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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21. 2022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

우리집 고양이 이야기

둘째 냥이가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지금 둘째 냥이는 고깔을 쓰고 있다. 그루밍을 하는 고양이 특성상 머리 부분에 고깔을 씌움으로서 혀로 수술받은 부위를 핥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이 핥을 수도 있고 같이 생활하는 고양이가 있다면 그루밍을 해준답시고 핥을 수도 있다. 고양이는 서로 그루밍 해주기를 즐겨하기 때문이다.


그루밍이란 혀로 상대나 자신의 몸을 핥는 행위이다.


물론 그루밍을 해준다고 상대가 그 그루밍을 꼭 받는 건 아니다. 발로 상대가 자신을 못 만지도록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벌떡 일어서서 발로 상대를 치기도 하고 달아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얌전히 그루밍을 받기도 한다.


그 모습이 그렇게 다정해 보일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 마리만 고깔을 쓰고 있는 경우는 다르다. 만약 고깔을 쓰고 있는 고양이가 상대의 그루밍을 얌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상처를 봉합한 실이 혀로 해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상처가 잘 아물지 못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두 마리는 분리되어 있다. 두 마리가 함께 있으면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샅샅이 살펴야 한다. 혹시라도 그루밍을 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한다. 물론 두 마리를 같은 공간에 두기도 한다. 계속 분리시키면 아이들이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어제 밤에도 두 마리를 거실에 두고 관찰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순식간에 첫째 냥이가 둘째 냥이의 그 부분에 머리를 갖다 대는 것 아닌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두 마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보았다. 놀란 표정이었다. 첫째 냥이가 둘째 냥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곳을 핥아주려 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난 곧장 첫째냥을 어루만지며 상황을 설명했다. 인간의 말을 알아듣건 말건.


"지금 동생이 아파. 그래서 핥으면 안 돼. 잠깐만 참아. 이번주만."


그들은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마음은 닿는다고 믿는다. 지금처럼 내 공부를 위해 그들을 면밀히 살펴보기가 어려워 한 마리는 거실에 한 마리는 방 안에 놓았을 때, 얌전히 있는 걸 보면. 방금 칭얼대는 소리가 방 안에서 들렸는데 "좀만 기다려" 하는 내 말에 다시 조용해지는 걸 보면.


이번주까지만 참으면 된다. 상처가 봉합되면 둘째 냥이는 고깔에서 해방되고 실도 빼버릴 것이다. 그들은 다시 예전처럼 신나게 집을 뛰어다닐 수 있고 서로 그루밍을 해줄 수 있다.


이번주까지만.


그들은 모른다. 이 사실을. 이번주까지만 참으면 된다는 것을. 고양이들은 언제까지 인내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마치, 고난에 빠진 인간이 언제까지 자신이 고난을 인내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한치 앞을 모르는 인간이기 때문에.


하지만 신은 알고 계신다. 인간이 언제까지 고난을 견디어야 하는지. 언제 그 고난이 끝나는지. 그 고난이 끝나면 인내의 열매가 주어질 것이다.


인간은 고난 중에서도 즐거워하고 생활에 만족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본분이다. 지금 나는 이 말을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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