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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28. 2022

우리 천사냥들

고난의 끝

드디어 내일이다.

둘째냥이 중성화 수술 고깔을 벗는 날이. 우리 둘째냥이는 오늘까지 총 13일 밤낮을 고깔을 끼고 보내왔다. 지금 마루에서 자고 있다. 처음 일주일은 그래도 짧은 고깔을 썼지만 이후로 지금까지 대형 고깔을 쓰고 있다. 중간에 고깔이 바뀐 이유는 짧은 고깔을 쓰고 수술 부위를 그루밍하는 신공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너무 유연한 것도 문제다.


둘째냥이를 보면서 능력이 특출난 것도 살아가기 힘든 이유가 되는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둘째냥이는 엄청나게 유연하고 운동 신경이 좋아서 보통 냥이들이 쓰는 고깔로는 핥는 걸 제어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고통받고 있다.


솔로몬이 쓴 전도서에도 너무 지혜로운 것이 도리어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내용이 있는데 세상 이치가 그런가 보다. 너무 뛰어나도 세상 살기 어렵다. 고깔이 긴 탓에 먹이도 제대로 못 먹는 모습이 안타깝다. 냥이는 예전처럼 그릇에 코를 박고 먹지 못한다. 고깔 때문에. 그릇을 기울여 먹여주거나, 혼자 먹을 때면 고깔 안에 목을 쭉 빼고 겨우 한 알 한 알 간신히 먹는다.


두 냥이들은 함께 뛰어놀지도 못하고 많은 시간 분리되어 지내왔다. 혹시나 첫째 냥이 수술한 둘째 냥이 수술 부위를 그루밍할까봐 둘을 한 공간에 놔둘 때면 내내 그 둘을 지켜봐야 했다. 일하러 갈 때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방 안에 들여놓고 한 마리는 거실에 놔두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일하는 동안 방 안에 혼자 있는 냥이가 마음 쓰였다. 내보내 달라고 울고 있을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루에 있는 아이는 안방 방 문앞을 지키며 내내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처음에 큰 고깔을 하고 왔을 때는 예전 작은 고깔을 쓰고 있을 때처럼 수술 부위를 그루밍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결국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체념해가며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다. 거듭되는 실패는 생명체를 좌절하게 만드는걸. 아이는 혀로 고깔을 핥는다. 아이가 핥고 싶은 건 자신의 몸이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자 결국 아이는 시도를 포기한다. 그 모습이 가슴 아팠다.


결국 되지도 않는 꿈 앞에서 무릎을 꿇으려는 나 같달까.


밤이면 또 두 아이를 분리해서 한 마리는 내가 데리고 자고 한 마리는 거실에서 자도록 해왔다. 수술하기 전날, 금식 때문에 둘째와만 같은 방에서 자던 날 아이는 신이나서 계속 그르렁거리고 내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앞날도 모르고. 난 그런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던 것이다. 밤에 아이들을 떼어 놓으면 거실에 혼자 남은 아이가 내는 기척이 방 안에 들려온다. 그러면 방 안에 있는 아이는 나가고 싶어하고, 또 거실에 있는 아이는 외로워서 울기도 한다.


야행성인 냥이들 특성상 함께 자면 숙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깨어서 돌아다니거나 내 주위에 와서 잠을 깨우거나 하기 때문이다. 최대한 고깔 쓴 둘째 냥이에게 사랑을 주려 애썼다. 머리를 자주 긁어주고 만져주고 살펴주고 예뻐해주려 했다. 이름을 불러주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내일이면 아이는 해방이다. 이제는 마음껏 그루밍해도 된다. 맘껏 서로를 뒤쫓아다니고 사랑을 표현해도 된다. 내일이면, 내일이면, 나도 해방이다. 그동안의 마음씀에서 벗어나 그만 아파해도 된다. 사랑하는 존재가 아파하는 걸 보는 것도 큰 고통이라는 걸 알았다.


그동안 난 고깔 쓴 냥이에게 세상이 되어주려고 했다. 너의 고통에 내가 함께 있을 거야. 아이는 수술을 시킨 내가 그래도 좋은 건지 고깔을 쓴 채로 아침이면 내 발을 비비곤 했다. 플라스틱이 발등에 닿았다. 발라당 누워 있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려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온 몸을 긁어주고 만져주며 사랑을 나눠주는 것 뿐.


인간의 죄로 인해 에덴 동산이 무너지고 모든 관계가 깨어졌다. 같이 살겠다고 저 어린 것에 칼을 대는 인간들. 아무것도 모르고 병원에 끌려가 소중한 걸 잃어야만 하는 냥이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죄 때문이다. 원죄. 그 후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힘든 순간을 함께 해 왔다. 힘든 순간을 함께 해 오며 관계는 더 단단해졌다. 냥이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꿈 속에서는 고깔을 벗고 자유롭게 뛰어 놀고 있을까. 왜 눈물이 나는 거지.


쉽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러하기에 희망은 조금은 무겁다. 하지만 이제 달라진 점이라면 난 나에게서 더 이상 희망을 찾지 않겠노라고 다짐한 것이다. 나의 희망은 예수님이시다. 나는 또 넘어지고 넘어지겠지만 내 희망의 근거는 예수님이기에 다시 일어날 것이다.


나의 힘듦을 모두 아시는 예수님께서 내 방황과 노력의 끝도 아시는 것처럼 우리 냥이들의 고난에도 끝이 오고 있다.


힘든 기간을 지내온 우리집 천사냥이들아. 이제 내일이면 너희들은 다시 맘껏 행복해도 돼. 맘껏 달려도 돼. 엄마가 너희 곁에 있을 거야. 사랑해. 우리 냥이들아.


시간을 접어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냥이 고깔 벗기 전 마지막 낮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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