이 많지 않다.
꼰대의 언어는 엔트로피가 낮다.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것들, 교훈적이고 교조적이며 진부한 것들, 즉 해도 되고 안 하면 더 좋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신선도가 떨어지는 언어를 새로운 정보인 양 내뱉는 거침없는 태도다.
했던 말을 틈만 나면 무한 반복하는 것도 특징이다. 꼰대의 언어는 자주 거칠고 단정적이며 종종 선언적이다. 꼰대는 곧잘 과장해서 말하며,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자신의 판단을 별 고민 없이 쉽게 일반화한다.
꼰대의 얼굴은 근엄하다. 대체로 거룩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가끔 뽕 맞은 듯한 열락의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감정의 진폭이 널뛰듯 해서 주위 사람을 자주 불안하게 만든다.
신체뿐 아니라 정신 근육 역시 딱딱해서 외부의 새로운 자극을 탄력적으로 수용하지 못한다. 흡수되지 못한 자극은 일그러진 형태로 얼굴에 그대로 노출된다. 곧이어 안면 근육이 파열되는 ‘버럭’의 순간이 온다.
꼰대의 귀는 신체 부위 중 퇴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는 기관이다. 청력이 약해지는 것과 동시에 구강 구조는 더 튼튼해져 말이 많아진다. 행여 누군가가 다른 의견을 낼라치면 자기 귀를 두 손으로 틀어막는다. 귀가 안 들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지만 귀를 틀어막는 것은 꼰대의 행위다.
꼰대는 스스로가 항성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은 전 생애 동안 변하지 않는다. 지식과 가치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세상은 변하고 가치관도 그에 따라 변하지만 꼰대 자신은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꼰대는 인간이 어떤 사명과 의미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확신한다. 그 사명감과 의미에 대한 강박은 자신에서 끝나지 않고 밥상머리 교육과 충고라는 형식으로 가족은 물론 주변 동료나 친구에게까지 이어진다. 그러므로 그는 늘 나라 걱정을 하면서 애국심을 독점한다. 유튜브의 국뽕 영상을 보면서 흐뭇해하다가도 발작적으로 일어나 빌어먹을 세상이라고 개탄한다.
꼰대는 또한 타인의 욕망에 쉽게 분노하고 분개한다. 최강의 윤리의식을 지니고 있으므로 소설 <롤리타>를 소아성애자의 변태 행각, <연인>을 원조교제로 ‘각하’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흔하디 흔한 불륜과 치정에 다름 아니다.
문학과 예술이 인간 본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라는 것을 그는 이해할 수 없다. 지상 최고 가치인 도덕규범에서 벗어나면 그 무엇도 가차 없다. 이해하려 하지 않으므로 느낄 수도 없다. 타인이 아닌 자신의 욕망에는 관대하다는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꼰대라는 병은 치명적이다. 한번 감염되면 낫기가 쉽지 않은데, 자발적인 치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 넓은 오지랖만 조금 줄여도 차도를 볼 수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결함’과 ‘하자’에 대해 불평하고 훈계할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안위보다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에 더 관심이 있으므로 그것에 개입하고 참견하느라 늘 분주하다.
이상은 동네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으면서 했던 ‘꼰대' 관련 발언을 표현을 가미하고 정리해서 요약한 글이다.
A : 그럼 난 꼰대 아니네. 당신들 둘은 잘 모르겠고.
B : 매번 잘난척하고, 돈 없다는 핑계로 술값 잘 안 내는 사람이 진짜 꼰대라던데 그 말은 없네.
나 : 훌륭한 말씀하시는 데 받아적지는 못할망정 그 무슨 망언인가? 참눼
B의 ‘망언’ 탓이었을까? 집으로 돌아와도 무언가 께름칙한 느낌이 떨치지 않는다. 문득 거실 책상에 놓인 거울에 다가간다. 거울 속 심연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심연 속 낯익은 꼰대 하나도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족 : ‘라떼’가 유행하던 3~4년 전 재미 삼아 쓴 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마르크스와 니체의 것을 각각 패러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