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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26. 2022

상처에 대처하는 자세

우리집 고양이 이야기

우리 순둥이.

중성화 수술이 끝나고 일주일 후 고깔을 벗기러 병원에 갔지만 끝내 벗지 못하고 왔다. 다음 주 목요일날 오라고. 오늘은 그 이야기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우리집 둘째 순둥이는 참 빠르고 날쌔다. 브리티쉬 숏헤어이지만 남편은 이 아이를 두고 뱅갈 고양이가 섞였다고 이야기한다. 첫째 냥이도 브리티쉬 숏헤어이지만 그렇게 빠르다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둘째 순둥이는 정말 재빠르고 운동신경이 뛰어나다. 방 안을 날아다닌다고 보면 된다.


그런 아이에게 고깔을 씌워놓았더니.


중성화 수술한 후 5일 정도 후부터 이상하다 싶었다. 수술 후 아이가 몸을 깊게 구부려 생식기를 핥으려는 시도는 쭉 해왔다. 원래 고양이들은 그루밍을 잘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 행동을 하는가 싶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5일 정도 후가 되자 고깔이 끝나는 지점에 생식기를 갖다 대고 긴 혀로 핥는 동작이 가능해진 것이다. 첫째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던 터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수술 부위까지 핥지는 못하는 걸로 보였다.


"겉피부가 완전히 다물어지지 않았어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


혹시나 싶어 아이가 생식기를 핥는 요령이 생긴 것 같아 보인다고 말씀드렸다.


"그렇죠!"

의사 선생님이 막 박수를 쳤다.


"어쩐지 수술 부위에 털하고 딱지가 잔뜩 끼었어요. 이 상태로 고깔을 벗기면 아이는 계속 그 부위를 핥을 테고 그럼 염증이 생길 겁니다."

"더 큰 고깔로 바꿔드릴게요. 다음 주 목요일에 오세요."


그렇게 아이는 더 큰 고깔을 하고 집으로 와야만 했다.


순둥이를 보며 자기 상처를 핥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마음 속 상처를 계속 돌아보는 일은 더 큰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그리고 고양이가 그럴 때마다 난 너무 속상하다.


성령님은 얼마나 속상하실까. 내가 내 상처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마다.


앞으로 나아가자. 마음 속 상처를 그루밍하지 말자.

 

큰걸로 바뀐 고깔


이때만 해도 좋았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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