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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an 25. 2023

설 연휴, 휴양했어요

집에서  

특별했던 설날 연휴에 대해 남기려고 한다. 남편의 코로나로 집에만 있어야 했던 연휴. 속으로 내심 잘됐다, 라고 외쳤던 연휴. 


첫째날, 그러니까 토요일에 마치 부자가 된 기분으로 깼다. 앞으로 4일이란 긴 연휴를 통째로 쥐고 있는 기분. 난 4일분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 누군가와의 친교를 위해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될, 4일. 


시댁에 가서 시장에 가거나 제사 음식을 만들 필요도 없어. 시댁 식구들과 안부를 물으며 힘들게 지낸 내 지난 나날들을 애써 잘 지냈다는 말로 포장할 필요도 없어. 설날 당일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그보다 더 일찍 일어나신 시부모님들에게 애써 웃으며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일을 시작할 필요 없어. 시댁에 있으면서 감정이 섞이고 휘몰아치는 걸 내 안에서 애써 잠재우느라 고생할 필요 없어.  


남편. 코로나여서 고마워.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 연휴 첫째날. 감사함이 가득했다. 나는 전날 마트에서 사 온 전과 갈비찜으로 점심을 차렸다. 별다른 일 없이도 그저 행복했다. 고양이들과 놀아주고 많이 웃었다. 남편을 잘 간호했다. 따듯한 차를 자주 타 주었다. 


둘째날. 

교회에서 '치유하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의 설교를 듣고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 요새 정말 많은 걸 깨닫는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했다. 사실 이십대까지 난 교회 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삼십대에 믿음을 잃어버리고 마흔에 다시 찾은 신앙. 


남편은 입맛이 없다면서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 했다. 설날 당일에 과연 정육점이 열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교회에 다녀오면서 정육점에 갔는데 왠걸? 앞치마를 두른 직원이 화장실에 다녀오는지 문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와 함께 횡단보도를 걷던 아저씨가 정육정 문 앞에 멈추는 것이었다. 


다행이다, 싶어서 문 안에 들어갔다. 삼겹살 한근반 주세요, 아저씨가 직원에게 말했다. 나는 원래 벌집 삼겹살을 사려 했지만 남편에게 전화해 생삼겹살과 벌집 삼겹살 중 뭘 좋아하는지를 물어보았다. 남편은 생삼겹살을 사오라고 했고 채소와 쌈장, 파채 소스까지 가득 싸들고 집으로 향했다. 


이 때가 설날 연휴의 하이라이트였다. 


고요한 연휴. 

우리 가족끼리만 보내는 오붓한 시간. 

남편은 집안에 고기 냄새가 배는게 싫다고 베란다에서 고기를 굽자고 했다. 

고기 파티가 벌어졌다. 



이렇게 항상 명절을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 단위로. 

고양이들은 처음엔 안방과 베란다 사이의 창문에서 우리가 뭘하는지를 쳐다보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와 남편은 음악을 들으며 삼겹살을 먹었다. 


지금 그 때를 생각해도 행복과 감사라는 단어만 떠오른다. 


교회에서 시댁 동서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다시 걸지 않았다. 그 시간을 진공 상태로 밀봉하고 싶었던 걸까. 나중에야 고생이 많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를 보냈을 뿐이다. 정말 고생이 많았다는 걸 알고 있고 나만 쉬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 당시에는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셋째날부터는 막바지로 치닫는 연휴 시간이 느껴졌다. 붙잡고 싶지만 붙잡을 수 없는 시간. 평소처럼 글을 쓰고 청소하고 오후에 공부를 하고 치킨을 시켜먹었다. 


어제였던 마지막 날. 내일부터, 그러니까 글을 쓰는 지금으로서는 오늘,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너무 슬프고 눈물이 났다. 울었다. 우울해졌다. 하지만 그 감정에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청소와 빨래를 했다. 영어 공부를 했다. 


그렇게 귀중한 4일이 지나갔다. 만약 학원에서 시댁하고 친정에는 잘 다녀왔어요?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천연덕스럽게 '네, 잘 다녀왔어요' 하고 말할 것이다. 집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집에 있었지만 꼭 어디 좋은 휴양지를 다녀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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